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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독립을 위해 힘쓴 김구 선생
홍새미 기자  |  sam4027@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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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01  07: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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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위해 힘써 주신 위인들을 나열해 보라고 말한다면 누굴 먼저 떠올릴까? 조국의 독립에 애쓴 김구 선생은 그 만큼 일제를 피해다녀야 하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 때문인지 살아생전 총 아홉개의 이름을 썼다고 하는 김구 선생. 그에 대해 알아보자.

평범한 개구쟁이 어린이 창암
김구 선생은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가난한 농부인 아버지 김순영과 어머니 곽낙원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김구의 아명(어릴 적 이름)은 창암(昌巖)이었다. 창암은 아버지가 숨겨놓은 돈을 갖고나와 떡을 사먹으려다 아버지께 혼나기도 했고, 엿이 너무 먹고 싶어 아버지 수저를 부러뜨려 엿으로 바꿔 먹기도 하는 등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평범한 개구쟁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은 창수
18세가 되던 장암은 ‘모든 이는 신분과 관계없이 평등하다’는 동학사상과 이런 세상에 대한 기대와 지향을 담아 이름을 창수(昌洙)로 이름을 고치게 됐다. 앞으로 이어질 아홉번의 개명의 시작이었다. 성인이 된 김창수는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게 죽임을 당한 뒤 스치다 조스케라는 사람을 보게 됐고, 왜놈임을 느낀 김창수는 그를 죽였다. 그리고는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왜놈을 죽였다. 해주 백운방 김창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탈옥으로부터 위장 김두호, 승려생활을 위한 원종
이후 김창수는 체포돼 감옥에 갇혔다. 갖은 고초를 당하던 김창수는 2년 뒤인 1898년 탈옥을 감행해 성공했다. 그 후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김두호(金斗昊)라는 가명을 쓰게 된다. 이후 김창수는 지방을 떠돌다 공주 마곡사에서 승려 생활을 잠시 하게 됐는데 이때 원종(圓宗)이라는 이름을 받아 생활하게 된다.

두번째 위장 가명 김두래, 첫 번째 김구(龜)
승려 생활을 마친 김창수는 고향으로 내려와 농사를 지으며 살아갔다. 그러다 감옥시절 자신을 도와줬던 김주경의 소식을 듣고 그가 있다는 강화로 간다. 그때도 그는 신분을 위장해야 했는데 이를 위해 김두래(金斗來)라는 가명을 짓고 강화로 떠나게 됐다. 강화에서 만난 김주경의 친구 유완목은 김창수의 이름이 쓰기가 불편하다며 다른 이름을 권유한다. 그 이름이 바로 김구(金龜)다. 김구의 구는 거북이 구(龜)자를 쓰고 자는 연상(蓮上) 호는 연하(蓮下)를 썼다.

왜놈의 국적에서 벗어나려 거북이 龜에서 아홉 九로
안악사건에 연루돼 감옥 생활을 하던 김구는 일왕 및 일왕 왕비의 사망으로 형량이 감형돼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된다. 이때 김구는 스스로 자신 이름의 뜻을 아홉 구를 써 김구(金九)로 바꾼다. 동시에 호 역시 백범(白凡)으로 바꾸는데 이는 여러해 동안 옥살이를 하면서 “나라가 독립하려면, 천한 백정이나 무식한 범부(올바른 이치를 깨닫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나만큼의 애국심은 가져야 하며, 나부터 그 길에 앞장서겠다”는 각오를 다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제로부터의 위장 장진구ㆍ장진
이후 상해로 넘어가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펼친 김구. 일제는 김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는데 특히 이봉창, 윤봉길 의거 이후 이는 더욱 심해졌다. 거액의 현상금이 붙을 정도였다. 이에 김구는 일제의 눈을 피하기 위해 아버지 외가 쪽 성씨를 따 성을 장(張)씨로 바꾸고, 이름은 진구(震球) 혹은 진(震)으로 고쳐 장진구ㆍ장진의 이름으로 절강성 가흥에서 도피 생활을 하게 됐다. 이때 김구는 중국 남부 광동인으로 행세함은 물론, 반벙어리 시늉까지 했다고 한다.

고된 일을 자청하며 이름을 여러 번 바꾼 백범김구
늘 일제를 피해 몸과 이름을 숨겨왔던 김구는 1938년, 당시 그의 나이 63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백범 김구로 이름을 당당히 밝히고 활동한다. 백범이란 호는 그가 평소 젊은이들에게 힘주어 말했던 ‘쟁족(爭足)’이란 단어와 맥이 닿아 있었다. 쟁족이란 서로 우두머리가 되려 싸우지 말고 발이 되려고 애쓰라는 뜻으로 이는 곧 높은 자리를 사양하고 낮은 자리, 고된 일을 자청하는 것을 말한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고된 일을 자청하고 이름을 여러번 바꾸며 살아야 했던 김구. 그가 보여준 나라를 향한 사랑과 희생을 감사히 여기고 잊지 말아야 한다.
홍새미기자
sam4027@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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