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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시가 있는 하루]맨발
맨발 / 문태준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펄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
한림학보   2004-05-01
[교양] [시가 있는 하루]冬지 다음날
冬지 다음날 / 전동균 1 누가 다녀갔는지, 이른 아침 눈 위에 찍혀 있는 낯선 발자국 길 잘못 든 날짐승 같기도 하고 바람이 지나간 흔적 같기도 한 그 발자국은 뒷마당을 조심조심 가로질러 와 문 앞에서 한참 서성대다 어디론가 문득 사라졌다 2 어머니
한림학보   2004-04-13
[교양] [시가 있는 하루]저 물푸레나무 어린 새순도
저 물푸레나무 어린 새순도 / 안도현저 어린 것이이 험한 곳에 겁도 없이뾰족, 뾰족 연초록 새순을 내밀고 나오는 것애쓴다, 참 애쓴다는 생각이 든다저 쬐그만 것이 이빨도 나지 않은 것이눈에 파랗게 불을켜 보려고세상 속으로 여기가 어디라고,조금씩, 조금
한림학보   2004-03-01
[교양] [시가 있는 하루]장욱진
장욱진 / 손택수그림을 그리기 싫은 날입니다 할아버지는 산으로 향한 창문을 열어놓고 늘어지게 낮잠이 들었습니다 그 사이 조막만한 꼬마 참새가 날아들어 할아버지의 무구한 낮잠처럼 펼쳐진 화폭 위로 날아들어, 발바닥에 색색의 물감을 묻히고 돌아다닙니다 그
한림학보   2003-12-01
[교양] [시가 있는 하루]칼 - 사춘기 3
칼 - 사춘기 3 / 김행숙소년이 손을 열어 보여준 건 칼이었다. 분홍색 손바닥 위로 슬몃 피가 비쳤다. "연필이나 깍지 그러니?" 소녀는 분명히비웃었다. 소녀는 뚫어지게 소년을 응시했다.여자애에게 위로를 받아본 일이 있었던가? 생각나지 않는다. 어떤
한림학보   2003-11-09
[교양] [시가 있는 하루]남해 멸치
남해 멸치 / 고두현너에게 가려고 그리 파닥파닥 꼬리 치다가 속 다 비치은 맨몸으로 목구멍 뜨겁게 타고 넘는데 뒤늦게 아차, 벗어둔 옷 챙기는 순간 네 입술 네 손끝에서 반짝반짝 빛나는구나 오 아름다운 비늘들 죽어서야 빛나는 생애 완도 신지, 보길,
한림학보   2003-11-03
[교양] [시가 있는 하루]자화상
자화상 / 이원휴대폰을 받다 얼굴이 떨어져 깨져버렸다 깨진 조각 하나를 들어 오른쪽 팔목을 그었다. 비틀린 혈관 하나 끊어지자 해가 땅에 뚝 떨어진다버스를 기다리다 얼굴을 한 손으로 구겼다 깡통처럼 쓰레기통에 던졌더니 모서리를 맞고 튕겨져 나온다 경쾌
한림학보   2003-09-08
[교양] [시가 있는 하루]미시령 노을
미시령 노을 / 이성선 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 내려앉는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다 8월27일, 화성이 6만년 만에 지구에 접근하는 날. 그 6만년의 시간을 마중나갈 채비를 하는데 비가오다니, 그것도 이렇게 억수비가
한림학보   2003-08-31
[교양] [시가 있는 하루] 편지 - 윤동주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 큰 누나는 추운 겨울날 새벽이면 거실에
이현준 작가   2005-12-22
[교양] [시가 있는 하루] 짐승의 꿈 - 이 성 선
나는 어둠이야 이 고요함 속에 나는 온통 별이야, 눈물이야 하늘이어 팔을 내려 번쩍이는 북두칠성 굽은 팔을 내려 나를 안아가 주오 이 영혼이 별의 가지 끝에 이슬로 맺혔다가 날아가 밤의 나라, 고요히 불타는 나라 그 가슴에 묻히면 무궁에 눈뜰거야, 우
한림학보   2005-12-22
[교양] [시가 있는 하루] 리어카 - 이홍섭
올망졸망한 자식이 셋, 그리고 낡은 리어카 한 대가 전부였다 집을 나설 때는 배추, 돌아올 때는 하드를 문 아이들이 타고 있었다 그 아주머니는 연신 침을 묻혔지만 타는 햇빛 아래서 그녀의 입술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았다 어린 자식들이 그녀의 가여운
한림학보   2005-12-22
[교양] [시가 있는 하루] 가을 상처 - 문정희
빙초산을 뿌리며 가을이 달려들었다 사람들은 다리를 건너며 저 아래 강이 흐른다고 하지만 흘러서 어디로 갔을까 다리 아랜 언제나 강이 있었다 너를 사랑해! 한 여름 폭양 아래 핀 붉은 꽃들처럼 서로 피눈물 흘렸는데 그 사랑 흘러서 어디로 갔을까 사랑은
이현준 작가   2005-11-24
[교양] [시가 있는 하루] 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 - 박주택
여행자처럼 돌아온다 저 여린 가슴 세상의 고단함과 외로움의 휘황한 고적을 깨달은 뒤 시간의 기둥 뒤를 돌아 조용히 돌아온다 어떤 결심으로 꼼지락거리는 그를 바라다본다 숫기 적은 청년처럼 후박나무 아래에서 돌멩이를 차다가 비가 내리는 공원에서 물방울이
한림학보   2005-11-17
[교양] [시가 있는 하루] 농담 - 이문재
농담 / 이문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한림학보   2005-11-09
[교양] [시가 있는 하루] 천장호에서 - 나희덕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 것도 비추지 않는다불빛도 산그림자도 잃어버렸다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 것도 아무 것도 품지않는다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 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
이현준 작가   2005-11-09
[교양] [시가 있는 하루] 헛제삿밥을 먹으며 -이선이
간이식당 뒷마당 어스름과 겸상을 받아듭니다 저문 하늘에선 바람이 노을에 물소리 덧입히는 소리 사나웁고요 적막이 씹다 남긴 꽃잎들 낮은 담장 밖으로 우르르 몰려가는소리에 내 귀는 자꾸 앓습니다 아마도 이 세계 밖으로 흘러가는저 물소리 때문겠지요 양수에
한림학보   2005-10-23
[교양] [시가 있는 하루] 샘밭 - 최돈선
샘밭 최돈선 샘밭에 비 내린다 배추잎이 젖고 있다 어디든 가고 싶구나 --------------- 소설을 쓰는 내게, ‘시가 있는 하루’를 위한 원고 청탁은 애초에 가당찮은 일이었다. 시인은 소설가가 곧잘 되지만, 소설가는 시인이 되기 싶지 않은 법이
이현준 작가   2005-09-13
[교양] [시가 있는 하루]문고리
문고리 / 조 은 삼년을 살아온 집의 문고리가 떨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열고 닫았던 문 헛헛해서 권태로워서 열고 닫았던 집의 문이 벽이 꽉 다물렸다 문을 벽으로 바꿔버린 작은 존재 벽 너머의 세상을 일깨우는 존재 문고리를 고정시켰던 못을 빼내고 삭은
한림학보   2004-03-21
[교양] [시가 있는 하루] 서천(西天)으로 1
서천(西天)으로 1 / 최정례 서천 냇갈에 고기 잡으러 갔다 솜 방맹이 석유 묻혀 깊은 밤 검은 내 불 밝히면 붕어들 눈 멀거니 뜨고 가만 있었다 흐르는 냇갈 안고 자고 있었다 밑 빠진 양철통 갖다대도 아직 세상 흐르는 줄 알고 가만 있었다 우리 언니
한림학보   2004-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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