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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저를 만나다] 우리에게는 사색하고 글을 쓸 공간과 돈이 필요하다-버지니아 울프,『자기만의 방』(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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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27  09:3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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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이 픽션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1장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이다. 『자기만의 방』은 영국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1882~1941)가 케임브리지 대학교 내 여자대학인 거턴과 뉴넘에서 ‘여성과 픽션’을 주제로 한 강연을 바탕으로 집필한 책이다. 여성작가들을 문학사 안에 위치시킨 최초의 시도이자 성을 중심으로 문학적, 지적 유산을 논의한 이 책은 여성문학비평의 정전(canon)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은 6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에서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자기만의 방’=공간과 ‘돈’=경제력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이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작가는 가상의 남자대학 옥스브리지와 여자대학 훤엄을 비교, 대조하면서 논의를 전개한다. 옥스브리지에서의 풍족한 오찬과 훤엄에서의 초라한 정찬, 그리고 이 두 대학의 설립과정에서 기부금이 현격하게 차이가 났던 이유가 여성의 경우 출산으로 인한 경제적 활동의 단절, 돈을 벌더라도 그것을 소유할 수 없는 법적 제약에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또한 옥스브리지 내 잔디밭을 가로질러 걸어가다 교구관리에게 제지당하고, 여성이 도서관을 출입하려면 (남자) 대학연구원을 동반하거나 소개장을 소지해야 한다며 금지당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독자들의 공감과 분노를 자아낸다. 2장에서 울프는 여성이 어떤 존재인가, 여성은 왜 가난한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영국박물관을 찾아가 여성을 주제로 한 책들을 검토한다. 그런데 그 책들은 여성의 열등함을 강조하는 것들이 태반이었다. “~의 두뇌가 작음, ~의 정신적, 도덕적, 신체적 열등, ~의 허영심, ~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견해, ~에 대한 존슨박사의 견해”와 같은 책의 제목에서 ~에 들어가는 단어가 여성임은 쉽게 눈치 챘을 것이다. 여성은 육체적, 지적으로 열등하거나, 권위 있는 남성 지식인의 견해로만 재현되는 존재였다. 이 책의 3장은 “셰익스피어에게 놀랄 만한 재능을 가진 누이, 이를테면 쥬디스라 불리는 누이가 있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문제제기로 시작한다. 울프는 셰익스피어의 누이가 아무리 재능이 있다 하더라도 아버지나 오빠의 그늘에 가려진 채 미치거나, 총으로 자살하거나, 마을 변두리의 외딴 오두막에서 마녀로 몰려 공포와 조롱의 대상으로 일생을 마쳤을 거라고 단언한다. 실제로 당시 글 쓰는 여자들은 자신의 작가성을 감추고 남자의 이름을 빌려 쓰는, 일종의 베일(veil) 전략을 써야 했다. 울프는 4장에서 이런 여성작가들 덕분에 마침내 19세기에 조지 엘리어트, 제인 오스틴, 에밀리 브론테같은 여성 고유의 경험을 고유의 언어로 표출하는 위대한 여성문학 전통이 수립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6장에서 울프는 말한다. “연간 오백 파운드는 심사숙고할 수 있는 능력을 상징하며, 문에 달린 자물쇠는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들에 달려있다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중요한 정언명제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사색하고 책들을 보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싯줄을 흐름 속에 깊이 담그”는 꿈. 버지니아 울프가 꿈꾸었던 삶은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가 20대에 간절히 바랐던 꿈이자, 지금도 헬조선에서 자기만의 방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소확행으로 일시적인 위안을 삼는 나의 누이 혹은 딸들이 꿈꾸는 삶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만의 방』은 거의 백여 년 전에 쓰인 책이지만 여전한 울림을 우리에게 준다. 이 책은 작가 특유의 ‘의식의 흐름’ 기법이 간혹 쓰인데다가 세계사나 영국문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연설을 기반으로 한 대화체의 형식으로 쓰였고, 여성과 관련된 여러 허구적 상황들이,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현실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공감하며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김양선 일송자유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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