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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꼰대] 꼰대의 일기, 그 첫장을 열며옳은 소리를 해도 꼭 욕을 듣는 ‘꼰대’ 꼰대는 다음 세대 위해 꼰대질 해야…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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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23  1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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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영등포구의 한 신문사에서 인턴십을 이수하던 지난해 1월. 고뿔이 들어 한참을 끙끙 앓으면서도 내색 한 번 하지 않은 기억이 생생하다.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기침을 막느라 하루 종일 고역이었다.

무슨 거창한 이유가 있던 건 아니다. 욕심 때문이었다. 칭찬이 고팠다. 그래서 항상 손놀림을 빨리했고, 재밌는 기삿거리를 찾으려고 골머리를 앓았다. 출근은 되도록 빨리했다. 퇴근 이후에도 기사를 쓴 날이 많았다. 두 달간의 인턴십이 끝나고, 신문사는 내게 계속 기사를 써달라고 제안해왔다. 재택근무를 하는 식이었다. 지방 사립학교 출신이 출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고생하셨네요. 저는 그렇게 못할 겁니다.” “부럽습니다. 안 힘드셨습니까.” 놀랍다는 듯이 물어오는 후배 앞에서 나는 언젠가 이 얘기를 무용담을 늘어놓듯 떠들어댔다. 기사를 하루에 10개 넘게 쓰기도 했다는 둥, 실시간으로 엠바고(보도유예) 요청을 받아봤다는 둥. 같이 인턴십을 수료한 친구는 “기사를 잘못 써 항의 전화만 수 백 통을 받았다”고 해 좌중을 기함하게 했다.

바통을 건네받을 후배에게 조언을 주고자 모인 자리. 하지만 몇몇은 초점도 없이 허공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서요”라고 되묻는 듯한 눈빛도 더러 있었다. 사춘기에 들어설 무렵 아버지의 뻔한 조언을 들으며 느낀 시큰둥함. 딱 그것이었다. 갑작스레 싸해진 분위기. 후배의 눈빛을 제대로 헤아리지도 못하고, 분위기에 떠밀려 급히 화두를 돌렸다.

얼마 뒤 나이차가 크지 않은 후배가 그 눈빛의 뜻을 미주알고주알 해석해줬다. “불편했다고 하더라.” “너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 같았다나 뭐라나.” “오빠야 옛날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많이 어이없고 당황스럽고 그렇겠다.” ‘꼰대’ 같았다는 얘기였다.

부끄러웠다. 고작 두 달간의 고생담을 갖고 허풍을 부린 것만 같았다. 게다가 꼰대는 스물다섯의 나이에 어울리는 수식어도 아니지 않은가. 홍조가 띤 것 같아 적당히 얼버무리고 자리를 떴다. ‘구시화문(口是禍門).’ 생각 없이 지껄이지 말자고 수십 번을 다짐했다. 먼저 조언을 구해오더라도 모른 척했다. 과해질 것이 우려돼서다.

웃프게도 많은 또래가 나와 얼추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어쭙잖은 무용담을 늘어놓다 눈총세례를 받은 기억. 대다수는 얼굴을 붉혀가면서도 옷깃을 한껏 여미는 계기로 삼았다. 그러나 여전히 몇몇 친구는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꼰대가 꼭 틀린 얘기만을 하지는 않다고 항변했다.

주로 아프고 배고팠던 과거를 얘기할 때 꼰대라는 꼬리표가 달라붙는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꼰대가 되기 위해서는 사무치게 힘들었던 기억이 한 두 개쯤은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꼰대는 다음 세대가 맛 봐야 할 더럽고 치사하고,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한 사회생활을 안다. 적어도 힘든 시기를 지혜롭게 이겨내는 법을 알려줄 수 있다.

꼰대는 아무리 입바른 소리를 하더라도 꼭 욕을 먹는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라는 것처럼 말한다는 이유에서다. 조직에 대한 헌신을 강요하는 것 같다는 호소도 많다. 그래서일까. 항간에는 ‘헌신하다 헌신짝이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럼에도 앞선 세대의 어쭙잖은 무용담은 다음 세대로 전수돼야 한다. 꼰대는 욕을 듣더라도 ‘꼰대질’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 다음 세대가 더러운 꼴을 덜 본다.

다만 세대 갈등이 극심한 지금은 보다 지혜로운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한데 붙어 있지만 서로 다른 방향을 보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하는 마음가짐. 어쩌면 이 정도의 존중심이 갈등을 치유하는 시작일지 모른다. 얼마 전 문유석 서울동부지방법원 부장판사가 쓴 칼럼에서 그 지혜를 엿보았다.

“회식 때 괜히 술잔 주며 ‘우리가 남이가’ 하지 마라. 남이다. 존중해라. 밥 먹을 때 소화 안 되게 ‘하고 싶은 말 자유롭게 해봐’ 하지 마라. 자유로운 관계 아닌 거 알지 않나. 상사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라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부터 찰떡같이 말하면 될 것을, 이 무슨 개떡 같은 소리란 말인가…”

꼰대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개중에는 대화가 통하는 꼰대도 있다. 옛것을 말하면서도 새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그것이 앞으로 꼰대가 될 우리가 지향해야할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한 학기간 연재할 ‘젊은 꼰대가 바라본 우리 사회’도 그런 자세로 써야겠다. 식견이 다소 짧아 종종 헛소리를 할 수 있다. 정성 어린 비판은 감사하게 듣겠다. 남은 학창시절의 갈무리를 도와준 한림학보에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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