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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의 인문학] 18세의 한 영국 화학도가 발명한 보라색 염료 영국 왕실의 장례 색상 바꾸며 열풍 일으켜석탄에서 추출한 화합물로 탄생한 연보라색 ‘모베인’ 당초엔 말라리아 치료제인 키니네 대용품으로 연구돼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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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2.26  07: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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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설명. 1926년생으로 올해 96세인 엘리자베스 2세는 26살인 1952년에 영국 여왕으로 즉위해 올해 70년 주년을 맞이했다. 자신의 고조 할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의 최장수 재임 기간을 이미 6년이나 넘긴 엘리자베스 여왕도 자신의 고조 할머니처럼 보라색 드레스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이미지 출처: 구글)

 어느덧 코로나 3년 차가 시작됐다. 올해는 지긋지긋한 코로나의 악몽을 떨쳐내고 모두 마스크 없이 마음껏 웃고 떠들며 식사하고 여행할 수 있기를 조심스레 기원해 본다. 그럼, 지난 학기에 이어 보라색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후, 갈색으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이전에 설명한 바와 같이 동양에서는 ‘치자’라는 식물에서 보라색 염료를 쉽게 얻을 수 있었던 반면, 서양에서는 달팽이 이외에 보라색 염료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딱히 없었다. 이에 따라 보라색 염료가 믿을 수 없이 비쌌던 서구에서는 과학이 급속히 발전하자 보라색 합성염료에 대한 발명이 숙명적으로 뒤따라왔다.

그리고 1856년, 오랜 세월 서양에서 고대하던 보라색 합성염료가 세계 최초로 탄생했다. 당시, 불과 18세로 영국 왕립화학대학의 학장 조수였던 윌리엄 헨리 퍼킨은 학장으로부터 석탄을 뜨거운 공기에서 건조시킬 때 발생하는 ‘타르’의 추출물 가운데에서 말라리아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과제를 받게 된다. 태고 시절의 식물이 지각 속에 퇴적돼 약 2억 년의 세월 동안 열과 압력을 받아 탄생한 석탄은 사실, 물, 메탄,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에틸렌, 황화수소, 페놀, 암모니아, 황, 벤젠, 툴로엔, 나프탈렌 등 대단히 다양한 성분들이 집약적으로 함유한 작은 화학 공장이나 다름없다.

비록 유럽 변방에 위치해 지정학적으로는 매우 불리한 위치에 있었던 국가가 영국이었지만 자연의 크나큰 혜택을 입은 바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풍부한 노천 탄광의 존재였다. 말 그대로 땅 위에까지 석탄이 가득 쌓여 있어 삽으로 땅을 파기만 해도 석탄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영국이었던 셈이다. 그런 영국에서는 석탄을 뜨거운 공기에서 건조시키면 발생하는 가스를 이용해 거리의 가로등을 밝히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타르’라는 물질이 대량으로 발생하자 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방안들이 연구되던 차였다. 마침, 아프리카 열대 지방으로 식민지를 넓혀가던 대영 제국은 풍토병인 말라리아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는데 ‘타르’에서 말라리아 치료제를 뽑아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과제가 퍼킨에게 당도한 것이다. 물론, 말라리아 치료제로는 키나나무의 껍질로 만든 ‘키니네’라는 의약품이 있었지만 제조 원가가 상당히 비쌌기에 이에 대한 대체재가 필요했다.

키니네 대체재의 발명을 부탁받은 퍼킨은 부모님이 살던 런던의 아파트에서 실험을 지속했다. 하지만 아무리 실험을 되풀이해도 키니네의 대체재를 발견하는 데는 실패했다. 결국, 마지막 실험 단계에서 석탄 부유물인 아닐린을 크롬산과 섞어 봤는데 플라스크에서 아닐린을 제거하자 특이한 색의 원액 물질이 나타났다. 이를 눈여겨 본 퍼킨은 천 조각을 액체에 담가보았고 천은 곧 자주색으로 염색되었다. 보라색 염료의 가치를 너무나 잘 알고 있던 퍼킨은 처음에 자신의 발명품을 ‘티리언 퍼플’이라고 명명했다가 다시 연보라색 야생화인 ‘모브’에 아닐린을 결합한 ‘모베인(mauveine)’이라는 이름으로 확정지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857년, 퍼킨은 보라색 합성염료인 ‘모베인’에 대한 특허를 냈으며 다시 1년 뒤, 퍼킨의 ‘모베인’은 대량생산에 돌입했다. ‘모베인’은 값싸고 빛이 쉬이 바래지 않는 최고의 보라색 합성염료였다. 자연히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모베인’은 눈 깜짝할 사이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당시의 한 잡지는 이러한 광풍을 ‘모브 홍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영국 왕실은 보라색 광풍에 박차를 가했다. 1861년,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앨버트 공이 사망하자 빅토리아 여왕이 보라색 상복을 입고 나타난 것이다. 이에 그녀의 시종들과 신하들은 보라색 옷을 구하느라고 야단법석을 떨었고 이후, 보라색은 영국 왕실의 장례식 옷 색깔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서 잠깐 빅토리아 여왕과 그의 남편, 앨버트 공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빛나는 대영제국의 시대를 연 이가 엘리자베스 여왕이라면 그 절정을 이끌었던 이가 바로 빅토리아 여왕이기 때문이다. 재임 기간만 64년으로 영국은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최장을 기록한 빅토리아 여왕은 진정한 의미에서 ‘해가 지지 않은 영국’이 탄생한 시대의 인물이었다. 과학과 문화에서 영국이 가장 빛나는 시기의 주인공이기도 했지만 정치사적으로 빅토리아 여왕의 존재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시 되고 있는 1인 1투표의 대의 민주주의 개혁 법안이 실질적으로 정착된 시대의 산증인인 까닭에서다. 이 개혁 법안으로 인해 잉글랜드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 및 아일랜드에서 모든 남성들은 재산의 유무,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동등한 선거권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영국 여성들이 20세기 초에 참정권을 지니기까지는 다시 40여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는 1페니 우표 시스템과 함께, 전보, 전화, 증기 기관차의 등장으로 지구촌의 시간적, 공간적 장벽이 허물어지던 시기이기도 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이론으로 평가 받는 다윈의 진화론도 빅토리아 여왕 시기에 등장했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빅토리아 여왕 재임 중에 절정에 달했던 보라색 이야기를 마저 한 뒤, 20세기의 보라색으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이제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운이 찰 대로 찬 모양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그 기운이 내리막길을 걷는 것일 뿐. 모두들 마지막까지 방심의 끈을 놓지 말고 건강을 잘 챙기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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