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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주 칼럼] 그들은 가난해서 죽었다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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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09  11:2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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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房)이라기보다 관(棺)이라고 불러야 할 공간.’ 소설가 박민규는 2004년 출간한 단편소설 ‘갑을고시원 체류기’에서 고시원의 쪽방을 관에 비유했다. 1평도 채 안 되는 방안의 적막감과 칸칸이 비슷한 처지의 이웃이 있지만 인기척을 내서는 안 되는 역설을 그렸다.

다만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90년대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아직은 남아 있을 무렵이다. 많은 20대가 이 사다리에 타고자 가족과 이산해 고시원을 찾았다. 머잖아 고시에 합격해 쪽방을 탈출할 수 있다는 한 가닥 희망만이 그들을 버티게 했다. 기지개도 켜지 못하는 그곳에서 그들은 적게는 몇달에서 많게는 몇년간 가족을 그리워했고, 배를 곯았다. 건넌방에서 이삿짐을 꾸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날에는 묘한 감정의 격발이 일었다.

30여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의 고시촌도 겉보기에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비좁고 냄새나고 우중충하다. 그러나 딱 한 가지가 다르다. 이 쪽방에는 더 이상 고시생이 살지 않는다. 이삿짐을 꾸리는 소리도 끊긴 지 오래다. 고시가 상징한 계층 이동의 흔적이 사라지면서부터다.

고시생이 떠난 자리에는 일용직 노동자나 기초생활대상자, 사회초년생이 스며들었다. 고시원은 제대로 된 방 한 칸조차 구할 형편이 못되는 소외 계층 전용의 주거로 풍속도가 변했다. 항간에는 ‘현대판 판자촌’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까지 떠돈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고시원 외 다른 곳에서의 미래는 꿈꾸지 않는다. 애써 긍정하고 만족하는 법을 배운다. 똑같은 처지의 이웃을 위안 삼아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낸다. 죽는 날까지 외롭고, 고달프게. 간판은 고시원이지만 고시생은 단 한 명도 없는 이곳을 대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관’ 이외에는 적당한 호칭이 떠오르지 않는다.

고시원은 각지의 빈민층을 빨아들이면서 되레 늘고 있다. 2004년까지만 해도 3천910곳에 불과했던 고시원은 2008년 6천126곳으로 꾸준히 늘더니, 2017년에는 1만곳을 넘어섰다. 13년 만에 3배가 늘어난 수치다. 이곳에 15만2천여명이 살고 있다.

우리 헌법에는 모든 국민이 쾌적한 곳에서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돼 있다. 집짓기에도 면적이나 채광 등을 고려하는 최소한의 주거 조건인 ‘최저 주거기준’이 적용된다. 그러나 이 권리는 고시촌 주민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최저 주거기준에는 1인당 14㎡(4.2평)에 부엌과 수세식 화장실 등을 갖춰야 한다고 돼 있지만, 고시원은 예외다. 면적이 비좁아도, 창이 없어도 괜찮다. 건축법상 집으로 분류되지 않는 탓이다. 이 때문에 고시원은 건축기준과 소방안전기준 외에는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

지난해 겨울에는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가스비를 아끼려고 튼 전기난로가 화근이었다. 소방당국은 “스프링클러조차 구비되지 않은 소방설비가 피해를 키웠다”며 “2009년 이전에 지어진 고시원에도 2년의 유예기간을 주고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게 하는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2009년 7월 고시원에도 스프링클러 등을 설치하게 하는 법안이 통과됐지만, 1983년 지어진 국일고시원에는 소급해 적용되지 않았다.

소방설비를 제대로 갖췄더라면, 전열기를 켜고 잠들지만 않았더라면 7명의 고인은 오늘 그리운 가족의 품에 안길 수 있었을까. 아파도 내색 한 번 못하고 밥벌이를 해왔지만, 현주소는 고작 1평 남짓한 고시원이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가난의 족쇄는 천력 같았다. 당최 노력한들 끊을 수가 없었다. 비루하고 흉측했어도 누구보다 살려고 아등바등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가녀린 손 한 번 잡아주지 않았다.

어쩌면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건 화마가 아닐지도 모른다. 국일고시원 참사 유족은 “화재의 원인은 전열기가 아니라, 이처럼 열악한 곳에 사람이 살도록 용인했던 현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유족의 힘없는 목소리가 유난히 귓가에 오랫동안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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