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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의 인문학] 한민족의 흰옷 사랑은 기원전 부여 시대부터 시작 조선시대엔 몇 차례 흰옷 금지 시도했지만 늘 실패유가 철학에 영향 받은 백자 문화는 현대판 미니멀리즘의 효시 일본 무인양품은 조선 사대부의 생활 용품을 상품화한 느낌 줘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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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07  14: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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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흰색 사랑은 유별나다. 먼저 옷을 놓고 보면 ‘백의민족’이라는 칭호가 우리 민족을 표상한다. 음식에서도 한국인의 흰색 사랑은 남다르다. 특히 백미로 만든 흰쌀밥은 오랜 세월, 한국인들에게 있어 풍요와 부귀를 상징하는 소울푸드로 역할했다. 그래서일까? 이밥에 고깃국을 모든 인민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은 북한 김일성이 살아 생전 가장 자주 입에 올리던 화두였다. 참고로, 이밥이란 흰쌀밥을 뜻하는 북한 사투리. 해서, 김일성의 이밥에 고깃국 어록은 한국에서조차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배를 곯던 많은 이들의 월북(越北)을 곧잘 유도했다. 한국 전쟁 이후, 먹고 살기가 녹녹치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물론, 지금은 건강을 챙기기 위해 오히려 흰쌀밥을 기피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말이다.

한국인들의 흰색 사랑은 떡에서도 잘 드러난다. 백설기에서부터 송편, 가래떡과 떡국떡이 모두 흰색이다. 반면, 다양하고 화려한 색깔을 좋아하는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에서 흰색 음식을 찾아보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의 흰색 사랑은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적어도 옷을 통해 살펴보는 한민족의 흰색 사랑은 우리네 생각보다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최남선이 1946년에 저술한 「조선상식문답」에 따르면 우리 민족이 흰옷을 숭상한 것은 기원 전인 부여 시대 때부터로 이후, 신라와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한민족은 한결같은 외길 사랑을 보여 왔다. 이러한 최남선의 주장에 전거(典據)를 제공하는 문헌은 진나라 진수의 「삼국지위지」로 이 책의 ‘부여조’에서는 “부여가 흰색을 숭상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명나라 사신인 한림원 시강 동월의 「조선부」에서도 한반도에는 굵은 베옷이 많고 옷은 희며 치마는 펄럭거리는데 주름은 성글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고종 3년과 고종 5년에 한국을 찾은 독일의 상인 에른스트 오페르트는 「금단의 나라 조선 기행」에서 조선인들의 옷은 성인의 경우, 남자건 여자건 대부분 희며 어린이들은 갖가지 색깔의 옷을 입는다고 진술한다. 그런 그는 조선인들의 흰옷이 사랑스럽고 친근한 인상을 전해준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개화기에 우리나라를 네 차례나 다녀간 이사벨라 비숍을 포함해 조선 땅에 머문 이방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확인한 사실이었다. 그런 까닭에 당시 조선을 방문한 어느 외국인은 조선인들이 모인 모습이 마치 ‘솜 밭처럼 희다’고 회고한 바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인의 흰색 사랑에 반발해 정부 차원에서 이러한 편애를 고쳐보려 몇 차례 시도했다는 것. 그 대표적인 예가 갑오경장 때 행해진 변복령(變服令)이다. 단발령과 함께 단행된 변복령의 요지는 관민 모두 흑색 옷을 입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시도가 잘 먹혀들지 않자 정부는 1906년에는 아예 법령으로 흰옷 착용을 금지했다. 물론, 그 결론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사실, 구한말에 시도된 이 같은 조치는 조선 왕조에 있어 처음은 아니었다. 이와 관련해 이수광의 「지봉유설」과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서는 흰옷이 상복과 색이 같아 왕에 따라 금지령이 종종 내려졌다고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조선조에서는 처음으로 태종 원년에 흰옷 착용 금지령이 내려졌으며, 세종 7년에도 정부 관리가 흰옷 입는 것을 금지한 바 있다. 또, 연산군 11년에도 도성의 여성은 흰색 치마를 입을 수 없었으며, 숙종 2년과 17년, 현종 때와 영조 때에도 흰옷이 금지된 적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 흰옷 숭배에 대해 한국의 토속 문화에 관심이 남달랐던 일본 민속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친일 월간 잡지였던 「조광」에서 ‘조선의 미술’이라는 기고문을 통해 “어찌 된 연유로 늙은이와 젊은이, 남자와 여자, 모두 흰색 옷을 입는 것일까? 이 세상에는 나라도 많고 민족도 많다. 그렇지만 이처럼 기이한 현상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시선을 돌려보면 한국인들의 흰색 사랑은 비단 옷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유가 사상을 통치 철학으로 삼았던 조선 시대는 흰색이 통치색이나 다름없었다. 선비들은 흰색 도포를 착용하고 흰색 바탕의 시, 서, 화를 즐겼으며 담백하고 수수한 백자를 사랑했다. 청렴하고 근검하며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인품을 지닌 관료는 깨끗할 ‘청(淸)’에 흰 ‘백(白)’ 관리 ‘리(吏)’를 합해 청백리(淸白吏)로 불렸으며, 청백리의 자손은 부친의 공로를 인정받아 조정에 중용됐다.

그런 까닭에 조선의 백자와 흰옷을 보면 슬픔과 고독, 한이 연상된다며 조선의 흰옷에는 비애미가 있다고 평한 야나기 무네요시의 견해는 적어도 필자가 인식하는 조선인의 흰색 사랑과 결을 달리한다. 이와 관련해 일본 무지루시(無印良品)의 남다른 성공 비결은 조선의 흰색 사랑을 차용했다는 것이 필자의 B급 견해다. 불교의 영향으로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색을 좋아하는 일본 문화에서 “합리적인 공정과 제품의 간결함”을 내세운 차별화를 통해 성공 가도를 달려온 무인양품의 제품들이 흡사 조선 시대, 선비의 자택에서 사용되던 생활 도구들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인양품은 제품에 어떤 브랜드 표시도 하지 않는 가운데 단색, 그 가운데에서도 주로 흰색을 이용한 제품들을 대거 선보이고 있다. 그런 까닭에 무인양품을 처음 접했을 때, 필자가 느낀 느낌은 ‘조선의 흰색 도자 제품들과 문구 용품들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 같다’는 것이었다. 문화의 원천은 우리 것인데 재미는 그들이 보면서 말이다. 무인양품은 이 같은 전략은 온갖 색이 넘쳐나는 일본에서도 틈새 시장을 성공적으로 공략하며 어지러운 색깔들에 지친 일본인들에게 편안한 감성을 안겨주었다. 조선 유가 사상에 영향 받은 현대판 미니멀리즘을 색과 디자인에서 구현했다고나 할까? 그런 면에서 볼 때,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 것은 결국 담백한 것이라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흰색 사랑에 묻어 있다는 생각이다. 그럼, 다음에는 흰색에 얽힌 마지막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심훈 미디어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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