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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의 인문학] 로마인들은 북부 지방 유럽인들을 고대부터 얼굴 파란 야만인으로 여겨로마 교황은 하얀 피부, 금발, 푸른 눈의 앵글로인을 ‘천사’라 불렀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파란 눈 천시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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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23  08: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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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 개봉한 영화 ‘브레이브 하트’는 멜 깁슨이 감독과 주연을 모두 맡은 가운데 흥 행에서도 대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잉글랜드로부터의 독립을 시도하는 멜 깁슨은 잉글랜드와 전 투를 치를 때마다 파란 색으로 얼굴을 칠하며 자신의 병사들에게도 파란 색으로 얼굴을 칠하도록 유도한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파라오 시대의 이집트에서는 파란색을 피안(彼岸), 즉 저 세상의 색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런지 이집트 벽화를 보면 심심찮게 파란색으로 얼굴을 분한 동물 신들이 등장한다. 저 세상을 다스리는 신의 징표라고나 할까? 그런 이집트인들은 피안에 가기 위해, 또 피안을 표현하기 위해 청동, 즉 구리를 산화시켜 파란색을 얻었다.

반면, 고대 로마에서 파란색은 이른바 야만인들의 색이었다. 이와 관련해 학자들은 게르만족이 유령처럼 으스스한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얼굴에 청회색 가루를 바르고 다녔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비단, 게르만 족만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야만성을 드러내며 문명에의 복속을 거부하는 이들은 줄곧 파란색으로 얼굴을 분장하곤 했다. 실제로 러셀 크로우의 아우라가 한껏 뿜어져 나왔던 영화 ‘글래디에이터’나 멜 깁슨이 주연했던 ‘브레이브 하트’에서는 로마군 및 잉글랜드 정규군과 맞서 싸우는 게르만족과 스코틀랜드 반란군들이 파란색으로 얼굴을 물들인 채 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종종 선보이고 있다. 특히, 영화 ‘브레이브 하트’는 주연 배우였던 멜 깁슨이 감독으로서 메가폰도 잡았는데, 멜 깁슨 스스로가 파란색을 무척 좋아했는지 3시간에 달하는 영화가 온통 파란색으로 물들어 있다. 스코틀랜드의 음울한 하늘과 함께 구릉을 뒤덮는 푸른 안개는 물론, 멜 깁슨을 위시한 스코틀랜드 반란군이 온통 파란색으로 얼굴을 염색한 까닭에서다.

재미있는 사실은 파란색을 야만의 색으로 폄하했던 로마인들이 앵글로 족 노예를 처음 봤을 때는 이들을 천사와 같이 묘사했다는 것이다. 파란색 칠을 바르지 않은 피부는 하얗기 그지없었고 머리는 금발이었으며, 눈동자는 푸르렀기 때문이었다. 해서, 로마 교황이 앵글로 포로를 처음 접했을 때 “앵글로(Anglo)가 아니라 앤젤(Angel)이야”라고 탄성을 지른 일화는 지금껏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로마 교황의 그 같은 표현에도 불구하고, 로마인들은 여전히 파란 눈의 여자는 천박하며, 파란 눈의 남자는 거칠고 어리석다는 편견을 지니고 있었다. 말하자면 파란 눈은 문명과는 거리가 먼 야만의 땅에서 온 이를 뜻했다는 것이다. 마치, 고대의 중국인들이 북쪽의 유목민을 오랑캐라고 여겼던 것처럼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북쪽에 위치한 유럽인들을 모두 야만인으로 여겼다.

그러고 보면, 오랫동안 그리스어는 물론, 라틴어에서도 ‘파랑’이라는 단어는 그 의미가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은 채, 회색 혹은 녹색과 혼동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파랑’이라는 단어 자체가 게르만어 ‘블라우(Blau)’에서 온 것으로 당시, 파랑은 야만의 땅, 안개가 자욱하고 동물 가죽을 걸쳐 입으며 무리를 지어 침엽수림 속에 사는 유럽 북쪽의 유목민과 동일시되는 단어였다.

파란색에 대한 멸시는 중세까지 이어지다 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서서히 그 경향이 바뀌게 된다. 특히 그러한 경향을 가속화 시킨 것은 지난 번에 설명했던 성모 마리아의 파란 망토색이었다. 그런 가운데 남동석과 코발트, 그리고 인디고와 같은 파란 염료 덕분에 화가들이 파란색을 안정적으로 염착하는 데 성공하면서 파란색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지위를 색깔의 밑바닥에서부터 최상층으로 격상시키게 된다. 돌이켜 보면, 파랑이 오랜 기간 동안 천시 받아온 가장 큰 이유는 파랑이라는 색을 자연에서 얻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풀에서 얻을 수 있는 ‘인디고’를 통한 파랑색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파랑은 곧 자신의 지위를 견고하게 확립하게 된다.

참고로 ‘인디고’는 색소의 이름으로 천염염료 가운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쪽’의 색소이다. ‘쪽’은 중국이 원산지인 한해살이풀로, 한자로는 ‘람(藍)’이라고 한다. ‘쪽빛’이라 하면 이 풀의 빛깔을 의미하며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이란 고사성어의 구성 단어이기도 하다. ‘청출어람 청어람’이란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흔히 제자가 스승보다 더 뛰어나게 될 때를 일컫는 말이다. 쪽에 물을 붓고 열을 적당히 가해 발효시키면 쪽이 물에 용해가 되는데 이때 쪽에서 ‘인독실’이라는 물질이 우러난다. 그리하여 ‘인독실’이 공기 중에 산화되면 쪽물에 청색의 인디고가 배어 나온다.

각설하고, 중세 이후부터 높이 대접받기 시작한 파란색은 마침내 하늘을 장식하는 색으로 인정받게 된다. 중세 이전에는 서양화에서 하늘이 검은색이나 흰색으로 표현됐으나, 중세 이후부터는 파란색으로 칠해진 것이다. 녹색이었던 바다 역시, 목판화 등에서 파란색으로 바뀌게 된다. 그런 가운데 어느덧 유행마저 바뀌어 파란색은 귀족들이 선호하는 색이 되었고 염색공들은 이 유행을 충실히 따르며 경쟁적으로 점점 더 다양한 종류의 파란색을 만들어 내게 된다.

한편 성경에서 파란색이 언급되는 일은 드물지만, 푸른 보석인 사파이어는 가장 귀한 보석으로 여겨진다. 참, 파랑을 선호하는 종교가 비단 카톨릭만은 아니다. 힌두교에서는 세상을 유지하는 신으로서 물과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는 최고신 비슈누와 그의 일곱 번째 화신인 라마의 경우, 둘 다 파란 피부로 묘사되곤 한다. 그런데 파괴의 신 시바 또한 파랗게 묘사하면서 ‘푸른 목구멍’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신과 악마의 싸움에서 이기려고 독을 집어 삼켰기 때문이란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파란색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로 이번 학기의 에필로그를 장식하고자 한다. 모두들 기말고사 준비 잘하기 바란다.

/심훈 미디어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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