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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교수의 '식탁위의 인문학'] 조선 영·정조때의 변상벽, 일명 ‘변고양이’ ‘변닭’ 약점 보인 산수화대신 동물화로 조선 최고 올라정밀 묘사가 백미인 그의 작품에 대해 정약용은 ‘여운당전서’에서 극찬하기도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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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27  09: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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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변상벽의 ‘계영자도’. 어미닭이 병아리들에게 모이를 챙겨주는 모양이 생동감 있게 묘사돼 있다.
지난 시간에는 소 그림으로 잘 알려진 국민 화가, 이중섭이 닭에 대한 작품도 다수 남겼다는 글을 전했다. 오늘은 이중섭에 대해 몇 자 더 얹은 뒤, 닭을 사랑한 다른 이들의 작품도 소개하고자 한다.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가족들과 생이별을 한 채, 풍찬노숙하다 병들어 죽은 이중섭의 가슴 먹먹한 인생을 보노라면 프랑스의 천재 화가, 툴루즈 로트렉이 떠오른다. 프랑스의 유서 깊은 백작 가문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것이 부유하게 자랐건만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뒤, 성장이 멈춰버린 그는 대단히 왜소한 체구를 지닌 비운의 예술가였다.

당시, 유럽에서는 순혈주의를 위해 귀족들 간의 근친 결혼이 성행했는데, 로트렉의 아버지와 어머니 역시, 사촌지간이었다. 그리하여 사촌 사이에서 태어난 로트렉은 뼈가 쉽게 골절되는 선천적 유전 질환을 지니게 되었고 말에서 떨어지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 뒤, 평생을 불구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성장이 멈춰버린 로트렉을 아버지는 냉담하게 대했고 여기에서 깊은 상처를 받은 로트렉은 그림 그리는 것으로 상심을 달랜다. 결국 로트렉은 그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았던 어머니의 만류를 뒤로 한 채, 무작정 파리로 상경해 몽마르트에 있는 카바레 ‘물랭루즈’에 취직한다. 월급이 없는 대신에 당시 가난한 화가들이 즐겨 마셨던 독주, 압생트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참고로 압생트는 도수가 높지만 가격은 저렴해 우리나라의 소주, 러시아의 보드카에 해당하는 술이며 예술가들에게 인기가 많아 네덜란드의 화가 반 고흐는 ‘압생트와 카페 테이블’이란 제목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렇게 로트렉은 ‘물랭루즈’에서 전속 화가로 일하며 르누아르 같은 인상파 화가들과 교류하게 된다.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던 로트렉은 귀족들의 위선을 경멸하며 서커스, 운동장, 무용소 등에서 벌어지는 서민들의 일상을 즐겨 그렸다. 그는 특히 자신의 일터였던 술집, 물랭루즈의 무희들을 즐겨 그렸으며 그의 작품은 지금도 전 세계 많은 이들의 두터운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지독한 자괴감은 그를 방탕하고 문란한 생활로 몰아넣었고, 건강을 크게 해친 로트렉은 알콜 중독 증세로 37살의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이야기가 다소 길어졌다. 각설하고, 현대에서 닭을 사랑한 대표적인 한국 화가가 이중섭이라면 변상벽은 닭을 사랑한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예술가이다. 조선 영·정조 때의 화가인 그는 어릴 적부터 유달리 수줍음이 많았으며 행동조차 느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하지만 뛰어난 그림 실력을 인정받아 국가 기관인 도화서에 소속돼 임금의 얼굴인 어진을 그리기도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도화서에서 술에 취한 동료가 그린 산수화를 보고 자신이 산수화에서는 도저히 동료들을 능가할 수 없음을 알고 실의에 빠져 있다가 자신의 주변에서 자주 접했던 고양이와 닭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

특히, 고양이의 경우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자신에게 큰 위안을 주었으며, 닭은 병아리에 대한 어미닭의 사랑이 그의 감정을 움직였기에 이후, 고양이와 닭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일은 그에게 있어 평생의 업이 된다. 그런 그에게 훗날 붙여진 별명은 이름하여, ‘변묘,’ 또는 ‘변계,’ 말하자면 ‘변고양이’ 또는 ‘변닭’이었던 것이다. 고양이와 닭 묘사에 있어 일군을 이룬 이후, 그의 동물 그림이 얼마나 인기가 높았던지 변상벽으로부터 고양이와 닭 그림을 받고자 그의 집 앞은 1년 365일 줄을 선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명작 ‘암탉과 병아리’를 보면 벌 한 마리를 물고 새끼들에게 건네주려는 어미 닭과 각양각색의 모양새로 어미 곁에 서 있는 올망졸망 병아리들의 모습이 정겹고도 정밀하게 묘사돼 있다. 필자가 존경해 마지 않는 다산 정약용 선생조차 변상벽의 이 그림을 보고는 그의 저서 ‘여유당전서’에 독후감을 남겼을 정도다. 이름하여 ‘제변상벽모계영자도’(題卞相璧母鷄領子圖)가 그것이다. 굳이 풀자면, ‘변상벽의 ’암탉과 병아리‘(모계영자도)를 보고 씀’이라는 뜻이며 ‘모계영자도’란 ‘어미닭이 병아리들을 보살피는 그림‘이라는 의미다. 다음은 다사 정약용의 독후감 가운데 일부.

변상벽을 변고양이라고 부르듯이 고양이 그림으로 유명하네. 이번에 다시 닭과 병아리의 그림을 보니 마리마다 살아있는 듯하네. 어미닭은 괜스레 노해있고 안색이 사나운 표정, 목덜미, 털 곤두서 고슴도치 닮았고 건드릴까봐 꼬꼬댁거리네 (중략)(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선정 우리 유물 100선, 글 이혜경)
                     
결국, 변상벽은 화가에게 있어 가장 명예로운 자리인 국수(國手)가 되었을 뿐 아니라, 고양이와 닭 그림에서는 조선 제일로 등극하게 된다. 더불어 그 같은 사실주의적 묘사력을 인정받아 영조의 어진은 물론, 사도 세자의 초상화도 그리게 된다. 훗날, 정조가 변상벽이 그린 사도 세자의 초상화를 보고 “아버님이 살아 돌아오신 듯하다”며 눈물을 지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렇게 볼 때, 수려한 산수화와 달리 정밀한 묘사력에서 강점을 발휘한 변상벽은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는 대신, 장점을 더욱 보강한 전략가였다. 레드 오션을 피하고 블루오션을 택함으로써 역사에 이름을 남긴 혜안(慧眼)의 명인이었던 셈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의 고양이 그림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몇몇 작품들이 현재는 일본에 소장돼 있다는 사실. 모르긴 해도 일제 침략 시절, 고양이를 워낙 좋아한 일본인들이 불법적으로 반출해 간 것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든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국내의 여타 닭 화가들과 함께 중국과 일본의 닭 화가들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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