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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의 인문학] 중국어로 ‘백화(白話)’는 일반 백성들의 언어 일본어 “재미있다”는 “얼굴이 하얗다”는 뜻눈썹 희면 백미, 이가 희면 백치, 눈을 치켜뜨면 백안 모든 권한을 넘기면 백지 수표, 백지 어음, 백지 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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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28  11:3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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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설명 그리스 신화 속의 올빼미는 아테나 여신의 전령사이다. 밤에도 천리안을 가 지고 온 세상을 꿰뚫어 보는 올빼미는 로마 신화에서는 아테나 여신에 해당하는 미네 르바 여신의 전령사로 재차 등장한다. 사진은 영화 ‘해리포터’에서 주인공 해리포터의 단짝인 흰 올빼미 ‘헤드위그(HEDWIGH)’가 해리포터의 손등에 앉는 모습.

지난 시간에는 영어에 들어 있는 백색, 즉 ‘White’와 관련된 낱말에 대해 알아봤다. 이번 시간에는 한자에 들어있는 하양 이야기이다. 먼저 긍정적인 의미의 색깔로는 가장 먼저 한민족의 성산, 백두산(白頭山)이 떠오른다. 산마루의 눈이 1년 중 대부분 녹지 않아 하얀 머리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에서 명명된 백두산은 중국에서 ‘장백산(長白山)’이라고 부른다. 흰색이 길게 뻗어 있는 장백산맥의 주봉(主峰)인 까닭에서다. 군계일학을 뜻하는 단어로 우리에게 익숙한 백미(白眉) 역시, 눈썹 ‘미(眉)’자 앞에 흰 ‘백(白)’를 써서 ‘흰 눈썹’을 의미한다. 여럿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뜻의 백미에는 재미있는 옛 이야기가 있다.

유비, 관우, 장비가 등장하는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에는 촉나라에 살고 있던 마씨 5형제가 나온다. 모두 지략과 무예가 뛰어났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눈썹에 흰 털이 섞여 있던 마량(馬良)이 발군이었다. 이에 세상에서는 마량을 ‘백미’라 부르며 마씨 오형제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백미’는 여럿 가운데 으뜸가는 것을 일컫는 용어로 그 의미가 바뀌었다.

물론, 인간의 흰색 털만 귀하게 대접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전에 언급한 대로, 인도에서 흰색 코끼리가 성스러운 동물로 여겨지며 동북아시아에서는 흰 호랑이인 백호(白虎)가 귀한 대접을 받는다. 조류에 있어서도 서양에서는 백조, 동양에서는 백학과 백로가 귀하게 여겨진다. 참고로 백조는 오릿과에 속하며 백학은 두루미, 백로는 왜가릿과에 속하는 새들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서양의 경우, 올빼미도 성스럽게 여겨진다는 것. 그리스 신화 속에서 올빼미가 지혜와 전쟁의 여신인 아테나의 전령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밤에도 천리안처럼 사방을 훤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올빼미의 선천적인 능력에 성스러운 흰색이 입혀지면 그 영험함은 배가(倍加)된다. 이에 조앤 롤링의 소설 ‘해리포터’에서는 흰올빼미가 마법 세계의 편지를 속세에 있는 해리포터에게 전달하기 위해 등장한다.

한편,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백색 또한 넘쳐나는 곳이 극동아시아이다. 먼저, 부정적인 어감을 강하게 내포하는 단어로는 ‘백골(白骨)’을 들 수 있다. 단순한 뼈가 아닌 하얀 뼈를 뜻하는 ‘백골’은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의 시조를 통해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단어다. 그런 백골은 빨간 피와 대조되어 더욱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연출한다. 그러고 보면 영어에서 뼈를 의미하는 ‘본(Bone)’이나 해골을 의미하는 ‘스켈레톤(Skeleton)’에는 흰색을 상징하는 어떤 음소(音素)도 등장하지 않는다. 참고로, 음소란 언어에서 더 이상 작게 나눌 수 없는 최소 단위를 뜻한다.

그런 하얀색이 깃발로 옮겨 가면 휴전이나 투항을 상징하는 의미로 바뀐다. 어떤 적대적인 의도도 없으며 평화만을 의미하기에. 이와 함께, 지능이 낮은 이를 일컫는 ‘백치(白痴)’에서도 어리석을 ‘치(痴)’ 앞에 흰 ‘백(白)’이 등장한다. 머릿속이 텅 빈 듯한, 그래서 생각이 도화지처럼 하얗다는 의미에서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에서 ‘백화(白話)’는 딱딱한 고문(古文)과 대비되는 용어로서 주로 하층민들이 사용하던 말을 폄하한 말이었다. 지금은 빈말이라는 뜻으로도 통용되고 있고. 그런 백화는 20세기 초의 근대화 운동 속에서 중국 계몽 사상가들의 조명을 받으며 중국 인민들을 위해 그들의 언어로 쓴 백화 문학을 낳게 된다. 그 좋은 예가 루쉰의 「아큐정전」.

각설하고, 텅 비었기에 어리석음을 의미하는 백치가 미학적으로 발전하면 곧 백치미(白痴美)로 통용된다. 하지만 하얀 치아 역시, ‘백치(白齒)’인 까닭에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아름다움의 한자가 앞서 언급한 백치미(白痴美)의 한자어와 혼동되기도 한다. 물론, 치아를 둘러싼 흰색 표현 역시, 영어에는 없는 기표이다. 주지하다시피, 영어에서의 치아는 그저 ‘투쓰(Tooth)’일 뿐이다. 첨언하자면, 일본에서 ‘재미있다’는 표현은 ‘오모시로이(面白い)’인데 그 한자어원이 재미있다. 이유는 얼굴이 하얘진다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웃으면 얼굴이 하얘지니까.

흰 종이를 대하는 동서양의 인식 또한 판이하다. 한자 문명권에서 깨끗한 종이는 백지(白紙)이지만 영어권에서는 빈 종이(Blank paper)에 다름 아니다. 해서, 동양의 백지 답안, 백지 수표, 백지 어음, 백지 위임장에는 모두 흰색이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반면, 영어에서는 이들이 ‘공지(空紙: Blank paper)’ ‘공수표(Bank check)’ ‘공어음(Blank bill)’ 그리고 ‘전권 위임장(Carte blanche)’로 불릴 뿐이다.

이와 함께, 세상 물정 모른 채, 방구석에서 흰 벽을 마주하며 책만 읽었다는 의미로 ‘백면(白面)’ 서생이란 용어가 있으며 남을 업신여기거나 흘겨본다는 뜻으로 흰자위가 드러나도록 눈을 치켜뜬다는 ‘백안시(白眼視)’라는 용어도 있다. 이와 관련해 사마천의 「사기」에는 진(晉)나라 시대의 말기, 세상이 극도로 어지러워지자 속세를 등지고 대나무 숲에서 술로 시름을 달랜 완적(阮籍)의 이야기가 나온다. 완적은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사람이었는데 죽림칠현이란 대나무 숲에 살았던 일곱 명의 현인들을 일컫던 말이다. 당시 완적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는 중에 벼슬아치나 부자들이 조문을 오면 눈을 허옇게 뒤집어 버려 이를 본 벼슬아치와 부자들이 기분 나쁜 눈이라며 집을 나와 버렸다. 그 완적이 눈이 이른바 백안이고, 여기에서 파생된 단어가 백안시이다. 완적의 눈은 죽림칠현의 한 사람으로 그의 절친인 혜강이 찾아오자 고운 눈으로 변했다고 한다.

다음 시간에는 빨간색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색깔 가운데 가장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까닭에서다.

/심훈 미디어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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