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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의 인문학] 중국 역사상 최대 반란은 노란 두건 쓴 황건적의 난 청말 ‘의화단의 난’ 때도 반란군은 노란 천 몸에 감아황제의 노란색 수레 덮개는 막강 권세 누리던 간신들의 로망 중국 · 홍콩 합작 영화, ‘황후화’도 온통 노란색의 당 황실 묘사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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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05  14: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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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개봉했던 중국·홍콩 합작 영화, ‘황후화’는 주윤발, 공리, 주걸륜 주연의 호화 캐스팅으로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장예모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에서는 노란색 국화가 가득한 당나라 황실의 궁궐이 눈부시도록 아름답고 웅장하게 그려지고 있다. 사진은 북방에서 돌아온 둘째 아들 주걸륜을 데리고 황제를 알현하러 계단을 오르는 공리의 모습. (출처: 네이버)

지난 2006년 개봉한 중국·홍콩 합작 영화 ‘황후화(Cures of the Golden Flower)’는 중국인들의, 아니 중국 황실의 지극한 노란색 사랑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당시, 주윤발과 공리, 주걸륜 등 호화 캐스팅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황후화’에서는 중국 당나라 최대 경사인 중양절 축제를 앞두고 노란 빛 국화가 황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이와 함께 황제 주윤발과 황후 공리, 그리고 그들의 둘째 아들 주걸륜은 온통 금빛 무장으로 화면을 채색하고 있고. 물론, 화면에 등장하는 여러 미장센들과 후궁들의 의상 또한 온통 금빛과 노란색의 향연이다. 참고로, 중양절이란 한나라 이래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추석보다 더 크고 성대한 대접을 받았던 행사로 1부터 9까지의 숫자 가운데 가장 높은 수인 9가 두 번 겹치는 음력 9월 9일에 치러졌던 명절이다.

각설하고, 노란 대륙과 노란 바다를 지배했던 이가 중국 황제였기에 이후에 노란색을 앞세워 황제의 위세를 흉내 낸 이들은 중국 역사에서 늘 존재했다. 예를 들어, 춘추전국시대에는 위타라는 이가 천자처럼 수레 덮개를 황색 비단으로 하고 자신의 명령을 제(制: 황제의 명령을 가리킴)라 참칭한 바 있다. 이에 육생이라는 신하가 황제에게 간언함으로써 이를 제지시켰다는 기록이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남아 있다. 하지만, 춘추전국시대의 또 다른 권세가인 조타는 천자의 수례 왼쪽에 꽂던 ‘좌독(左纛)’이라는 깃발을 천자마냥 똑같이 꽂고 자신의 수레에 노란색 비단 덮개를 덮음으로써 황제에 버금가는 권위를 자랑하곤 했다.

국가의 기강이 아직 건실한 상태에서도 그럴진대, 제후와 군웅들의 할거 속에 황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 사정은 어떠했을까? A.D.184년에 일어난 황건적의 난은 그렇게 노란색이 도적들의 표식으로까지 사용되는 중국사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였던 진을 물리치고 등극했던 한나라는 어느덧 기운이 쇠해 이제는 환관들이 정국을 좌우하는 3류 국가로 전락했다. 자연히 정치는 부패하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 갔다. 이에 좌절과 실의에 빠진 농민들 사이에서는 ‘태평도(太平道)’, ‘오두미도(五斗米道)’ 등과 같은 도교풍의 신흥 종교들이 유행병처럼 번져나갔다. ‘태평도’는 부적을 불살라서 그 재를 물에 타 마시면 병이 낫는다고 선전하며 절망적인 가난 속에 허덕이던 농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 ‘오두미도’는 곡물 다섯 말을 바치면 모든 죄가 없어지고 내세에서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며 혹세무민했다. 이런 어수선함 속에 하북성 거록에서 포교를 시작한 장각(張角)의 태평도는 불과 10여 년 만에 수십만 명의 신자를 얻었다.

A.D.184년에 일어난 황건적(黃巾賊)의 난은 이 태평도의 각 지부가 군사 조직으로 전환돼 일어난 대규모 농민봉기였다. 중국의 전통적인 오행설에 의하면 흙은 불에서 생성된다. 장각은 불의 기운으로 탄생해 화덕(火德)을 입은 한나라가 곧 몰락하고 뒤이어 토덕(土德)에 해당하는 노란 두건(黃巾)의 세상이 다가올 것이라고 설파했다. 그리하여 장각의 선동에 동한 백성들은 새 세상을 상징하는 황색의 띠를 머리에 동여매고 일시에 봉기했다. 역사가 증언하는 당시의 봉기 참가자는 무려 36만여 명. 아직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막 신생 국가로서의 기틀을 잡아 가고 있던 시기였다.

엄청난 규모의 민난으로 한나라는 뿌리째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폭도들이 숫자만으로 정규 군인들을 당해 낼 수는 없는 노릇. 그리하여 그해 가을 주모자였던 장각이 죽고, 동생 장량, 장보 또한 전사하는 등 지도부가 패망하면서 황건적은 그 기세를 잃고 한나라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더불어 이 때를 배경으로 탄생한 불후의 명작이 「삼국지」다. 그럼에도 역사는 황건적이 그 후로도 무려 30년 동안이나 끈질긴 항쟁을 벌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시계의 바늘을 근대로 돌리면, 노란색은 영험한 부적이 돼서 청나라 말기에 다시 나타난다. 이른바 ‘의화단의 난’이 그것. 먼저 시대적 배경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1894년의 청일 전쟁 후, 일본을 위시한 서구 열강의 중국 침략은 본격화됐다. 대제국 청나라가 아시아의 신흥 공업국인 일본에게 전쟁에서 지자 서구 열강에서는 중국이 이빨 빠진 호랑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간파하고 노골적으로 각종 이권들을 앞 다투어 쟁탈하며 중국 시장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이에 중국의 농산물 가격은 폭락하고 그 와중에 그리스도교는 더욱 공격적인 포교를 감행하며 많은 중국인들의 반감을 샀다. 한편, 불교에 바탕한 백련교의 한 분파가 의화권이라는 무술 단체였는데, 의화권은 주문을 외우면 신통력이 생겨 칼이나 총에 맞아도 상처를 입지 않는다고 믿었다. 의화권은 이후, 당시 권력 다툼에서 개혁파에게 밀리고 있던 보수파의 수장 서태후의 지원 아래, 의화단으로 이름을 바꾸며 외국인과 교회를 습격하고 철도와 전신을 파괴하며 외국 제품들을 불태웠다. 관군의 비호 아래, 베이징과 텐진에 모여든 의화단의 대원들 가운데에서는 10대 소년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빨강색과 노란색 천을 몸에 감고 팔괘로 대오를 나누며 베이징과 텐진의 각국 공사관들을 습격했다. 결국,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등 8개국이 연합군을 형성해 이들을 격파함으로써 의화단의 난은 백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이러한 노란색이 청나라의 멸망, 중국 공산당의 등장과 함께 빨간색에 그 순위를 내어주며 이젠 중국 대륙은 맨 아래에서부터 맨 위까지 온통 빨간색으로 통일된 나라가 됐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하지 않던가! 최고 존엄으로서의 노란색은 여전히 그 후광을 잃지 않고 있다. 바로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의 빨간 바탕 속에 찬란하게 빛나는 다섯 개의 별 색깔이 노란색이기에.

그럼, 다음 시간에는 검은색을 둘러싼 역사와 문학, 정치와 경제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미디어스쿨 심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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