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학과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제외하고, 어느 곳이든 내 소개를 할 때 “식품영양학과 전공하고 있어요” 라는 말을 하면, 돌아오는 질문은 “영양사 할 거야? 영양사는 뭐해?”라는 말뿐이었다. 답답한 건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언제나 “저도 잘 몰라요” 취업을 생각하기 이전에, 내가 이론이 아닌 현장에서 영양사가 하는 일을 아는 것이 기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작 무슨 일을 하는 지 경험해보질 않았으니, 내가 이 직업에 적성이 맞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

내가 이번 실습을 통해서 얻고 싶었던 것은 영양사라는 직업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영양사가 어떤 직업인지 경험하고 나서도 ‘나는 이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푸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림대학교 현장실습센터에 상담을 구하려다 풀무원 ECMD 영양사 실습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을 해버렸다. 1월 2일 첫 실습 날, 약간은 긴장을 한 채로 직원 분들과 인사를 하고 바로 업무를 시작했다. 12월 연말 후, 1일도 신정이었기 때문이었는지 매니저분 말로는 몇 년 만에 최고식수라고 하셨다. “첫날부터 정신없어 혼났겠네”라며 웃으시는 매니저님께 종아리가 ‘알타리무’가 되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투입된 실습생은 거의 업장을 뛰어다니다 시피하며 정신없었던 첫 날을 보냈던 것이다.

오전은 식재료, 물품의 규격, 수량, 품질 등을 검사하는 검수작업으로 시작한다. 배식을 하기 전 검식은 필수이기 때문에, 정확성을 위해 모르는 것이 생기면 즉시 영양사님께 질문을 드렸다. 검수 작업 후 착오가 있는 사항은 영양사님께 보고해 다시 발주를 넣기도 하였다.

주간식단표는 월요일, 영양성분표와 원산지표시는 매 중식과 석식마다 교체해서 게시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져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실습생이 할 수 있는 업무는 한정적이어서 그 다음 일들은 직접 실장님과 영양사님을 따라다니며 질문을 수차례 하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업무가 있지만, 영양사하면 제일 중요시 되는 능력이 메뉴선정과 관리이기에 정보를 얻고 싶었다. 그래서 매주 금요일마다 총괄영양사님과 조리사님 두분만이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휴게실은 춥다는 핑계로 영양사님께 회의하시는 데 옆에 있어도 되냐는 양해를 구해 회의를 엿들으며 음식선정에 대한 팁을 얻기도 했다.

해당 업장은 각종 특별식이 많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초코 퐁듀, 라이브사시미쇼, 미니붕어빵, 햄버거 등등 뒤이어 정신없는 행사가 가득했다. 그 중에서도 고객분 들이 가장 흥미로워 하셨던 행사는 초코 퐁듀와 라이브사시미쇼였던 것 같다. 초코 분수 기계를 외부에서 빌려와 진행하였는데, 1월 한파로 인해 외풍이 거칠었던 구내식당은 따뜻해야 할 초코시럽을 계속해서 굳혀버렸다. 굳어져 있는 부분을 막대기로 파내고 오븐 속에 넣어 둔 초코시럽을 붓는 작업을 계속해야 되는 나의 가운과 소매 자락은 초코로 뒤범벅이 되었다. 집에 가서 손빨래를 해야 할 생각에 급속도로 일명 ‘귀차니즘’이 몰려오기 시작하였지만, 고객들의 ‘어떻게 이런 걸 하실 생각을 하셨느냐’는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반응과 만족도 점수에 10점을 누르고 나가시는 모습을 보면, 내가 기획한 행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제일 나의 혼을 빼 놓았던 행사는 라이브사시미쇼였다. ECMD 일식 담당 조리사 분이 지원을 나오셔서 직접 눈앞에서 회를 뜨는 모습을 보여주며 배식을 하는 행사였다. 나는 그 옆에서 종류별로 여러 가지 회를 예쁘게 데코레이션 해드려야 했는데, 보통 작업이 아니었다. 1시간 반이라는 긴 점심시간이 있음에도 고객들은 11시 35분 점심배식이 시작되기도 전에 식당에 들어오셨다. 밀려들어 오는 고객들에게 일일이 회를 배식하는 것은 상상보다 더 복잡했다. 미리 준비를 해놓은 접시는 언제 다들 그렇게 가져가셨는지, 또 먹기만 해봤지 색과 모양만으로 비슷하게 생긴 회를 구별하는 작업이 너무 헷갈렸다. 조리사 분도 예상보다 고객들이 물밀 듯이 들어와 정신이 없어 보이셨는데 옆에서 실습생이 물어보는 게 많아서 골치 아팠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배식 후 오늘 고생했다는 말을 해주신 조리사 분께 감사할 따름이었고, 이 행사를 통해 식재료에 대해서도 조리사만큼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던 것 같다.

또한 배식을 하다 보면, 자주 보는 회사 고객분들과 안면을 틔게 되는데 알레르기가 있는 고객님, 다이어트를 하시는 고객님 등 내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서비스를 하면 ‘센스 있다’며 엄지 척을 올려주시는 고객들이 계신다. 이러한 모든 과정을 겪어보면, 영양사라는 직업도 결론적으로는 서비스산업이었다. 식재를 관리하는 것은 건강한 요리를 만들려 하는 것이고, 메뉴조리법을 고안하는 이유는 어떻게 하면 그 재료의 맛을 극대화할 것인가이며, 나라별(양식, 중식, 한식, 일식 등), 면류, 볶음밥, 덮밥류 등 다양한 메뉴를 선정하려는 것은 고객들이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식단을 작성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은데 학교에서 이론적으로 배우는 ‘영양성분이 어쩌고 저쩌고’가 아닌, 현장에서 현직 영양사님이 메뉴를 작성할 때 어떤 것을 생각하시는지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이전의 유명 패스트푸드점에서 일주일에 4-5번 5시간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카운터와 홀 담당이라 그 어떤 진상고객이 와도 친절하게 대답하고 웃어야 했는데 “그래, 알바니까. 하기 싫을 때 그만두자”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던 적이 있다. 하지만 ECMD에서는 딱히 불편한 고객이 없었음에도, 식사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서서 일하며 몸의 피곤함에 상관없이 고객을 맞이할 때는 밝은 미소로 웃어야 해서 안면 마비가 올 것 같았다. 퇴근하면 마치 중력이 나만 잡아당기고 있는 것처럼 침대로 고꾸라지고 잠이 없는 내가 저녁 10시가 되기도 전에 기절을 했다.

맡은 바 최선을 다하나 다소 큰 책임감은 필요하지 않은 아르바이트와는 달리, 앞으로의 내가 365일 다니게 될 수 있는 ‘직업의 직장’을 다닌다는 것의 무게감이 상당했었던 것 같다. 내가 상상하기만 했던 직업의 장단점을 온 몸으로 겪으며, 내가 앞으로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1년 전보다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고 ‘경험’이라는 과정은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되었다. 

/이수연 식품영양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