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교양
[색깔의 인문학] 오렌지색으로 더욱 잘 알려진 주황색 과일 이름이 색깔 이름인 유일한 색원산지 인도 거쳐 중국과 유럽, 미국에 전파된 과일 귤 몰아내며 오렌지족 탄생시킨 미국 문화의 첨병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1.08.28  03:09:5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사진 설명. 인도 원산의 오렌지는 이슬람의 우마이야 왕조가 스페인을 정복하면서 유럽에 소개됐다. 현재 스페인은 세계 최대의 오렌지 생산 국가로 세계 수출시장의 27%를 차지하고 있으며 다음으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14.7%), 이집트(12%), 미국(11%) 순이다. 사진은 네이블 오렌지로 주로 미국에서 생산되며 달고 신맛이 적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네이블(NAVEL)은 ‘배꼽’이라는 뜻으로 네이블 오렌지는 꼭지 아래쪽이 배꼽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커먼스)

드디어 새 학기가 시작됐다. 코로나가 발발한 지도 어느덧 꽉찬 2년이 다가오고 있다. 언제쯤 학기가 학기다워지고 캠퍼스가 이전과 같은 활력으로 넘치게 될까? 현재로선 요원하기 그지없지만 어쩌랴! 산 자는 살아가야 하고 쇼는 무대에 올려져야 하는 법. 해서, 이번 학기에도 지난 학기에 이어 한림학보의 도움을 받아 ‘색깔의 인문학’을 진행하고자 한다. 더불어 이번 학기의 첫 번째 색깔은 빨강과 노랑의 혼합물인 오렌지색이다. 그럼, 이제부터 오렌지색에 관한 오디세이를 떠나도록 해 보자. 저자 주.

색깔들에게 기질이 있다면 가장 튀는 개성을 지닌 색. 강렬하면서도 정열적인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는 색이 이른바 주황색이다. 미국에서 주황색은 호박과 핼러윈의 상징이며, 인도에선 신성하기 그지없는 색이다. 인도 불교에서 주황색은 영생과 평화의 상징인 까닭에서다.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주황은 문명과 지식의 색이며 네덜란드에 있어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국가의 색이다. 해서, 한국인들이 백의(白衣)의 민족이라면 네덜란드인들은 주황의 민족이라는 것이 필자의 B급 견해이다.

붉은색을 나타내는 ‘주’(朱)와 노란색을 의미하는 ‘황’(黃)이 만나 탄생시킨 주황색은 그 성질이 따뜻해 난색계(暖色界)로 분류된다. 반면, 파란색을 중심으로 한 초록, 남색, 검은색은 한색 계열로 구분되고.「색채 심리」의 일본인 저자, 스에나가 타미오에 따르면 주황색을 중심으로 빨강과 노랑은 외향적인 심리 상태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저자가 운영하는 색채 학교에서 색채 심리 강좌에 참여한 참가자들은 자신의 기억에 남아 있는 색을 시간순으로 기록한 후, 색에 관한 사건을 기술해 나가는데 난색 계열, 그 가운데에서도 주황색을 선택하는 시점에는 참가자들의 심리적인 상태는 적극적이고 활발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러시아의 추상화가 바실리 칸딘스키는 1912년에 발표한 논문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에서 ‘오렌지는 자신의 힘을 확신하는 남자와 같다’고 기록한 바 있다.

그런 주황색은 또한 오렌지색으로도 불리는 데 이는 수많은 색깔 가운데 유일하게 과일 이름이 색깔로 불리는 희귀한 경우다. 말하자면, 사과색이나 바나나색, 포도색이나 딸기색과 달리 오렌지색은 그 자체로서 주황색의 완벽한 대체어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국제화, 세계화에 따라 과거에는 주황색으로 불리던 빨강과 노랑의 혼합색이 이제는 오렌지색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주황색을 오렌지색으로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1980년대에 유년 시절을 보낸 필자에게 있어 오렌지라는 과일은 낯설기만 했다. 하지만 2004년에 칠레를 필두로 동남아시아, 미국, 호주, 캐나다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순차적으로 체결되면서 청포도, 체리, 키위, 망고, 파인애플, 레몬 등 평생 본 적도 없는 진기한 과일들이 싼 값에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더불어 그러한 외국 농산물의 대표 주자가 바로 미국산 오렌지였다. 자그마한 귤만 보아온 필자에게 있어 아이 머리통만큼 큼지막한 가운데 진하디 진한 주황색을 자랑하던 캘리포니아 산 오렌지는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세계의 과일로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후, 주황색을 대표하던 귤이 맥도 못춘 것처럼 주황색 또한 오렌지에게 색깔 이름을 넘겨 주었다. 그래서일까? 유독 한국에서 오렌지는 국제화의 대명사로 맹활약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정권 인수위원장을 맡았던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은 영어의 공교육을 강조하면서 ‘오렌지’를 ‘오렌쥐’로 발음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하다 세간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그러고 보면, 필자의 20대 시절에는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부유층 자녀들을 비꼰 조어, ‘오렌지족’이 널리 회자되곤 했다. 부유층 자제로 어린 나이에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비싼 차를 몰며 여성들을 유혹하는 이들이 ‘오렌지족’으로 불렸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렌지’ = ‘미국’이라는 등식은 오랫동안 필자 세대의 머리를 지배했다.

안타까운 것은 주황색이라는 낱말을 몰아낸 오렌지의 원산지가 미국이 아닌 인도라는 사실. 인도에서 자생한 오렌지는 히말라야를 거쳐 중국으로 전해져 중국 품종이 되었고 15세기에는 포르투갈로 들어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발렌시아 오렌지로 개량돼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컬러의 말」을 쓴 영국인 저자,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에 따르면 오렌지는 페르시아에서 나랑(Nārang), 아랍에서 나라니(Nāranj)였고 산스크리트어의 나랑가(Nāranga), 스페인어의 나랑하(Naranja), 프랑스어의 오렝쥬(Orenge)로 불렸으며 마침내 영어에서 오렌지로 정착됐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여성 패션을 연구하며 색소와 염료, 색조 등 컬러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지속해 온 클레어는 오렌지가 색의 이름으로는 16세기가 되어서야 쓰이기 시작했으며 이전에는 번거로운 조어인 지올루레아드(Giolureade) 또는 황적색으로 불렸다고 밝힌다.

그런 까닭에 16세기 이전만 해도 유럽에선 오렌지색, 즉 주황색에 대한 색깔 언어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주황색’ 물체는 황금색 또는 금색으로 묘사됐다. 금붕어가 ‘주황붕어’ 또는 ‘오렌지붕어’(Orangefish)가 아닌 ‘골드피쉬’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토마토도 오렌지가 색깔의 대명사로 사용되기 전까지는 ‘황금사과’(Golden apple)로 불렸다. 그럼, 다음에는 국가와 국기를 둘러싼 오렌지색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심훈 미디어스쿨 교수

   
 
한림학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인기기사
1
[보도] 전공박람회, 53개 전공 1천여명 상담 진행
2
[보도] 학생생활관 1인 사생실 시범 운영
3
[보도] 해외 취업의 길잡이 ‘글로벌 주간’ 특강
4
[보도] 한강을 따라 인문학을 되짚어 보다
5
[보도] “자기 삶의 주체가 돼 방향성 잡아가야”
6
[보도] “기업이 원하는 인재는” 25일, 명사특강 열려
7
[기획] 전공능력 중심 교육체계, ‘Hi FIVE’ 운영된다
8
[보도] 동아리들의 잔치 ‘클립 오락관’
9
[보도] 봉사시간 채우고 학점 받자 ‘자율형봉사인증’
10
[시사] ‘루나ㆍ테라’ 폭락… 무너지는 코인 시장
신문사소개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4252 강원도 춘천시 한림대학길 1 캠퍼스라이프센터 9-308호 한림학보사
제보 및 문의 : news@hallym.ac.kr / 033-248-287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지혜수(간사)
Copyright © 2005 한림학보. All rights reserved. news@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