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entos mas brillantes’
스페인어로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는 의미이다. 스페인에서 교환학생 기간 중 마음 속 깊게 새겨 둔 어구다. 교환학생은 내 인생 중 가장 빛나는 순간이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귀한 시간들이었다.

교환학생을 오기까지, 쉬운 것 하나 없었다. 교환학생 준비 과정부터 선발, 그리고 선발 이후에 비자 취득까지,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많이 배웠지만, 그만큼 힘들었다. 그래서 교환학생 생활을 더 기대하고, 더 꿈꿔왔다.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비행기를 올라탔을 때, 나는 고생 끝이라고 생각했다.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그토록 기다려 온 순간이니 이제 누리면 된다고 기뻐했었다. 하지만 현지에 적응하는 데 있어서 다사다난했다. 집을 찾는 과정도 쉽지 않았을 뿐더러, 언어의 문제도 컸다. 처음 만나는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를 이어 나가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나의 영어 실력이 좋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은 정말 버거웠다. 하루 종일 리스닝 테스트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들의 문화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초반에는 많이 혼란스러웠다. 내가 기대해 왔던 생활이 맞나.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그때의 나는 만족스럽지 않았던 거 같다.

훗날 이 시간들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되지 않았으면 했다. 아쉬움이 조금도 남지 않았으면 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라고 생각되어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려움에 처하면 무작정 부딪혀 봤다.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매 수업 시간이었다. 스페인에서의 수업 방식은 우리나라의 방식과 차이점이 분명했다. 일단 교수님과 학생들의 소통이 자유롭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업을 곧이곧대로 듣고 받아 적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를 해서 교수님과 학생이 함께 한 수업을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보였다. 초반에는 이러한 수업 방식에 낯설었지만, 그 친구들을 흉내내고자 했다. 나도 그들처럼 질문 있으면 질문을 하고, 아니다 싶으면 의견도 내고 어설프지만 따라가려고 했다.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면 교수님을 따로 찾아뵙고,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친구들을 사귀는 과정에서도 소통이 쉽지 않아 움츠려 들 때도 있었지만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만남을 주도했다. 한국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에게 한국어 수업도 진행해 보고, 서로의 문화를 교환할 수 있는 시간들도 많이 만들어 나갔다. 매사에 자신감 있게 부딪혀 봤다. 기간이 정해져 있는 이 순간이 너무 소중했기에 홀로 맞섰지만, 그 누구보다 강했다고 자부한다.

어느 정도 현지에 적응을 하고 있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나’에 집중하게 되었다. 적응하느라 혼란스럽던 와중 그제서야 ‘나’라는 존재를 인식했다. 이곳에서의 삶은 한국에서의 삶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여유롭다. 때문에 나를 돌아볼 시간이 굉장히 많다. 나와 가까워질 시간이 많았다. 끊임없이 나에 대해 생각했다. 교환학생을 오기 전, 나는 교환학생을 하면서 내가 많이 성장할 거라고 생각했다. 구체적인 것은 없었다. 그냥 무작정 생각했다면, 여기서 나는 구체적으로 가치관이 잡혀 갔다. 현재의 나를 더 알아 가고, 앞으로 나를 어떻게 더 가꿔 나갈지 끝없이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교환학생의 특권이자, 스페인의 여유로운 문화 덕에 가능했던 거 같다.

이제 ‘나’라는 존재를 충분히 이해하고 나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내가 머물고 있는 작은 소도시, 나의 도시 VIC의 아름다움이 보였다. 사소했지만, 아름다웠다. 일요일 오전, 할아버지가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시며 신문을 읽으시는 장면, 노부부의 산책, 어린 친구들이 생김새가 다른 나를 보고 신기해하는 모습조차도 아름다웠다. 그들의 여유가 피부로 와닿았다.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 여유가 감사했다.

더 넓은 세계로 가보자 하는 생각에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여행하는 매 순간을 한 편의 성장 일기라고 칭한다. 그만큼 여행을 계획하는 순간부터 끝마치고 돌아오는 순간까지 모든 시간들이 나를 성장시켰다. 처음 경험해보는 세계는 기대 이상으로 거대했다. 오래 간직하고자 눈과 마음으로 담으려고 했다. 새로운 세계를 눈으로 담으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한국과 반대에 위치한 이곳에서, 다시는 겪지 못할 소중한 경험들로 나를 채워 나갔다. 즐거운 추억들은 강한 에너지로 다가왔고, 힘들었던 기억마저도 나라는 존재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야속하게도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아쉬운 마음도 들지만,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의 성장했을 내 모습이 기대가 되었다. 또한 자신감은 말 할 것도 없다. 말도 안 통하는 이곳에서도 잘 살아가는데 한국에서는 못할 일이 없겠다 싶었다. 이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도 변함없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뭐든 다 잘 해낼 수 있을 거 같다. 교환학생이 마무리 되는 이 시점에서, 내 마음은 딱 잡아서 설명할 수가 없다. 한국에 얼른 돌아가서 보고 싶은 사람들도 어서 만나고, 한국 음식도 너무 간절하다. 하지만 내 소중한 추억이 담긴 이곳을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면 후회 되지 않을 만큼 잘 보냈다고,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떠날 때가 되니까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아쉽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플랫 메이트한테도 아쉬운 마음이 들 지경이다. 하지만 교환학생은 나를 굉장히 많이 변화 시켜주었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으로 미련 없이 이 정든 도시를 떠날 예정이다.

우리 학과 바이오메디컬학과에서는 교환학생을 가는 친구들이 드물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교환학생을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둘씩 연락이 오곤 했다. 나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무조건 가라고. 너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될 거라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조그만 공간에 머물러 있는 친구들에게 더 넓은 세계로 이끌어 주고 싶다.

Momentos mas brillantes.

/박미연(바이오메디컬ㆍ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