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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교수의 '식탁위의 인문학'] 놀랄 때 창피할 때 말하는 ‘닭살 돋는다’ 한국 중국 일본 모두 같은 표현 사용해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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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25  10:3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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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오독(五毒)을 물리치는 닭 이야기와 함께, 닭을 그리는 일본의 유명 화가들에 대해 알아봤다. 오늘은 그 후속탄으로 일본의 국민화가 카츠시카 호쿠사이에 대해 몇 자 소개하고자 한다.

동시대에 우타마로와 쌍벽을 이룬 카츠시카 호쿠사이는 에도 시대 말기의 화가다. 1760년에 태어나 1849년에 죽은 그는 89세에 생을 마감한 장수 화가다. 그런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에서 다양한 풍경화와 풍속화들을 그렸으며 그의 작품들은 안도 히로시게라는 우키요에 화가와 함께 훗날 프랑스 인상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이름 하여 ‘자포니즘’ 열풍이 그것. 그런 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후지산 36경’이 있는데 여기에서 그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후지산 풍경을 36장의 판화에 아름답게 담아내고 있다.

호쿠사이는 동물도 즐겨 그렸는데 그 가운데에서 닭으로 유명한 그림은 ‘군계도’이다. 여섯 마리의 닭들이 한데 모여 조밀하게 얽혀있는 채색 목판화, ‘군계도’는 푸른 색 바탕의 부채꼴 화선지 위에 수탉과 암탉들이 흰색, 검은색, 노란색, 푸른색, 붉은색의 조화 속에 농밀하게 어우러져 있다. ‘군계도’는 여백의 미(美)보다 꽉 찬 구도와 화려한 채색을 좋아하는 일본 미술의 특색을 고스란히 보여줌으로써 치바이스의 담백한 닭 그림과는 사뭇 다른 그림 맛을 선사한다.

한편, 호쿠사이와 같은 시기에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진 또 한 명의 천재 화가로는 토슈라이 샤라쿠를 들 수 있다. 1794년 5월에 등장해 딱 10개월 동안만 활약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는 일본에서 대단히 미스터리한 화가다. 그런 그의 깜짝 등장은 단원 김홍도가 정조의 명을 받고 일본에 몰래 대마도 지도를 그리러 간 시기와 비슷하게 겹치면서 양국 미술계의 범상치 않은 주목을 받아 왔다. 이에 따라 말 만들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단원 김홍도가 곧 토슈라이 샤라쿠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잠깐 활약한 후 다시 귀국했다는 그럴 듯한 주장을 펼친다. 혁신적인 구도와 함께 서민적인 풍경을 잘 그려낸 호쿠사이의 그림풍이 김홍도와 비슷하다는 이유에서다. 마치, 모차르트의 라이벌인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질투해 그를 사실상 죽음에 몰아넣었다는 픽션 영화, ‘아마데우스’와 유사한 플롯을 지니고 있다고나 할까?

물론, 양국의 미술 학계에서는 이러한 상상을 말도 안 되는 공상으로 치부하지만 공상은 언제나 즐거운 상상을 안겨주는 법. 미래엔 언제고 이를 소재로 한 그림 영화가 만들어지기를 고대해 본다.

참, 모처럼 일본 이야기가 나왔으니 닭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더 얹자면 우리의 옛 그림에서 벼슬을 한다는 의미로 사랑받았던 닭 벼슬이 이웃나라 일본에선 전혀 다른 의미로 통용됐다는 것이다. 닭 벼슬의 일본어는 ‘토사카’(とさか)인데 ‘토사카니 쿠루’(とさかにくる)라는 표현은 일본어로 ‘약이 오른다, 화가 난다’라는 뜻이다. ‘화가 나서 피가 머리로 치솟는다’라는 의미란다. 짐작컨대, 과거제라는 행정 고시를 통해 국가 공무원을 선발했던 중국, 한국과 달리 일본은 신분세습제의 봉건국가였기에 닭 벼슬은 그저 약이 올라 머리끝이 빨개진 것으로만 보였던 듯싶다.

돌이켜 보면 우리네 일상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생활 용어의 대상 가축 또한 닭이다. 머리가 빨리 돌지 않으면 닭대가리라고 놀림 받고 눈물은 닭똥 같이 흘리며 춥거나 놀랄 때, 그리고 부끄러울 때면 닭살이 돋기 때문이다. 참, ‘닭살 돋는다’는 표현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국, 일본 모두 같은 상황 아래에서 통용된다. 반면, 미국은 이럴 때 닭살 아닌 ‘거윗살이 돋는다’(goose bumbs)고 표현한다. 양 대륙 간의 먼 거리만큼이나 멀게 느껴지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닭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버릴 것이 단 하나도 없는 귀한 가축이다. 머리에서는 닭 벼슬에서부터 닭 부리, 닭 모가지, 닭대가리가 있으며 몸통에서는 모래주머니, 닭 가슴살, 다리, 심지어는 닭똥집(모래주머니)까지 나온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닭발까지 먹는 민족이 한민족이다. 물론, 요리를 하게 되면 통째로 삶는 것뿐이 아니라 아예 닭의 뱃속에 밥과 온갖 과실을 넣고 푹푹 쪄서 고기와 뱃속의 재료는 물론, 그 국물까지 다 마셔버리는 이들이 우리다. 그런 닭은 따라서 사위가 와야 대접하는 귀한 동물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런 닭과 관련한 판화전이 2년 전인 정유년에 원주의 고판화 박물관에서 열린 바 있다. ‘닭의 해’를 맞아 동·서양의 닭 관련 판화를 한 자리에서 모았던 당시의 전시회에서는 이제껏 필자가 소개한 온갖 종류의 닭 그림이 대거 선보였다.

정월 초하루에 호랑이와 함께 액을 물리치고 복을 불러오는 길조로 인식됐던 닭. 대보름 새벽에 우는 소리를 들으면 풍년이 든다고 여겨졌던 대상.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행복한 한 해를 기원하기 위해 정월 초하루에 판화로 찍거나 그림을 그려 대문에 붙였던 가축. 그런 닭이 이제는 야구와 축구 경기를 보며 맥주와 함께 입맛을 돋궈주는 대상으로 우리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배틀 그라운드’란 슈팅 게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먹거리가 바로 닭이다. 상대방을 다 쏴 죽이고 게임에서 이기면 승리 표시와 함께 뜨는 메시지가 ‘오늘밤엔 치킨 먹자’(친완츠지-今晚吃鸡)이기 때문이란다.

그럼, 이번 학기의 마지막 칼럼은 닭이 우리에게 주고 가는 마지막 선물, 계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닭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그 소재가 무궁무진한 계란 이야기, 다음 호에 올려보겠다.

어느새 봄 학기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제 종강이 코앞이고 여름 방학이 목전이다. 그럼, 막바지에 모두들 잘 살아남기 바란다. 참고로 한국에서 ‘보충주’로 불리는 시험 전주가 미국에선 ‘생존주’인 ‘서바이벌 위크,’ 기말 고사 주는 ‘죽음의 주’인 ‘데드 위크’라 불린다. 그럼, 생존주를 잘 넘긴 후, 죽음의 주에서도 살아남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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