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교양
[색깔의 인문학] 빛의 화가, 렘브란트는 최고의 검은색 화가 수묵화는 검정으로 온갖 색 표현한다 여겨스페인 궁정화가 고야 역시 검은색 깊이 사랑해 한국화가 장재록은 먹으로 벤츠 그리는 능력자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11.14  12:04:2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먹의 짙고 옅은 농담(濃淡)만으로 폭스바겐 자동차를 그려 장안의 화제를 물러 모았던화가, 장재록의 작품. 사진은 그의 작품이 등장하는 광고를 캡처한 것이다.

지난 시간에는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에 동원된 검은색에 대해 알아봤다. 오늘은 그 자투리 이야기와 함께 예술 속의 검은색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20세기 현대사에 있어 유럽 독재 정권의 상징으로 사용됐던 검은색은 정작 중세 당시엔 종교적인 의미를 내포했다. 예를 들어, A.D 540년 경에 제작된 어느 수도원의 규율서에서는 성 베네딕트가 수도사들에게 의복의 색깔에 신경 쓰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4세기가 지난 9세기에 이르면 유럽 수도원에서는 검은색이 겸손과 회개의 상징으로 변모하며 수사복이 검은색으로 바뀐다. 하지만 수사복 전체를 까맣게 염색하는 데에는 당시의 기술로 무리가 따랐기에 수도사들은 짙은 회색 또는 청색 옷을 대용으로 입곤 했다.

사실, 검은 색소는 석탄이나 숯을 통해 쉽게 얻을 수 있으며 가루를 낸 후 물이나 기름에 섞으면 검은색 물감이 된다. 따라서 그림을 위한 검은색 물감은 쉽게 만들 수 있지만, 옷을 염색하기 위한 염색물은 숯이 대량으로 필요했기에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검은색은 의복보단 화폭에서 쉽게 구현되며 서양화를 오랫동안 장식해 왔다. 비록,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예술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검은색은 색이 아니다”라고 단언했지만 그런 그의 팔레트에도 검은색 안료는 존재했다.

다빈치의 후예들 역시, 검은색을 화폭에 담아내는 데 있어 주저함이 없었다. 그 대표적인 예술가가 스페인의 국민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였다. 스페인 궁정 화가 출신이었던 고야는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프레스코, 유화, 동판화, 석판화 등 2,000점에 가까운 작품들을 남겼는데 많은 경우 검은색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옷 벗은 마하’가 있다. 이와 함께 프랑스 군의 만행을 만천하에 고발한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역시, 고야의 민중 의식과 저항 의식을 잘 드러낸 검은색 명작이다. 하지만 그의 검은색 최고봉이라면 ‘산 이시드로 순례여행’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고야는 페르난도 7세의 궁정 화가 시절, 마드리드 교외에 집을 구입해 벽면 전체에 14점의 대형 벽화를 그렸는데, 모두 어둡고 기괴한 그림들이었기에 ‘검은 회화’라 불렸다. 그 가운데 한 작품이 ‘산 이시드로 순례여행’으로서 여기에서는 마드리드의 수호 성인인 산 이시드로의 은거지로 순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악한 군중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고야가 인간 사회에서 몰아내기를 원했던 ‘괴물’이 다름 아닌 인간 자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에서 식인 거인들이 다름 아닌 인류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나 할까?

한편, ‘빛의 화가’ 렘브란트 역시, 검은색을 탁월하게 연출한 발군의 예술가였다. 그가 사용한 ‘키아로스쿠’ 기법은 빛과 어둠을 극적으로 배합하는 것으로써, ‘야경’을 비롯해 ‘황금 헬멧을 쓴 사람’과 같은 명작들이 수두룩하다.

그러고 보니, 원시적인 힘이 화폭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인상파 화가 앙리 마티스 역시, 검은색을 깊이 사랑했다. 그래서일까? 마티스는 ‘검은색은 힘’이라고 표현했고,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오퀴스트 르누아르는 검은색을 ‘색의 여왕’이라고 불렀다.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화가 텐토레토는 “색깔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은 검은색”이라고 단언했다.

모르긴 해도, 검은색에 대한 이같은 의견들은 중국에서 쌍수를 들어 환영할 법하다. 예전부터 수묵화를 발전시켜 온 중국화에서는 먹으로 온갖 색을 다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비단, 중국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한국과 일본의 수묵화가들 역시, 먹으로 온갖 색을 표현한다는 믿음에 있어서는 중국과 동일한 선상에 서 있다.

그러고 보면, 서양에선 오랜 세월 동안 검정과 하양을 색으로 잘 받아들이지 않았던 데 반해, 중국에서는 음양오행 사상의 영향으로 흑과 백을 주요 색으로 인식해 왔다. 더불어 이러한 관념은 수묵화의 발달로 고스란히 연결돼 수많은 기법과 작풍을 탄생시켰다. 중국 수묵화에서 먹의 존재가 특히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시기는 당나라 말기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는「필법기」(筆法記)라는 책에서 그림의 가장 중요한 여섯 요소 중 ‘붓’과 ‘먹’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 책에서 색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어 흰색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검은색이 동양화의 핵심임을 반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중국 역사상 최초의 여황제인 측천무후 때 활약한 은중용이라는 화가는 묵만으로 적, 황, 청, 흑, 백의 다섯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회자되고 있다. 물론, 검은색으로 노란색과 빨간색, 파랑색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말도 안 되지만, 그만큼 먹의 농담 조절을 통해 다양한 색을 창출해 냈음을 의미한다 하겠다.

실제로 먹의 놀라운 능력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현대 한국화가가 바로 홍익대 출신의 장재록이다. 벤츠와 람보르기니 등 고급 차들을 붓과 먹만으로 실사(實寫)처럼 거침없이 재현해 내는 그를 보노라면 인간의 능력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절로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건축과 지리, 그리고 우주에서의 검은색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보도록 하겠다. 어느덧 11월도 말로 접어들었다. 공부도 좋지만 모두들 가을의 마지막을 만끽하길 바란다.

 

/심훈 미디어스쿨 교수

   
 
한림학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인기기사
1
[보도] 전공박람회, 53개 전공 1천여명 상담 진행
2
[보도] 학생생활관 1인 사생실 시범 운영
3
[보도] 해외 취업의 길잡이 ‘글로벌 주간’ 특강
4
[보도] 한강을 따라 인문학을 되짚어 보다
5
[보도] “자기 삶의 주체가 돼 방향성 잡아가야”
6
[보도] “기업이 원하는 인재는” 25일, 명사특강 열려
7
[기획] 전공능력 중심 교육체계, ‘Hi FIVE’ 운영된다
8
[보도] 동아리들의 잔치 ‘클립 오락관’
9
[보도] 봉사시간 채우고 학점 받자 ‘자율형봉사인증’
10
[시사] ‘루나ㆍ테라’ 폭락… 무너지는 코인 시장
신문사소개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4252 강원도 춘천시 한림대학길 1 캠퍼스라이프센터 9-308호 한림학보사
제보 및 문의 : news@hallym.ac.kr / 033-248-287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지혜수(간사)
Copyright © 2005 한림학보. All rights reserved. news@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