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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의 인문학] 중국판 보라색의 백미는 금지된 보랏빛 ‘자금성’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도 보라색 알에서 태어나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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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1.06  09:2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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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의 영어 이름은 보라색 단어 뺀 ‘금지 도시’
한국 정치사에서도 보라는 주목 위해 종종 동원돼

   
▲ 사진 설명 세계 최대 규모의 궁궐 ‘자금성’은 한자어로 ‘보랏빛의 금지된 성’을 의미한다. 물론, 성의 색깔이 보라가 아니라 하늘의 중심인 보랏빛 북극성처럼 땅의 중심에 있다는 의미에서이다. 사진에서는 성벽이 보라색으로 보이지만 빛이 충분한 낮에 보면 황토색이며 새벽이나 저녁때는 보라색으로 보이기도 한다.(출처: 위키피디아 커먼스)

지난 시간에는 중국에서 보라색을 숭상하게 된 역사에 대해 알아봤다. 오늘은 그 후속편.

중국 역사서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서에서도 최고봉으로 대접받는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고대 중국인들의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보고(寶庫) 중의 보고(寶庫)다. 그런 「사기」속에는 한나라의 무제(漢武帝)가 북극성을 향해 제사를 지낼 적에 관원들에게 보라색 옷을 입게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왕망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 후한(後漢)을 세운 광무제(光武帝) 역시, 자신이 천명(天命)을 받은 군주임을 선포하는 의식을 치르며 보랏빛 옷을 입고 북극성을 주재하는 태일신에게 제사를 올린 바 있고.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보라색에 대한 중국의 백미(白眉)는 바로 ‘자금성’에 있다. 중국 베이징에 지어진 ‘자금성’은 1420년에 완공됐는데 명과 청, 두 왕조에 걸쳐 500년 동안 중국 황실의 궁궐로 기능했다. 이 정도면 조선왕조의 경복궁과 맞먹는 기간. 덧붙이자면 경복궁은 1395년 완공돼 자금성보다 나이가 25살 더 많으며 역시, 500년 이상 조선왕조의 정궁(正宮)으로 훌륭하게 역할했다.

그렇다면, 자금성이 왜 보라색에 대한 중국의 ‘백미’일까? 이유는 자금성의 첫 번째 한자어인 ‘자’가 바로 보라색 ‘자’(紫)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하늘의 중심인 북극성처럼 천하의 중심에 놓인 궁궐이라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자금성’이 한국인과 일본인들에게만 익숙한 이름일 뿐, 중국에서는 상당히 낯선 이름이라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자금성을 ‘고궁박물원’이라 부르며 이마저 줄여 ‘고궁’(중국식 발음은 ‘꾸공’)이라 일컫는다.

하면, ‘자금성’의 영어 이름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포비든 시티’(The forbidden city), 즉 ‘금지된 도시’다. ‘자금성’의 한자어 유래는 보랏빛 ‘자’(紫)에, 금할 ‘금’(禁)이다. 금할 ‘금’은 청나라 황제와 황족 이외에는 누구도 거주할 수 없었기에 붙여진 글자다. 하지만,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금지된 보라’(purple forbidden)이라는 용어가 매우 어색했기에 ‘보라’를 생략하고 ‘금지된’만 남겨뒀다. 더불어 궁궐의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궁을 의미하는 ‘팰래스’(palace)나 성을 뜻하는 ‘캐슬’(castle)이라고 부르기보다 ‘시’(city)라고 칭하게 됐다. 참고로,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 크기는 6만3천m2, 영국 버킹검 궁전은 7만m2, 루브르 궁전은 21만m2, 일본 왕궁은 23만m2, 경복궁이 43만m2이며 자금성은 70만m2로 세계에서 가장 넓은 규모를 자랑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의 보라색은 어떠한 의미를 지녀 왔을까? 역사적으로 살펴보니, 한반도에서의 보라색 역시 신성함으로 가득 차 있기는 중국과 매한가지다, 일례로 삼국유사에 따르면 박혁거세는 하늘에서 백마가 실어온 보라색 알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알에서 태어난 것으로도 모자라 보라색 알에서 태어났으며 그 보라색 알 또한 하늘에서 백마가 가져다 준 것이라고 하니 신라인들의 상상력이 놀랍기만 하다. 나아가 신라 법흥왕은 ‘자극전’(紫極殿)이라는 궁에서 즉위했다고 기록돼 있으며 신라 진흥왕은 월성 동북쪽에 ‘자궁’(紫宮)을 지으려다 황룡(黃龍)이 출현하는 바람에 황룡사(黃龍寺)를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시계 바늘을 빠르게 돌려 조선왕조에 이르러서도 보라색은 국가가 깊이 관여하는 주된 대상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성종 때 관원이 외국 사신을 영접하는 경우에는 보라색 옷의 착용을 금했으며 중종 때에는 서민과 공인, 상인은 물론 유생들의 보라색 옷 착용도 금지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후유증 탓이었을까? 선조 39년인 1605년에도 조정 대신의 관복에 보랏빛 색깔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렇다고 보라색에 대한 정치적 관심이 조선왕조에만 머물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현대 한국사에 있어서도 보라색은 이따금 파란을 불러 일으키는 매개 역할을 톡톡히 했다. 비근한 예로, 지난 2006년도엔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를 선언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보라색 코드'를 내세우며 여론몰이를 했다.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강 전 장관은 “보라색이 빨간색과 파란색을 섞으면 나오는 색”이라며 대비되는 색을 합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색으로 탄생하는 보라가 분열을 통합함으로써 새로운 흐름을 창출하고자 하는 자신의 철학과 100%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해서 그녀가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던 당시, 입당식이 열린 회의실 중앙에 놓인 원탁 테이블은 보라색 천으로 덮였으며 그를 당원으로 맞이한 정동영 의장과 김혁규 최고위원은 보라색 넥타이를 착용하고 그녀를 영접했다.

아, 얼마 전에는 ‘정의당’의 류호정 국회의원이 ‘타투업법’ 합법화를 부르짖으며 등이 깊이 파인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국회 내 잔디에서 시위를 벌인 바 있다. 바야흐로 ‘금지의 보라’가 아니라 ‘진격의 보라’ 시대가 열린 느낌이다. 그럼, 다음에는 일본과 함께 아시아의 보라색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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