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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교수의 '식탁위의 인문학']알칼리 물에 옥수수 불린 원주민들의 지혜 큰 병 없이 오랜 세월 주식으로 삼은 원동력중국에서는 ‘옥’과 같은 ‘수수’라 해서 ‘옥수수’ 일본에서는 중국의 대명사인 ‘당’에서 왔다고 ‘당의 수수’라는 이름의 ‘토우모로코시’로 불려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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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15  13: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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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촌으로 추정되는 전통 마을에서 관객들을 위해 뻥튀기를 시연하고 있는 어느 할아버지의 모습. 이제는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풍경으로 어느덧 관광 상품이 되어버린 과거의 모습이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커먼스

 몇 천년 동안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았던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는 펠라그라병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랜 경험을 통해, 그대로 먹으면 탈이 나지만 적절한 손길만 가하면 옥수수를 주식으로 섭취해도 별 탈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까닭에서다. 이들이 택한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나무를 태운 재에 옥수수 알을 하루 정도 담가 놓는 것이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그 이유를 모르지만 나뭇재를 넣은 물에 옥수수를 불릴 경우, 영양학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오랜 세월에 걸쳐 체득했던 것이다.

훗날,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은 알칼리 물에 옥수수를 불려놓으면 옥수수에 있는 트립토판의 화학 구조가 변해 체내에서 니아신으로 바뀔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알칼리 성질을 띠는 것이 바로 물질을 태우고 나오는 재였다. 참고로, 재의 주성분은 탄산포타슘으로 알칼리성이다. 알칼리성은 기름을 녹이는 성질이 있기에 알칼리 성질을 이용해 비누를 만들게 되면 물로 씻어도 좀처럼 깔끔하게 닦아낼 수 없는 기름을 비누물과 함께 녹여 씻어낼 수 있다.

인류학자들은 최초의 알칼리성 물질 발견이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은 뒤, 비가 오면서 남은 고깃덩어리의 기름이 녹아내리는 것을 목격함으로써 이뤄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후 맥락을 모른 채 남미를 정복했던 스페인인들은 옥수수 알을 나뭇재에 담가 놓는 원주민들을 보고 인디언들이 옥수수를 갈기 쉽게 하려는 것으로 보고, 오히려 이들이 게으르다고 몰아붙였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다른 문화의 음식을 받아들일 경우, 그 나라의 식문화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식문화 전문가의 조언은 깊이 새겨 들을 만하다.

덧붙이자면,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옥수수를 빻고 물에 타서 죽을 만들어 먹었는데 옥수수 죽만 단독으로 먹지는 않았다. 기록이 없는 까닭에 유물을 토대로 인류학자들이 조심스럽게 추정하는 바는 옥수수 죽과 함께 잉카인들이 인도의 전통 빵인 난처럼 화덕에 옥수수 죽을 구워서 먹었다는 것. 이와 함께 이들은 육류나 생선을 같이 먹고 물고기나 육류를 구하기 힘든 경우에는 호박 가루나 콩가루, 또는 강낭콩 줄기를 태운 재를 섞어 옥수수 반죽이나 옥수수 죽에 섞어 먹음으로써 옥수수만 단독으로 먹는 것을 멀리했다.

기록을 찾아보니, 옥수수만 단독으로 먹음으로써 걸리게 되는 펠라그라 병은 미국에서도 발병했었다. 식민지 개척 이후, 대규모의 플란테이션 농업이 행해진 미국 남부에서는 봄만 되면 펠라그라 병이 유행했다. 가을부터 봄까지는 추수해 놓은 밀을 먹었기에 문제가 없었지만, 밀이 떨어진 봄부터는 옥수수만 먹었기에 봄마다 펠라그라 병이 유행한 것이다. 우리네 보릿고개에 해당하는 시기에 미국 남부인들은 옥수수를 먹으며 버텼는데 니아신 결핍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영양 면에서 펠라그라병을 슬기롭게 피해간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지력 소모에 있어서도 그네들만의 대처 방식으로 난관을 현명하게 극복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옥수수와 콩, 호박을 합쳐 ‘세 자매’라 불렀으며 ‘세 자매’ 농법을 통해 옥수수가 소모하는 지력을 훌륭하게 메꿔 나갔다. 질소를 배출하는 것이 콩의 특성이기에 콩을 옥수수와 함께 심으면 옥수수가 급격히 소모하는 질소를 콩이 보충해 주었다. 더불어 콩은 옥수수를 지지대로 삼아 위로 잘 뻗어 오를 수 있어 훌륭한 공생 관계를 형성했다. 이와 함께, 호박은 넓은 입으로 자연 그늘을 형성하며 땅에 그늘을 드리움으로써 여타 잡초들이 끼어들 여지를 미연에 방지하며 옥수수와 콩이 더욱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말하자면 오늘날의 비닐 하우스와 같은 원리를 호박이 구현했던 셈이다. 이런 시너지 효과는 놀라운 생산력을 발휘해 옥수수와 콩, 호박의 세 자매는남미의 오지나 바위 절벽에 살던 원주민들에게도 넉넉한 먹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물론, 이 같은 농경 방식은 가축화된 소의 부재로 우경(牛耕)이 불가능했던 북아메리카에서도 토착 원주민들에게 똑같이 적용되며 그네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했다.

이러한 옥수수는 유럽 대륙에 도착한 이후, 비단길을 거쳐 중국에 소개되었으며, 우리나라에는 명나라 때에 전파되었다. 옥수수는 비슷한 시기에 일본으로도 전파되었는데 일본에서는 중국을 ‘당’(唐)이라고 불렀기에 ‘당’에서 건네온 곡물이라는 의미에서 ‘토우모로코시’라고 불렸다. 참고로, ‘토우’란 ‘당’의 일본식 발음이며 ‘모로코시’는 수수의 일본어이다. 당나라의 융성했던 문화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일본인들에게는 이후, 중국이 곧 ‘당’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며 오랜 세월 동안, ‘토우’로 불리게 됐다.

구황 작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며 척박한 땅에서도 놀랄 정도의 수확량을 보인 수퍼 곡물 옥수수에 대해 중국인들은 그 알알이 ‘옥’과 같다는 의미에서 그들이 아주 귀하게 여기는 옥(玉)을 붙여 ‘옥’과 같은 수수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하지만 옥수수는 쌀 문화에 기반한 동아시아에서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다가 20세기 들어서야, 일본과 한국에서 각광을 받게 된다. 태평양 전쟁에서 패한 일본을 기아에서 구제하기 위해 주일 미군이 옥수수 가루를 무상으로 배분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이 시대를 기억하는 일본인들은 패전 이후, 일본에 주둔한 미군으로부터 옥수수 가루를 무상으로 배급 받아 물에 타서 먹은 기억을 생생히 간직하고 있다. 물론, 한국인들도 6.25 전쟁에 미군이 나눠준 옥수수 가루를 똑같은 구황 먹거리로 기억하고 있고.

그렇게 구황 작물의 대명사로 인식됐던 옥수수는 세월이 흘러흘러 이제는 간식의 대명사로 그 역할을 탈바꿈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간식이 바로 강냉이. 중국의 강남에서 왔다고 ‘강남이’라 불리다가 후에 ‘강냉이’라 불리게 된 옥수수는 현재 전 국민의 훌륭한 저비용 고효율 간식으로 폭넓게 사랑받고 있다. 지방 함량도 낮고 나트륨도 적으며 많은 양에 비해 무게가 가벼워서 간식으로서는 안성맞춤이다. 하나 물기가 없는 탄수화물 덩어리기에 칼로리가 높아서 다이어트를 염두에 두고 있는 이들에게는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대상만은 아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동네에 자주 오던 뻥튀기 장수의 뻥튀기 시연이 이제는 영화와 소설 속의 풍경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대신 이미 만들어진 강냉이들이 커다란 비닐 붕지에 포장된 채, 뻥튀기 판매 트럭과 마트 입구에서 우리를 반기고 있어 세월의 변화를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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