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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의 인문학] 20파운드 지폐 장식한 영국의 국민화가, 터너 대표작엔 어김없이 캔버스 압도한 갈색 선보여트라팔가 해전 이후 해체되기 위해 귀환한 테메레르 호에서부터 노예선, 콘스탄티노플의 화재 등 화폭을 뒤덮은 갈색으로 채색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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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5.07  08: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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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근대 서양예술사 가운데 독일이 음악, 프랑스가 그림 분야에서 혁혁한 발자취를 남겼다면 영국은 어느 부문에서 크게 기여했을까요?
답: 문학입니다.

   
▲ 그림 설명. 그림은 터너가 말년에 그린 것으로 알려진 ‘콘스탄티노플의 화재’이다. 한두 가지의 색만으로 화면을 구성한 그의 시도는 당시에 매우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져 결국 그가 외부와의 교류를 거부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됐다. 릴 미술관 소재. 참고로 릴 미술관은 프랑스의 북부에 있으며 벨기에와의 접경 지역에 있는데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미술관의 하나로 루브르 박물관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독일이 18세기 이후의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바흐와 헨델, 슈베르트와 베버, 브람스와 바그너를 배출했다면 프랑스는 근대 회화에서 다비드, 들라크루아, 마네, 모네, 르누아르, 고갱 등과 같은 장인들을 배출한 미술의 고향이다. 하지만, 영국의 경우는 이상하리만치 음악과 회화에서 대가를 배출하지 못했다. 대신, 영국은 세익스피어로 대변되는 문학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문학가들을 배출하는 데 성공했다. 더불어 세익스피어의 후배로 거론되는 명사들로는 찰스 디킨스, 버지니아 울프, 바이런, 브론테 자매, 디포, 예이츠, 오스틴을 줄줄이 꼽아볼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 강국의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가 그 명맥을 훌륭하게 유지하고 있고.

각설하고, 그런 이야기 강국 영국에서 드물게 화가로 명성을 떨친 이가 바로 영국의 국민화가인 윌리엄 터너이다. 18세기 말 이발사이자 가발 제작자였던 아버지와 정신병 환자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서 탁월한 재능을 선보였다. 터너는 자신이 유년 시절을 보낸 시골의 풍경을 자주 스케치하곤 했는데 터너의 아버지는 아들의 그림들을 자신의 가게에서 팔기도 했다.

이후, 재능을 인정받아 영국 왕립미술원에서 수학한 그는 유럽으로 건너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그림을 공부했으며 자신의 평생 역작이 된 ‘해체를 위해 마지막 정박지로 예인되는 전함 테메레르’로 마침내 국민화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참고로 이 작품은 ‘BBC 라디오 4’의 여론 조사에서 영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으로 선정되기도 한 작품이기도 하다. 굳이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김홍도의 ‘씨름’에 해당하는 그림인 셈이다. 그렇게 국민화가의 반열에 올랐던 터너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76세에 생을 마감한 후, 트라팔가 해전에서 나폴레옹을 격파한 넬슨 제독,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 등이 묻힌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된다. 덧붙이자면 터너는 지난 2016년에 590명의 영국 예술인들 가운데 단 한 명으로 선정되며 20파운드의 지폐 모델로 선정돼 이제는 영국인들의 지갑 속에서 국민적인 사랑을 듬뿍받고 있다.

그렇게 그에게 국민화가의 길을 터준 ‘해체를 위해 마지막 정박지로 예인되는 전함 테메레르’에서 터너는 화폭 전반을 갈색으로 뒤덮은 가운데 자신의 일을 영웅적으로 마감한 뒤, 고국으로 귀환한 테메레르 호의 비장한 최후를 감동적으로 웅장하게 표현했다. 덧붙이자면 트라팔가 해전은 나폴레옹의 영국 침공을 완벽하게 무너뜨린 해전으로서 영국이 유럽에서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쟁취한 해전이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트라팔가 해전에서 맹활약한 테메레르 전함이 왼편에 그려져 있고, 그 앞에는 당대 영국의 최신기술을 보여주는 작은 증기선이 거대한 군함을 인양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 산업혁명이 창시자였던 영국의 자존심을 한껏 드높이고 있다.

이와 함께 2년 뒤에 내놓은 ‘노예선’ 역시, 영국을 위시해 유럽과 미국에서 횡행하던 노예 무역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에서 일침을 가한 작품으로 성한 하늘과 파도 속에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는 이들을 바다에 던지는 문명국의 잔인함을 고스란히 갈색 물감에 실어 고발하고 있다. 노예선의 참극은 1783년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었으며 1839년에 출판된 토마스 클락슨의 책, 「노예 거래 폐지의 역사」에서 그 참상이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비록 영국에서는 노예 거래가 1807년에 공식적으로 금지됐지만 그림이 발표된 1840년에도 노예 시장은 여전히 성행했으며, 그 행태는 과거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그의 갈색 사랑을 볼 수 있는 대표작은 바로 ‘콘스탄티노플의 화재’이다. 1453년에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인 콘스탄티노플의 함락 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 그림은 화폭 전반에 걸쳐 단 하나의 색인 갈색만을 사용한 작품으로 갈색 역사화의 끝판을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작품에서 묘사된 대상들은 터너가 젊은 시절에 보여주던 명료하고 이성적인 데생에서 벗어나 있으며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흐트러져 있어, 말년에 추상에 가까운 작품에 집착했던 그의 회화사를 짐작하게 할 수 있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갈색을 사용한 한국의 화가로 이야기를 바꿔보도록 하겠다. 어느덧 5월 중순이 코앞이다. 1년 중 최고의 계절인지라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도록 현재를 충실하게 즐기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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