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구체적으로는 세종대왕이 문자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 이를 체계적으로 해설한 책 <훈민정음>을 간행해 세상에 훈민정음을 널리 공표한 날이다.

1926년에 세종대왕의 뜻을 기리며 ‘가갸날’로 기념하기 시작해 2005년 국경일로 승격됐고, 2013년부터는 공휴일로 지정됐다.

이렇게 한글날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다른 국경일과 마찬가지로 우리 개개인의 마음속에서는 그 의미가 점점 퇴색해가는 것 같다.

국어의 역사를 전공하고 훈민정음 관련 강의를 하는 필자도 언제부터인가 한글날을 기념하고 특별하게 보내려는 생각이 점점 약해지는 것 같다. 그런데 작년 한글날에는 이러한 모습을 반성하게 하는 매우 특별한 경험을 했다.

필자는 작년 2학기부터 연구년을 맞아 매릴랜드 대학의 방문학자로 미국에 머무르고 있었다. 미국이 낯설기만 하던 중, 매릴랜드 대학의 김영희 선생님께 훈민정음 반포 573돌 한글날 기념행사 안내 메일을 받았다.

김영희 선생님은 필자를 미국으로 초청해 주신 매릴랜드 대학의 동아시아 언어문화학부 교수인 램지(S. R. Ramsey) 선생님의 부인이시다.

행사는 10월 9일에 우리 대학 국제교육원 성격의 건물에서 진행됐는데 한국어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참석했다.

램지 선생님은 김영희 선생님과 함께 몇십 년째 한글날을 기념해 오셨는데 이번에는 한국 전통 음악 공연과 대형 붓글씨 시연이 있었고 약간의 한국 음식도 제공돼 잔칫집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는데 가장 중심 행사는 역시 램지 선생님의 “Hangul, Korea’s Gift to the World”라는 제목의 훈민정음 특강이었다.

선생님은 한글이 ㄱ-ㅋ, ㄷ-ㅌ, ㅅ-ㅈ-ㅊ 등과 같이 각 글자들이 소리와 모양에 있어서 서로 연관을 맺고 매우 체계적이어서 배우기 쉽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문자의 탄생은 백성들이 문자를 쉽게 익히게 하기 위한 세종대왕의 열정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국어사 전공자로서 강의 내용이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세종대왕의 열정을 강조할 때 80세가 다 된 램지 선생님의 빛나는 눈과 격정에 찬 어조는 매우 감동적이었다.

훈민정음이 그 어떤 문자보다도 체계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학자들은 물론 외국의 많은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한글에 대해 매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에 더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문자를 완성시킨 세종대왕의 열정, 그리고 이 문자를 지키기 위한 일제하 국어학자들의 열정, 그리고 이러한 열정을 더욱 뜻깊게 하는 램지 선생님 같은 분들의 한글 사랑이다.

올해 한글날은 코비드 19의 영향으로 뜻깊은 행사를 준비하기 어렵겠지만 램지 선생님의 한글 사랑과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대한 열정을 상기하며 한글날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이병기 국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