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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의 인문학] 서구 역사상 가장 혁신적이고 가장 널리 사랑받은 19세기 말 인상파는 ‘바이올레토 마니아’(보라색광)인상파 화가의 대부, 클로드 모네는 대기 색이 ‘보라’라 여겨 열정과 냉정의 두 감정을 진솔하게 표출하는 보라는 ‘치유의 색’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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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1.27  07: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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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로드 모네가 세기말인 1899년 초에 그린 작품으로 총 9개의 시리즈로 구성돼 있다. 온통 보랏빛으로 물든 대기 속에서 워털루 다리가 희미하게 보이고 있다. 참고로 이 시리즈의 대부분 미국 미술관들에 보관돼 있으며 세계 최고의 미술 컬렉션을 구축하고 있는 동시에 인상파 화가에 대한 작품 또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1874년 4월 15일. 파리 카퓌신 대로에 있는 나다르의 사진 스튜디오에서 한 무리의 무명 화가들이 전시회를 열었다. 매년 파리에서 열리는 살롱 전시회에서 자신들의 그림에 번번이 퇴짜를 놓던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에 맞서 자신들만의 전시회를 가진 것이다. 이들의 개인전 개최는 다시 말해 프랑스 미술의 최고 권위에 대한 공개 도전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의욕과 달리, 비평가들의 평가는 냉혹했다. 당시, 이들의 전시회를 방문했던 풍자 신문, ‘르 샤리바리’의 비평가 루이 르루아는 한 화가의 작품이 마치 “그리다 만 것 같다”며 그의 작품 제목인 ‘인상-해돋이’를 비꼬아 “대단히 인상적인 그림과 전시회였다”고 혹평했다. 아이러니컬하게 르루아의 이 같은 혹평은 훗날 이 예술가들에게 서구 미술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가장 널리 사랑받는 이름을 안겨주었다. 모네, 르누아르, 드가, 세잔, 카미유, 피사로, 시슬리, 모리조의 8명으로 구성된 ‘인상파’ 화가 이야기이다.

당시, 혜성처럼 파리 미술계에 등장한 인상파는 기존의 화풍이 지나치게 치밀하고 학구적이어서 고리타분하다고 여겼다. 인상파는 특히, 정밀하고 화려하게 그려낸 캔버스 위에 광택제까지 바르는 행위가 우리 눈에 비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기만적인 행위라며 눈이 보고 가슴이 느끼는 장면들을 생생하게 포착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카메라의 렌즈가 정밀하게 보여주는 피사체가 아닌, 우리 눈에 순간적으로 비추어진 장면들을 투박하지만 감각적으로 걸러내 이를 화폭에 담은 이들이 인상파 화가들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인상파 화가들이 보라색에 대해 두드러진 애착을 보였다는 것. 때문에 소설가이자 미술 비평가였던 에드몽 두랑티는 인상파 화가들이 “거의 언제나 보라색과 파란색 계통에서부터 색칠을 시작한다”고 평가했다. 당시 보라색을 좋아하지 않던 대중들과 비평가들은 인상파 화가들이 제정신이 아니거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병에 걸렸을 것이라 결론 짓고 이들을 ‘바이올레토 마니아’(보라색광)라 부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인상파 화가들의 보라색 사랑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 하나. 인상파 화가의 대부라 할 수 있는 클로드 모네가 “나는 마침내 대기(大氣)의 진정한 색을 발견했다. 그것은 보라색이다. 신성한 공기는 보라색이다. 앞으로 3년 뒤에는 모두가 보라색으로 작업할 것이다”라고 장담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상파 가운데에서도 보라색을 특히 사랑했던 모네는 석양을 그릴 때 유난히 보라색을 많이 동원했다.

실제로 모네의 ‘루앙 대성당’ 연작(連作)을 보면 해의 고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성당의 색깔이 노란색과 붉은색을 띨 때조차 보랏빛이 곳곳에서 보인다. 이와 함께 마지막 그림인 해가 진 이후의 성당은 완전 보라색이고. 그의 걸작 가운데 하나인 ‘워털루 다리’ 역시, 짙은 보랏빛 안개 속에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워털루 다리가 간신히 형체만 보인다. 사실, 인상파 화가라는 사실, 그리고 모네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이 작품을 본다면, 르루아의 비평이 마냥 근거 없이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루아는 기존의 정체된 화풍으로부터 탈피해 혁신적인 흐름을 창조한 인상파의 도래(到來)를 감지하지 못하는 바람에 미술사에서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기게 됐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드는 궁금증 하나. 과연 보라색은 색채 심리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약 반세기 전인 1947년 두 사람의 미국 여성 교육자인 알 슐러와 하트 위크는 ‘그림과 개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들의 연구는 우연히 같은 해에 스위스의 심리학자 막스 륙사가 발표한 ‘컬러 테스트 심리학’과 함께 ‘색채 심리’라는 새로운 학문의 장을 연 선구적인 것으로써 어린이들의 그림을 고찰 대상으로 삼은 것이었다. 알 슐러와 하트 위크는 보라색을 ‘침체된 우울한 기분이나 체험을 가진 불행한 아이’라 일컬었고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로르샤흐’는 보라색이 ‘정서 불안을 가져오는 몸의 기능 저하’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반면, 일본의 색채 심리학자인 ‘스에나가 타미오’는 보라색이 몸과 마음의 조화를 원할 때 끌리게 되는 색이며, 심신이 피로할 때 무의식적으로 찾게 되므로 ‘치유의 색’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픈 시기에는 유난히 보라색을 가까이 하는 경우를 볼 수 있으며, 특히 몸이 허약하거나 병약한 아이들이 보라색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분석에 다른 해석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인상파 화가들의 보라색 사랑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스에나가 타미오 박사의 색채 심리 교실에 참가했던 한 초등학생의 그림에서 얻을 수 있다. 학교 폭력에 시달렸던 아이는 파란 바다에 빨갛게 떠오르는 태양을 그리며 태양의 주변 하늘과 바다를 온통 보라색으로 칠했다고 한다.

감정의 앙양과 침체, 상승과 하강을 한 그림에서 고스란히 표현한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인상파 화가들의 보라색 사용 역시, 두 가지의 극단 감정이 오가며 때론 타협하고 때론 충돌하는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한 것이리라. 물론, 그 이유는 기성 화단에 반발하며 혁신적인 화풍을 창조한 본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겠지만.

그럼, 다음 시간에는 19세기 말에 이뤄진 보라색 염료의 발명으로 일어난 사회 현상에 대해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어느덧 12월이 코앞이다. 모두들 조금만 더 참으면 곧 겨울 방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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