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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원] 장춘익 선생님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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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3.13  12:4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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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1960년 5월 20일 나시고 2021년 2월 5일 떠나셨다. 부모님께서 호적에 1년 늦게 올리셨다고 말씀하셨으니 생년은 행정상의 기록일 뿐이다. 92년 9월 부임하셔서 28년 6개월을 철학과에서 봉직하셨다. 1990년대 우리 학교의 인문사회과학 분야가 참신한 바람을 일으키고 전국적인 주목을 받으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선생님은 그 중심에, 그리고 항상 학생들의 존경과 사랑 속에 계셨다.

나는 2012년 9월 임용되면서 선생님과 인연을 맺었다. 옆방을 연구실로 쓰면서 방음이 되지 않는 벽을 사이에 두고 전화보다는 목소리로 서로를 편하게 부르는 사이가 되었고 그렇게 인기척을 느끼며 꼬박 8년을 지냈다.

금요일 오후, 우리 집 근처에 오셔서 연락하시나 싶어 반가운 마음에 받았던, 사모님 이름으로 걸려온 전화가 황망하기 이를 데 없는 죽음을 전하는 부고일 줄이야. 올해 육십 한 살, 정년을 채우지도 못한 이른 나이. 내가 만난 이들 중에서도 단연 맑고 유쾌한 분이셨으며 가장 사람다운 분이셨다. 단정하셨지만 그렇다고 여유가 없는 분도 아니었으며, 학장직을 하시느라 힘드셔도 내색은커녕 발산리 너른 집을 놀이터 삼아 인문대 선생님들을 넉넉히 품으셨다. 화내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불가능한, 그런 “사람” “장춘익답게”라는 말이 자연스러울 만큼 자신만의 삶의 결을 다듬으신 분이었다.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이지만 누군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라 판단되면 선생님은 그 일을 기꺼이 감당하시는 분이셨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과 니클라스 루만의 <사회의 사회>라는 육중한 번역서가 강렬한 그 증거일 것이다. 일본에서는 <의사소통행위이론>을 15명이나 되는 인원이 5년여에 걸쳐 번역했는데, 선생님께서 홀로 해내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본학자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했다 한다. 하버마스의 책은 개역판을 내시려고 최근까지도 준비하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선생님의 이런 업적을 가늠할 역량이 없음에도 이를 통해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하나의 진실이 있다. 우리는 안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일을 흔쾌히 자신의 과업으로 떠안는 이의 인품이 얼마나 드물고도 고결하다는 것을. 선생님은 바로 그런 분이셨다. 인간다움에 관한 깊은 성찰과 드높은 자긍심에서 우러나온 기품을 지니셨기에 아무도 선뜻 덤비지 않을 번역작업을 오롯이 경이롭게 이루어내셨다고 나는 믿는다.

닫혀 있는 연구실 문을 볼 때마다 ‘어, 출근하지 않으셨네’ 하는 생각이 앞서고, 장난스런 목소리로 “선생님”하고 금세 연락하실 것만 같아 몇 번이고 전화기를 열어본다.

선생님께서 황망히 떠나신 비보를 학내에 공식적으로 알리라는 명령처럼 설 연휴를 앞두고 한림학보의 원고청탁 메일이 날아왔다. 가족, 친지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선생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켜켜이 쌓인 정리(情理)를 간직한 이들이 숱한데도 감히 내가 선생님을 기억하는 글을 적는 연유다. 그 메일에 짧게 답한다.

장춘익! 우리는 분에 넘치는 사람과 함께 하였음을 그를 떠나보내고서야 깨닫는다.

 

/이찬 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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