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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원] 재난이 남기는 유산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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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1.07  11:3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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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나 공황, 또는 이번 코로나 사태와 같은 심각한 재난의 경험은 사회 구성원의 사고에 진한 흔적을 남긴다. 한국사회가 겪은 재난이나 비극의 사례로 먼저 떠올리게 되는 한국전쟁과 IMF 금융위기가 남긴 유산은 무엇일까? 한국전쟁은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 있고 그로 인해 하루아침에 우리의 일상과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낳았다. 전쟁을 겪은 이에게 세계는 두려움의 원천인 적, 그리고 영원히 이에 맞서 싸워야 하는 우리로 갈라져 있다. 유례없이 잔혹했던 전쟁의 경험은 웬만한 것들은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하는 압도적인 것이다. 죽음과 이별의 기억, 고통을 함께 겪었던 이들과의 동지애 앞에 다른 모든 것은 너무 가벼운 것이다. 진한 경험을 근거로 한 자신의 생각에 대한 강한 확신은 민주화와 같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정적 유산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IMF 금융위기가 초래한 경제적 타격도 직접 겪은 이들을 넘어 한국인의 잠재의식에 흔적을 남겼다. 주식, 환율, 부동산 시장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일자리, 심지어 가족조차 갑자기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회가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주식시장이나 환율시장은 여전히 위험하고 대량실업에 대처할 뾰족한 방법은 없다. 강도가 약한 여진이 지속되고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한 노력도 변변한 것이 없다. 위험에 대비하고 있다기보다는 위험에 면역이 생겼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더 무감각해지고 맷집이 세진 것이다.
 
이렇게 익숙해진다는 것이 전쟁에는 적용되기 어려워 보인다. 포탄의 굉음소리나 죽음의 장면은 면역이 생기기에는 지나치게 강렬한 경험이다. 자주 실패하기는 하지만 전쟁의 경험은 예방이라는 처방을 주었다. UN과 같은 국제기구를 통해 전쟁을 예방하고자 했으며, 전쟁의 끔찍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알리고 평화를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평화운동을 낳았다. 물론 전쟁 역시 사라진 것은 아니고 국지적으로 여진이 지속되고 있다.

평균적인 전쟁보다는 덜 참혹하기는 하지만 코로나19 역시 우리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길 것이다. 위험은 내 곁에 있고 전쟁과 달리 적은 내부에 있다. 코로나19를 함께 겪는 이웃은 동지이자 경계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확진자에 대한 연민은 사치다.

한국전쟁이나 IMF가 남긴 유산처럼 우리 사회와 내가 처한 현실이 한 순간에 부서질 수 있는 허약한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의식과 일상의 변화만큼 사회의 큰 틀도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이르다. 잊힐 것 같지 않는 기억조차 개봉을 미룬 새로운 이슈에 쉽게 잠겨버릴 수 있다. 바로 직전에 끝난 1차 세계대전보다 많은 수의 희생자를 낸 20세기 최악의 재난 스페인 독감은 역사와 영화, 국제정치에 살아있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달리 놀라울 정도로 쉽게 잊혀졌다. 집단적인 비극보다 수백만의 개인적인 비극으로 조용히 기억된 것이다.

보건의료와 같이 직접적으로 연관된 분야의 변화만을 남겼다. 지금 우리의 마음처럼 감염병은 어서 떨쳐버리고 싶은 기억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엄한진 사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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