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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의 인문학] 비소 섞인 살인염료 셸레그린은 스웨덴 화학자 작품 천, 벽지, 음식 색소로 사용돼 많은 이들 사망케 해‘버디그린’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데는 무려 30년의 세월 걸려 화학자의 실험실에 탄생한 ‘셸레그린’은 치명적 독소인 비산 범벅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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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3.27  12: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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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살인자’라는 별명이 붙었던 셸레그린 벽지. 19세기의 대부분을 다스렸던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유행했던 벽지이기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 벽지를 마감재로 사용했던 가정은 비소에 중독됐다. 생명력을 상징하는 초록의 식물 문양이 오히려 생을 단축시키는 데 이바지했던 것이다. (이미지 출처: 유튜브)

지난 시간에 설명한 것처럼 혼색(混色)에 대한 금기가 잦아들기 시작한 르네상스 이후부터 화가들은 자신만의 녹색을 만들어야 했다. 그 가운데 ‘버디그린’이라 불리는 초록색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버디그린’이란 구리가 공기에 노출되면서 산화한 녹을 가루로 만들어 쉬어버린 와인과 섞은 것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버디그린’은 아름다우면서도 안정적인 색을 냈지만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째는 ‘버디그린’을 자연스럽게 얻으려면 무려 3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구리가 산소, 물, 또는 이산화탄소 등에 노출될 때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탄산염이며 이것이 ‘버디그린’의 주성분인데 구리로 만들어진 장밋빛 에펠탑이 탄산염의 발생으로 녹색으로 변하는 데 무려 30년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에 화가들은 구리 판금을 양잿물이나 식초에 담근 후 2주 정도 놓아둠으로써 인위적으로 구리 판금을 부식시키고 그 표면에 형성된 녹색 더께를 긁어서 가루를 만들어 이를 다시 쉰 와인과 빚으며 녹색 안료를 만들어야 했다.

두 번째 문제는 어렵게 만든 ‘버디그린’을 기름에 섞으면 유리처럼 투명해진다는 것이었다. 이에 얀 반 에이크는 녹색의 경우, 기름 대신 송진을 섞어 투명도를 낮춤으로써 당시로는 완벽에 가까운 획기적인 녹색을 선보기에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내구성 높은 녹색을 구현하기 위해 얀 반 에이크는 광택제 사이에 녹색의 켜를 칠하고 또 칠하면서 황홀하기 그지없는 녹색을 창조해 냈다. 화가에게 있어 ‘무엇을 그릴 것인가’와 함께 ‘어떻게 그릴 것인가’가 평생의 숙제라면 얀 반 에이크는 당대에 파격적인 그림 소재에 파격적인 색채까지 성공적으로 구현함으로써 서양 미술사에 영원히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겼다.

얀 반 에이크의 사례에서 보듯 캔버스에 녹색을 재현해 내는 것은 지난하고도 긴 과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18세기말 스웨덴의 화학자 카를 빌헬름 셸레에 의해 발견된 ‘셸레그린’은 그런 서양화의 판도를 일거에 바꿔 버린다. 아니 서양화뿐만 아니라 당시 서구의 생활상마저 모조리 바꿔 버렸다.

1775년, 스웨덴의 과학자인 칼 빌헬름 셸레는 비소를 연구하다가 우연히 녹색의 화합물인 비산구리를 발견했다. 「컬러의 말」의 저자,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에 따르면 비산구리는 “살짝 지저분한 완두콩의 녹색”이었지만 셸레는 자신이 발견한 녹색의 상품성을 즉각 깨달았다. 녹색 안료와 염료에 목마른 시장에서 그가 발견해낸 비산구리는 그야말로 미다스의 손처럼 보였다. 이에 셸레는 비산구리의 대량생산에 들어갔고 셸레의 녹색은 스웨덴을 포함해 유럽과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도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비산구리는 천이나 종이는 물론, 종이와 조화, 심지어는 음식의 색소로도 쓰였다. 미술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셸레의 비산구리는 곧 셸레그린으로 불리며 항상 새로운 안료에 목말라 있는 화가들의 유화에 곧장 사용되었다. 비단 화가뿐만이 아니었다. 일반인들은 캔버스가 아닌 벽을 녹색으로 칠하고 싶어했다.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롤」, 「위대한 유산」 등으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 역시, 자신의 집 전체를 새로이 유행하는 셸레그린 벽지로 꾸미고 싶어 했지만 고맙게도 그의 아내가 그를 뜯어 말렸다. 자료에 따르면 1858년까지 약 26만 제곱미터의 벽지가 비산구리로 염색돼 영국의 집과 호텔, 병원과 철도역 대기실을 장식했다. 1871년의 <영국 의학 저널> 문건에 의하면 녹색 벽지는 ‘궁전부터 인부의 오두막까지’ 모든 종류의 주택에서 찾을 수 있었다. 더불어 급증하는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 수백 톤의 셸레그린이 영국에서 직접 생산되었다.

하지만 셸레그린에 노출된 사람들이 한둘씩 죽어 나가다가 해를 거듭하며 그 수가 점점 늘어나자 셸레그린을 둘러싼 불길한 소문이 점차 확산됐다. 마틸다 셰러라는 조화 제조공은 셸레그린으로 작업한 후 구역질, 구토, 설사, 두드러기, 무력감에 시달리다가 1년 6개월만에 1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어린 소녀가 모형 포도에서 녹색 가루를 빨아 먹은 뒤 죽은 사건도 벌어졌다. 이런 사례가 점차 늘어나면서 의사와 과학자는 모든 녹색 소비재를 조사하기 시작했고 결국 셸레그린이 그 원흉으로 밝혀졌다. 나중에 조사된 바에 의하면 겨우 가로 세로 6cm의 정사각형 녹색 벽지에도 성인 2명분의 치사량인 비소가 함유돼 있었다. 이와 관련해 런던 가이 병원의 의사였던 오웬 리스는 영국의 유력 일간지 ‘더 타임즈’에 녹색 원단의 드레스를 입고 연회장에 참석하는 것은 비소를 연회장에 흩뿌리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셸레는 비산구리를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자신의 발견물이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던 듯하다. 그는 1777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비산구리의 독성 때문에 자신의 공이 무너질까봐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기술을 뛰고 법은 기는 법. 비소덩어리인 셸레그린이 생산 금지되기까지는 그 후로도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음식에 깃든 초록색 이야기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어느새 4월이 코앞이다. 비록 코로나로 어수선한 형국이지만 봄의 기운을 만끽하기 바란다.

 

/심훈 미디어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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