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교양
[색깔의 인문학] 허풍 가미한 색이라는 인식 팽배했던 오렌지색 중국선 탱자, 한국선 낑깡이란 유사 상품 낳아오렌지색 국기의 원조는 지배층이 오렌지색 좋아했던 네덜란드 하지만 염색 어려워 빨강으로 대체되며 오늘날엔 오렌지색 없어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1.09.04  06:18:4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네덜란드 오렌지 왕가의 깃발. 초창기에는 오렌지색이 삼색기의 맨 위를 차지했으나 염색 문제로 점차 빨간색이 오렌지색을 대체했다. 네덜란드 왕가의 깃발은 훗날 네덜란드 국기가 되었다. 국기 가운데에 위치한 사자 문양 역시 오렌지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출처: 구글)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정권인수위원장이었던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은 한국의 공교육을 비난하며 대표적인 사례로 국제화의 첨병이 되어야 할 국내 영어 교육이 ‘오렌지’라는 발음을 한국인들에게 획일적으로 강요하고 있다고 일갈한 바 있다. 이경숙 정권위원장은 ‘어뤤지’가 미 본토 발음이라며 이를 교육 현장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밝혔다가 국민적인 비난에 직면하며 출범 초기의 이명박 정부에게 큰 부담을 안겨준 바 있다. 허풍을 가미한 오렌지 발음이 예기치 못한 후폭풍을 불러왔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 같은 허풍이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미 필라델피아에서 19세기 중반에 출판됐던 「고디 여성」 (Godey’s Lady’s Book)이라는 책에서는 ‘오렌지색이 너무 화사해 우아하지 않다’고 기술한 바 있다. 필자가 좋아하는 「컬러의 말」 저자,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역시, 디스토피아 소설인 「시계태엽 오렌지」의 작가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한다. 20세기의 천재 영화 감독인 스탠리 큐브릭이 1971년에 개봉한 영화로 더욱 유명해진 「시계태엽 오렌지」는 저자인 클레어가 술집에서 해당 단어를 들었다는 설에서부터 스스로 지어낸 말이라는 설까지 그 어원이 다양하다. 주워들었건 스스로 생각했건 간에 ‘있어 보이는 단어’이기에 자신의 소설에 집어 넣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렌지족과 낑깡족이 한국에서 탄생한 것 또한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참고로 ‘낑깡족’은 오렌지족을 흉내내지만 A급 자동차를 몰지 못하고 B급 자동차로 이성을 유혹하려던 젊은이들을 비하했던 90년대 속어였다. 양쯔강 이남에서 자라야 할 귤이 양쯔강을 넘어오면 탱자가 되듯, 한국에선 오렌지족을 꿈꿨던 B급 인생들이 낑깡족으로 둔갑한 것이다.

그렇다면 허풍기가 있어 보이는 오렌지색을 국기로 사용하는 국가는 과연 지구상에 존재할까? 호기심에 세계 국기를 찾아보니, 의외로 많은 나라들이 자국기에 오렌지색을 쓰는 것이 눈에 띈다. 먼저 오렌지를 사용한 삼색기 가운데 수평 삼색기를 채택한 국가로는 아프리카의 니제르와 아시아의 인도가 있다. 또 수직 삼색기를 사용하는 국가들 중에서는 유럽의 아일랜드, 아시아의 스리랑카,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가 검색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일랜드와 코트디부아르의 삼색 국기 색깔은 구성이 똑같은 가운데 오렌지 색의 위치만 다르다는 것. 이에 두 나라 국기는 자국민들을 제외하면 어느 것이 아일랜드 것이고 어느 것이 코트디부아르 것인지 헛갈릴 정도이다. 한편, 히말라야 산맥 아래에 위치한 행복의 나라, 부탄도 오렌지색을 사용하고 있는데 국기를 대각선으로 갈라 오른쪽 아래에 오렌지색을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부탄은 티베트어 방언으로 ‘용의 나라’를 의미하기에 지도 가운데 흰 용도 그려져 있고.

하지만, 오렌지색 국기의 으뜸은 네덜란드가 되어야 마땅하다. 사실, 유럽에서 삼색기를 가장 먼저 사용한 나라는 네덜란드이며 이에 영향받아 유럽과 유럽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에서는 삼색기가 국기로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니 네덜란드의 왕조는 오란네 가문으로 해당 가문에서 사용했던 깃발이 오늘날의 네덜란드 국기가 됐다. 참고로 오렌지의 네덜란드식 발음이 오란네이다. 오란네 가문은 당초 프랑스의 매우 작은 지역인 오란네주에서 시작됐다. 이후 오란네 가문은 네덜란드로 이주해 네덜란드 왕가를 형성하게 됐다. 마치 전주 출신의 이성계가 한성으로 올라와 조선 왕조를 개창한 것처럼.

그러던 네덜란드 역사에 1584년 6월 10일, 비극이 발생한다. 종교 분쟁에 불만을 품은 한 자객이 오란네의 왕자, 빌럼 1세를 권총으로 암살한 것이다. 죽어가면서도 빌럼 1세는 네덜란드인들의 자비를 위해 기도를 하고 숨을 거뒀다고 한다. 그렇게 숨을 거둔 빌럼 1세는 네덜란드인들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들 간의 지독한 반목 속에 태어났던 그는 네덜란드를 통치하던 스페인에 반발해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반란을 일으켰다.

빌럼 1세는 오렌지색을 좋아해 그의 초상화에는 오렌지 색조가 빛난다. 그의 후손들도 오렌지색을 좋아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빌럼 3세 역시, 조상들보다 더욱 강렬한 오렌지색으로 자신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런 까닭에 네덜란드는 암살당한 빌럼 1세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오렌지색을 열정적으로 채택했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자주색 또는 노란색이 감돌던 남미 원산의 당근을 네덜란드 농가에서 선택 교배해 100년에 걸쳐 오렌지색 품종을 만들어냈다. 오늘날의 당근이 오렌지색으로 변한 이유다. 한편, 오늘날 파란색, 흰색, 빨간색의 조합인 네덜란드 국기는 빌럼 1세의 상징색을 기려, 파란색, 흰색, 빨간색과 오렌지색의 줄무늬였다. 하지만 색이 빠지지 않는 염료를 찾을 수가 없어서, 오렌지색은 노란색으로 빛이 바래거나 빨갛게 물들어서 전해졌다. 결국, 17세기 중반에 이르러 네덜란드는 오렌지색 찾기를 포기하고 빨간색을 대신 썼다. 시대를 너무 앞서 오렌지색을 국기에 채택한 비극이라고나 할까?

그럼, 다음 시간에는 네덜란드에 얽힌 오렌지색을 조금 더 알아본 후, 오렌지색으로 상징되는 사물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심훈 미디어스쿨 교수

 

   
 
한림학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인기기사
1
[보도] 전공박람회, 53개 전공 1천여명 상담 진행
2
[보도] 학생생활관 1인 사생실 시범 운영
3
[보도] 해외 취업의 길잡이 ‘글로벌 주간’ 특강
4
[보도] 한강을 따라 인문학을 되짚어 보다
5
[보도] “자기 삶의 주체가 돼 방향성 잡아가야”
6
[보도] “기업이 원하는 인재는” 25일, 명사특강 열려
7
[기획] 전공능력 중심 교육체계, ‘Hi FIVE’ 운영된다
8
[보도] 동아리들의 잔치 ‘클립 오락관’
9
[보도] 봉사시간 채우고 학점 받자 ‘자율형봉사인증’
10
[시사] ‘루나ㆍ테라’ 폭락… 무너지는 코인 시장
신문사소개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4252 강원도 춘천시 한림대학길 1 캠퍼스라이프센터 9-308호 한림학보사
제보 및 문의 : news@hallym.ac.kr / 033-248-287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지혜수(간사)
Copyright © 2005 한림학보. All rights reserved. news@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