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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인터뷰] 제2대 편집장 인터뷰영문학과 83학번 전종률 선배는 우리 대학 2회 입학생이다. 졸업 후에 강원일보사 기자를 거쳐, 지금은 G1 강원민방 영동본부장에 올랐다
최희수 편집장  |  sushi17@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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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26  12: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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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림학보사에서 제2대 편집장과 강원일보사 기자가 제 1호 학보를 읽고 있다. 사진 신나라 기자

Q. 한림학보 700호 기념 간단한 축하 한마디

A. 기억을 되살려보니 한림학보 1호를 발행했던 보람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신문 편집하는 방법을 몰라 학보 제작 초기에는 학보를 인쇄했던 강원일보사 편집 관련 직원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당시 신문 제작은 활판 인쇄 방식이었다. 납으로 제작된 활자를 원고대로 일일이 뽑아서 틀에 맞추고 지형을 떠서 윤전기로 인쇄하는 방식인데 이 과정은 인쇄 전문가들이 했고 학생 기자들은 기사 작고와 편집만 했다. 

그렇게 기초를 다진 학보가 지령 700호를 기록한 것을 축하하면서 학보의 맥을 이어온 후배들에게 감사하다.

Q. 학보 기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와 편집장이 된 계기는?

A. 입학한 3월 어느 날 교정 게시판에 한림학보사 수습기자 1기를 뽑는다는 공고가 나 응시하게 됐다. 현재 모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고윤순 선배를 비롯해 4명의 기자가 선발돼 학보를 만들기 시작했다.

수습기자를 거쳐 3학년 때는 편집장을 맡았다. 같은 학번 학보사 동기 2명이 학업에 매진하기 위해 고사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편집장을 맡았던 것 같다. 

학보사 일을 핑계로 수업을 가끔 빼먹는 바람에 졸업할 때 고생을 했다. 보통 기자들은 자투리 시간에 기사를 작성했지만 나는 학보사에 오래있어서 사람들이 전공을 ‘학보과’라고 불렀다.

Q. 과거 한림학보의 위상은 어떠했는가?

A. 과거 학보사는 학과 성적도 우수하고, 글 솜씨도 있는 학생들이 주로 일했다. 수습기자 시험도 통과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건을 갖춰야했기 때문에 응시자가 많지는 않았다. 사진기자를 포함해 10명 남짓한 인원이 일했다. 학업과 학생기자를 잘 병행한다면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학생기자로 일했던 80년대 초ㆍ중반은 민주화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했다. 학생기자들도 이러한 움직임을 반영하기 위한 고민을 했지만 학술 가치를 최우선으로 했던 당시 학보의 성격상 그러한 분위기를 적극 담지는 못했다. 학보사 담당 교수님과 학보사 운영 예산을 대는 대학의 입장도 감안해야 했다.  

학생들은 민주화 관련 기사를 싣고 싶어 했는데, 대학은 반대를 했었다. 그러다가 발행이 지연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 구성원 전체가 필요로 하는 신문을 만들어야했는데 기자들이 너무 고집을 부렸던 것 같다.

Q. 그 시절 학보사는 어떻게 신문 판을 구성했는가?

A. 기사는 일일이 원고지에 쓰고, 학생 사진기자가 직접 사진을 찍고, 그림에 재능이 있는 학생기자가 직접 삽화를 그려서 인쇄소로 가져가 납으로 된 판에 모양을 부식시켜 넣는 등 자잘한 일이 많았다. 

편집 구성안도 이미 발행된 학보 위해 빨강색 색연필로 자를 대고 그려서 인쇄소에 넘겨야 했던 시절이었다.

Q. 학보 기자로 활동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A. 학보사는 정기적으로 신문을 발행해야하기 때문에 조직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학보사 기자들이 1년에 한두번 국내 먼 곳으로 연수를 떠나 즐겁게 지냈던 기억이 있다. 

그시절 학보는 개간, 격월, 월간 신문으로 발행이 많지 않아 가족적인 분위기였다. 여유롭게 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독촉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후 발행횟수가 늘어났다고 했을 때 다른 신문사들처럼 기강이 세졌다고 들었다.

Q. 편집장과 간사로 일했던 기록이 있는데 둘의 차이는?

A.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기자로 일하기까지 2~3년간 학보사 간사를 했다. 

학보사 담당 교수님을 대신해 편집 실무를 책임지는 조교 같은 역할인데, 간사로 일할 시기에는 민주화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돼 한림대에서도 학생시위가 자주 있었다. 

당시 우리 학생기자들은 민주화 관련 취재기사나 외부 원고를 학보에 비중 있게 게재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였고, 대학은 학보는 학술정보지라는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에 갈등이 있었다. 

한때 학보 발행이 지연되기도 했는데 대학과 학생기자들 사이에서 많이 곤혹스러웠다. 

진통을 겪으며 발전해온 한림학보가 700호를 발행하게 돼 감회가 새롭다.  

Q. 학보 기자 경험이 사회에 나갔을 때 도움이 됐는가?

A. 내가 신문과 방송 기자로 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학보사 기자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많이 부족했지만 편집회의하고,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과정이 모두 나에게는 사회생활을 위한 가치 있는 훈련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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