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새 단장을 끝낼 학생회관의 명칭이 ‘캠퍼스 라이프 센터(Campus Life Center)’로 확정됐다. 학내 구성원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까지 거쳤으니 그 정당성을 따질 이유는 없다. 요즘 어딜 가도 영어식 이름이 넘쳐나는 데 우리말이 아니라고 시비를 걸고 싶지도 않다. 다만 김유정관을 포함해 학내 건물의 명칭을 그 기능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바꾼 이유는 한번 따져보고 싶다.

나는 학부과정은 7동, 석사과정은 16동, 박사과정은 월터 윌리암스 홀(Walter Williams Hall)에서 다녔다. 건물의 기능마저도 제대로 표시하지 않던 대학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건물 하나하나마다 나름의 사연이 담긴 이름이 붙여진 대학에 진학한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일곱째, 열여섯째라고 불리다가 어엿한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나 할까? 사실 큰 돈을 기부하거나 설립에 기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따는 정도였으니 실제로는 별 대단치도 않은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실학자들의 호나 춘천의 지역색을 부여한 연암관, 다산관, 김유정관, 팔봉재 등등은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이름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대학본부, 사회경영관, 학생회관, 학생생활관 등등으로 바뀌고 말았다.

어질 현(賢)자에 기둥 주(柱나)자를 썼으니 내 이름의 의미는 ‘어진 기둥’이다. 반백년 가까이 함께 한 이름이니 이제는 그 뜻을 생각해 보는 일이 거의 없다. 어릴 때는 좀 유치하기는 하지만 친구들끼리 각자 이름의 의미를 설명하고 누구 이름이 더 좋다고 우기곤 했었다. 나는 사람의 이름뿐만 아니라 지역이나 건물의 이름도 나름의 ‘의미’를 심어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대학이 조선의 실학자들과 실제적인 연관은 없지만 연암관과 다산관, 성호관, 반계관 등을 호명할 때 가끔씩은 실시구시의 정신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처음 방문하는 이들도 그 의미를 물어올 수 있고 거기서부터 학교의 이미지가 만들어지기 시작할 수도 있다. 당연히 그런데 이제는 건물의 이름에서 아무 것도 발견할 수도, 느낄 수도 없다. 단지 그 기능만 즉각적으로 떠오를 뿐이다. 궁금해 할 사람도 없다.

과거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취향이 다 제각각이니 실학자의 호와 춘천의 지역색을 부여한 이름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신축 건물은 늘어나는데 누구나 알만한 실학의 호나 춘천 인근의 지명이 바닥났을 수도 있다. 작명의 고민과 부담을 떠안겠다고 나서겠다는 사람도 없는 형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흡족하지는 않지만 큰 불평불만도 없을 ‘기능형 이름’을 선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매일 부르는 이름에 대단한 의미는 아니더라도 조금의 ‘멋’이나 ‘아우라’를 불어넣어 주면 좋지 않을까? 대학이 그 정도의 여유는 가져도 되는 곳 아닌가? 축약어를 좋아하는 요즘 학생들은 ‘캠퍼스 라이프 센터’를 뭐라고 부르게 될까? 캠라센? 캠센? 라센? 그냥 학관? 그 어느 것도 김유정관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송현주(언론방송융합미디어 ·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