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기획
[기획] 왕진 600회…진료실 문턱 넘어 환자의 삶 속으로왕진 경험 바탕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 발간, 양창모씨 인터뷰 ‘소외된 아픔’ 치유하는 의사이자 시민사회활동 분주한 ‘활동가’
문효민 기자  |  xxihyominxx@hallym.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1.05.22  10:03:44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양창모 호호방문진료센터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왼쪽 사진). 춘천지역사회 돌봄추진위원회의 사무실에서 양센터장이 왕진 가방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 박지현 기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춘천 어딘가에는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가 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그 세계를 꿋꿋이 찾아 나서는 사람도 있다. 600회 넘는 왕진 경험과 춘천 지역 사회 문제를 다룬 에세이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를 펴낸 양창모 호호방문진료센터장의 이야기다.

양 센터장은 최희선 간호사, 정윤후 마을 활동가와 함께 매주 3일씩 소양강댐 수몰 지역 인근에 사는 노인을 대상으로 왕진을 다닌다. 거동이 불편해 병원에 오기 힘든 의료소외지역의 노인들을 만나기 위해 구불구불한 길과 가파른 언덕을 넘는다. 그가 진료실 안 의사였을 때, 환자와 마주하는 시간은 평균 6분이었다. 다른 병원의 사정은 더하다. 진료실을 벗어난 그는 한 가구당 30분에서 1시간 동안 진료를 본다. “좋은 의사는 좋은 삶 속에서 가능하다”는 말을 가슴에 품고 사는 그를 지난 13일 만났다.

그는 흔히 ‘의사’라고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와 사뭇 달랐다. 기자와 만난 날도 머리에 나뭇잎이 떨어져 있었다. 왕진을 다녀온 듯했다. 편안한 복장을 한 그는 조카를 제외한 대학생을 오랜만에 만난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우리가 진료실에서 만났던 여느 의사와는 다른 느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접촉’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사실 그의 책에도 ‘접촉’이란 단어가 자주 언급된다. 사람 간의 접촉이 이뤄져야, 개인이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현장에 맞닿아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왕진은 접촉이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개인의 움직임과 접촉을 강조하는 그에게 의료소외계층을 위해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당사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직접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내야 하지만 쉽지 않은 현실에 아쉬운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흔히 말하는 ‘의료 소외 지역’의 이야기를 책이나 신문에서 접할 때와 현장에서 온몸으로 접촉하며 느낄 때 하게 되는 생각은 확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공공의료 행정 처리가 사람 중심으로 흘러가지 않고 ‘절차’ 중심으로 진행된 사례를 설명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방식의 진료를 받으라고 요구한 것이었다. 그는 “의료소외계층이 맞닿은 현실은 현장에 있어야 체감할 수 있다. 접촉하지 않으면 알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의 책에는 다소 생소한 표현인 ‘어르신 정당’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노인의 이익과 그들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는 정치세력이 있어야 하고 이를 노인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그들에게 생기는 문제를 말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는 결국 그들에게 있다”며 노인들의 정치세력화를 바랐다. 그는 노인들에게 발생한 문제를 사회에 고발할 수 있는 수단이나 계기가 부족한 것이 의료취약계층이 발생하는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흔히 SNS에 의견을 표출하는 것조차 노인들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왕진 경험을 토대로 의학ㆍ간호학을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경험’을 강조했다. “의료진의 입장이 아니라 환자의 입장에 서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왕진은 진료실을 벗어나 환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환자들의 의료 경험을 더 많이 체험하고 상상할 수 있다”고 말하며 왕진의 필요성을 상기시켰다.


그는 의사인 동시에 춘천 지역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놓지 않는 ‘활동가’다. 춘천에서 일을 시작하고 약 10년간 춘천 시민 사회를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했다. 춘천시 생활 방사능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시청에 나가 피켓을 들었고 지역 신문에 꾸준히 기고도 했다. 춘천 녹색당 당원이기도 했던 그는 환경 문제에도 목소리를 낸다. 그는 “의사로서의 삶은 평범했고 오히려 춘천에서 했던 활동들이 내가 살아온 삶이다”라고 말한다.
레고랜드가 내년 중 완공될 계획이다. 의암호 한가운데 떠있는 섬인 중도에 생기는 탓에 환경 분야 시민단체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그에게 레고랜드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레고랜드의 ‘필요성’에 의문을 던졌다. 이번에도 그는 당사자의 목소리에 주목했다. 언론은 레고랜드가 불러올 경제적 이익과 발전에 집중하지만 개발 과정에서 피해를 입을 이들의 목소리는 담지 않는다.

강원도는 레고랜드 개장 이후 하루 평균 1만5천명의 관광객이 춘천을 찾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시민들이 휴일마다 겪어야 하는 매연과 소음, 쓰레기와 생활 폐수 등이 야기할 피해에 대한 문제의식은 없다. 그는 개발의 수혜자들은 눈에 보이지만 이로 인해 피해를 입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원활한 교통 흐름을 위해 수많은 도로가 생겼고 생길 예정이지만, 누구도 도로 인근에 사는 주민에게 주목하지 않는다. 앞서 말한 들리지 않는 ‘노인의 목소리’와 같은 맥락인 것이다.

‘환경 문제’를 논의할 때 항상 제기되는 반론이 있다. “먹고 살만하니까” 혹은 “한가하니까” 기후ㆍ환경 문제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편견이 작용한 말들이 그것이다. 그는 이런 반론에 “환경 문제로 극심한 피해를 입는 집단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삶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꼭 춘천에 터전을 꾸리지 않아도 된다”고 반박했다. 춘천 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춘천의 자연, 그리고 자연이 주는 위로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춘천이 아니면 안 되는’ 사람들에게 진정 환경 문제가 중요하다.


레고랜드가 가져다줄 순기능을 부정할 수 없지만 이와 별개로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대가들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시민이 고스란히 떠안을, 분명히 존재하는 피해와 역기능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가 바라는 춘천은 어떤 모습인지 묻자 “춘천은 지금 이 모습 자체로도 굉장히 소중한 공간이다”라고 말하면서도 씁쓸한 표정을 내비쳤다. 본인이 처음 춘천에 와 위로를 받았던 자연 경관이 사라져가는 것, 춘천이 변화하는 것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개인의 목소리, 한 사람의 이웃, 사람 간의 접촉이 주는 힘을 믿는 그는 의사임과 동시에 시민 사회 활동가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긍정적 측면만 비추는 개발 혹은 발전이라는 키워드를 달리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문효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인기기사
1
[보도] 꺼지지 않는 탐사보도의 열기 ‘추적단 불꽃’ 특강
2
[보도] 젠더갈등, 언론·정치권 무책임의 소치?
3
[보도] 일송 탄생 100주년, 그의 삶을 돌아보다
4
[보도] ‘코로나 학번’ 위한 소규모 축제 열려
5
[보도] ‘신중한 선택하세요!’ 학사신청 진행
6
[기획] 학술부터 체육까지 다양성 갖춘 신설 중앙동아리 ‘기대’
7
[보도] 세계적인 SW 전문가 되려면 “실패 두려워 말아야”
8
[보도] 내가 낸 학생회비, 어떻게 사용됐을까?
9
[시사] 마스크 없이 마주한 ‘한미 정상’
10
[시사상식] 신문에서 보는 시사상식
신문사소개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4252 강원도 춘천시 한림대학길 1 캠퍼스라이프센터 9-308호 한림학보사
제보 및 문의 : news@hallym.ac.kr / 033-248-287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선미(간사)
Copyright © 2005 한림학보. All rights reserved. news@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