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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의 인문학] 자연에서 가장 얻기 힘든 희귀 색소, 파랑 정작 지구에선 가장 큰 캔버스 가득 채워초록 변종으로 여겨진 파랑, 여성을 상징하는 색으로 인식 성모 마리아의 망토는 서양화에서 대부분 파랑으로 묘사돼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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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09  06:3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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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어린 시절 완구 가운데 ‘블루 마블’이라는 보드 게임이 있었다. 주사위를 굴려가며 세계 유명 도시들의 땅을 산 후, 다시 주사위를 던져 그 땅에 호텔을 지을 수 있으면 상대방이 체류하게 될 경우, 게임 머니를 획득할 수 있는 놀이였다. 원래 서양의 ‘모노풀리’란 보드 게임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블루 마블’은 첫 선을 보인 1982년에 그야말로 한국에 광풍을 불러 일으키면서 온가족이 한바탕 즐겁게 놀 수 있는 오락 시간을 선사하게 된다. 당시, 뜻도 모르고 ‘블루 마블’ ‘블루 마블’이라고 되뇌기만 했던 필자가 ‘푸른 구슬’이라는 ‘블루 마블’이 지구를 의미하는 단어라는 사실은 그로부터 한참 지난 뒤에 알게 됐다. 그러고 보면 파란색은 지구상에서 스케일이 가장 큰 색으로 세상에서 가장 큰 캔버스인 하늘과 바다를 가득 메운 색이다. 덕분에 지구에서 바라 본 우주와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모두 파란색이고.

아이러니한 사실은, 정작 그렇게 스케일 큰 파란색이 자연에서 가장 찾아보기 힘든 색이라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봐도 금방 알 수 있듯이 자연에서 파란색 염료와 색소는 발견하기가 극히 어렵다. 흰색과 검정색, 노란색과 빨간색, 초록색과 보라색은 야채와 과일, 꽃과 열매를 통해 얼마든지 접할 수 있다. 하지만, 파란색은 자연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난색(難色) 중의 난색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자연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색이어서 그런지 파랑이라는 색 자체를 고유한 색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최근에 벌어지기 시작한 일이라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파랑은 초록의 변종이었을 뿐이었다. 비단 그리스인들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중국, 일본, 유대, 인도인들에게 있어서도 파랑은 굉장히 낯선 단어였다. 실제로 영어에서도 ‘블루(Blue)’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11세기 이후이다. 이러한 세계적 경향에서 예외로 분류되는 민족이 이집트인들이다. 이집트인들은 파랑을 아주 좋아해 이를 가리키는 언어를 따로 만들어 냈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청금석이라는 광물을 활용해 자신들의 청동 기물과 벽화를 장식했던 이집트인들이 파랑에 익숙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파랑이 고유의 색깔로 인식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답은 초록에 있다. 색채 스펙트럼에서 초록 곁에 붙어 있는 파랑은 초록과 거의 구분이 가지 않는다. 굳이 표현하자면 인류에게 있어 초록의 어두운 면이 오랜 세월 파랑으로 인식되었다고나 할까? 그런 까닭에 청록색이라는 표현은 파란색에 녹색이 섞여 있는 색으로 불리곤 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많은 민족들에게 잘 인식되지 않던 파랑이 오늘날에는 가장 다양한 종류의 이름을 거느리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짙은 파랑’은 ‘다크 블루(Dark blue)’요, ‘옅은 파랑’은 ‘라이트 블루(Light blue)’이며 ‘고운 파랑’은 ‘네이비 블루(Navy blue)’, 그리고 ‘하늘색’은 ‘스카이 블루(Sky blue)’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노랑이나 빨간, 초록 등에 ‘어두운’을 뜻하는 ‘다크(Dark)’와 ‘밝은’을 의미하는 ‘라이트(Light)’ 등의 수식어가 붙지 않은 것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뒤늦게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아서일까? 파랑은 현대 들어와서 인류가 가장 널리 사랑하는 색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지역에 따라서는 슬픔과 시련, 절망을 의미하는 색으로 받아들여짐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파란색에 대한 선호도가 여러 색 가운데 가장 높다. 실제로 10개국을 대상으로 한 색상 선호도 연구에서 파랑은 다른 색들을 제치고 1위에 오른 바 있다. 파랑에 이어 2위를 차지한 색은 파랑의 반대색인 빨강이었고. 특히 파랑은 영국, 미국, 오스테일리아 등 영미권 국가에서 열 명 가운데 세명 이상이 가장 선호하는 색깔로 선택된 바 있다. 반면 중국을 비롯해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타이, 인도네이사 등에서는 파랑이 가장 선호하는 색깔로 꼽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비율이 25% 안팎으로 영어권 국가보다는 꽤 낮은 것이 사실이다.

인상적인 것은 이토록 널리 사랑받는 파랑색이 과거 로마 제국에서는 여성적인 색이라는 이유로 남성들의 경멸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현대 러시아에서는 남성 동성애자를 ‘스카이 블루’라 부르고 있다. 더불어 유럽의 몇몇 카톨릭 국가에서는 지금도 파랑을 여성의 색으로 간주하곤 한다. 이유는 바로 성모 마리아와의 연관성 때문이다. 실제로 성모 마리아는 서양 미술에서 많은 경우, 파란 망토를 입은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역사학자들은 실제로 예수의 어머니였던 마리아는 신분이 낮은 여성이었기에 아무 염색도 되지 않은 옷을 입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형적인 역사의 왜곡이 파란 색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그런 까닭에 초기의 성모 마리아 상에서는 파란 망토가 등장하지 않았다. 성모 마리아가 신비스러운 색깔의 망토를 두르기 시작한 것은 6세기의 비잔틴에서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동방의 신비로운 문명과 접목된 비잔틴 미술에서 파랑은 평화와 고요, 하늘과 바다의 색깔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성모 마리아는 정열적이고 적극적이며 때로는 선정적으로까지 보일 수 있는 빨간 망토를 걸치기보다 파란 망토를 어깨와 등에 걸쳤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도 고군분투하며 지구를 지키는 남성 영웅, 슈퍼맨은 새빨간 망토를 걸치고 있고.

그럼, 다음 시간에는 파랑을 둘러싼 또 다른 이야기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어느새 11월 중이다. 모두들 1년의 마무리 농사를 잘 짓기 바란다.

/심훈 미디어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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