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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의 인문학] 지진, 태풍, 쓰나미 많고 유혈까지 낭자했던 열도에서 근심 걱정 잠깐이나마 덜어준 ‘멍때리기’ 음료가 녹차실제로 교도소 안의 조폭들도 뜨개질인 자수에 대단한 집중력 보여 녹차 대국 일본에선 세계 최초로 캔 녹차와 페트병 녹차도 개발해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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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5.15  09: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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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일본 이토엔(伊藤園)사의 녹차 캔. 해외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서 캔에 인쇄된 안내 문구가 모두 영어로 적혀져 있다. 왼쪽 위의 빨간 원 안에 ‘일본 넘버 원 녹차 브랜드’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커먼스)

비슷한 시기에 들어왔지만 한반도와 달리, 일본에서는 녹차를 마시는 행위가 지배 계층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보편화됐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귀족과 무사 계급 사이에서 참선을 강조하는 선종이 널리 전파됐기 때문이었다. 서양에서 ‘젠(Zen)’으로 더욱 잘 알려진 참선은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며 지속적인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했던 종교로서 개개인의 덕성 함양에 방점을 두었다. 이에 따라 지진, 태풍, 쓰나미, 홍수 등 온갖 자연 재해가 ‘디폴트(Default: 컴퓨터 용어상에서는 기본 상태를 의미함)’로 깔려 있는 열도에서 권력 투쟁과 전쟁이 극심했던 중세 시대, 선종은 단 한 순간이라도 모든 시름을 잊고 심신을 안정시켜 주는 일등공신이었다.

그리하여 녹차의 가치를 알아보고 선과 녹차를 결합시켜 다도(茶道)를 탄생시켰던 무라타 주코(村田珠光)는 ‘차(茶)’와 ‘선(禪)’이 하나라는 ‘차선일미(茶禪一味)’의 경지를 주장하며 다다미 4장 반의 조그마한 다실을 만들어 그 속에서 완전히 자신을 지울 것을 주창하였다. 다다미란 일본식 돗자리를 뜻하는 것으로써 우리가 여름에 돗자리를 폈다가 접었다가 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아예, 돗자리를 방바닥에 붙여 버린 것이다. 일본의 다다미 한 장은 우리나라 면적 단위인 한 평의 반에 해당하는 데 무라타 주코는 가로, 세로 약 2.6m로 두 평이 조금 넘는 다다미 4장 반의 다실을 창안했다. 키 180cm의 성인이 누우면 약 80cm가 남는 매우 좁은 공간으로 한국인의 기준에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협소한 곳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다실도 크다고 보고 그의 후계자이자 일본 다도의 고유명사가 된 센노리큐가 이를 다시 한 평으로 줄였다는 것. 센노리큐는 차를 대접하는 사람과 손님의 정신적 교류를 강조하기 위해 둘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 있도록 공간 자체를 줄임으로써 마치 소인국에 온 거인들이 자그마한 방에서 상대방과 더욱 가깝게 소통할 수 있도록 기획했던 것이다. 센노리큐는 또한 다실로 들어가는 문도 작고 낮게 만들어 이곳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자체를 낮추도록 했다. 이는 다실로 들어가는 사람은 누구나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는 뜻으로 다실에 겸손함과 만민평등의 사상을 담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하루하루의 안위를 걱정하며 고뇌가 많은 이들에게 무엇인가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잠시나마 상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데 이와 관련해 필자는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라디오에서 들은 경험이 있다. 교도소에 근무하는 한 교정관이 건넨 사연이었는데 조직 폭력배들이 구치소에서 뜨개질의 일종인 자수를 배우면 의외로 차분하게 집중력을 발휘하며 시간을 잘 보낸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습격 받을지 모르는 세상에서 잠시나마 긴장과 근심을 벗어버리고 머릿속을 비우는 ‘참선’의 과정이 단순 작업을 통해 훌륭하게 구현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던 열도에서 전장까지 수시로 누벼야 했던 사무라이들은 집에 돌아와 자신의 다실에서 녹차 한 잔을 마시며 시쳇말로 ‘멍 때리기’를 했던 것이다. 그런 일본의 전통은 무려 700년 동안 열도를 지배했던 무사 정권의 영향을 깊게 받아 지금도 녹차를 숭상하며 어느 곳이든 조금이라도 공간이 생기면 다실로 만들고자 하는 문화로 자리잡았다. 이 때문에 서양의 근대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며 자신들의 생활 양식 대부분을 완전히 바꾸는 데 성공한 일본인들이었지만 음료에 있어서만은 커피와 코카콜라를 택하지 않고 녹차를 고집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음료 가운데 녹차 소비량이 가장 많으며 회전초밥 집에서조차 녹차 분말 가루를 이용한 말차를 보리차 마냥 내놓고 있다.

그리하여 녹차와 관련된 상품 개발에서도 항상 한 발자국 앞서나간 국가가 일본이었다. 일례로 일본 유수의 음료수 회사인 이토엔(伊藤園)에서는 1985년에 세계 최초로 캔에 넣은 녹차 음료를 선보였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얼핏 쉬워 보이는 녹차 캔을 출시하기 위해 이토엔은 무려 10년의 개발 기간을 투자해야 했다. 이유는 녹차가 산화되기 쉬워서 맛과 향을 오래 보존하기가 무척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토엔이 녹차 캔을 성공적으로 출시한 이후, 열도의 일본인들은 언제 어디서고 시원한 녹차를 캔콜라 마시듯 마실 수 있게 됐다. 더불어, 이토엔은 1990년에 다시 새로운 녹차 신상품을 개발했는데 이번엔 페트병에 넣은 녹차였다. 페트병 녹차는 캔 녹차 개발 시, 고려할 필요가 없었던 문제를 해결해야 했는데 이는 다름 아닌 침전물이었다. 캔 녹차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았기에 상관이 없었지만 속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페트병 녹차는 오랜 시간이 흐르면 바닥에 녹차 침전물이 싸여 소비자들의 불쾌감을 자아낼 우려가 있었다. 이에 이토엔은 음료 속성상 침전물이 많은 녹차의 찌꺼기를 0.1mm 그램까지 거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페트병 녹차를 선보였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녹차와 함께 그런 녹차를 탁한 노란색으로밖에 볼 수 없는 적록 색맹에 대한 이야기로 초록 오디세이를 마치도록 하겠다. 어느새 5월도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 모두들 새로운 초록인 ‘신록(新綠)’의 5월을 만끽하기 바란다.

 

/심훈 미디어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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