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교양
[색깔의 인문학]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청빈 위해 갈색 수도복 착용 나치는 갈색당으로 불리며 갈색 유니품으로 집권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2.08.27  09:04:3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가장 먼저 제복에 갈색 도입한 나라는 19세기 영국군
영국에서 탄생한 보이스카우트와 걸스카우트 옷도 갈색

   
▲ 독일 베를린 소재 역사 박물관에 있는 나치의 각종 유니폼들. 대부분의 색깔이 갈색임을 알아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커먼스)

어느덧 2022년 가을학기가 시작됐다. 캠퍼스는 빠르게 활기를 되찾고 있고 코로나는 이제 우리 곁에서 함께 생활하는 삶의 동반자가 됐다는 느낌이다. 그럼, 이번 호에는 지난 학기에 끝내지 못한 갈색 이야기를 마저 한 다음, 은색과 금색으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밝으면서 물이 잘 빠지지 않는 섬유 염료는 캔버스용 염료처럼 다루기 어렵고 비싼 탓에 부와 권력이 독점했다. 반면, 염료도 풍부하고 색이 잘 바래지 않는 갈색은 가난한 이들의 전유물이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하지만, 색에 있어서도 유전원색, 무전갈색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가운데 갈색 의상에 ‘청빈’이라는 또 하나의 상징을 곁들인 종교단체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그것이었다.

‘프란체스코’ 수도회란 성 프란체스코에 의해 1209년에 창설된 수도회이다.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승인을 얻어 복음을 받들고 청빈 정신을 주창하며 탁발 수도회로 출발한 수도회는 1세기 만에 놀라운 성장을 거듭하며 1300년에는 회원이 4만여 명에 이르렀다. 성 프란체스코는 가난하고 비천하게 지낸 예수의 생활을 본받아 청빈한 생활을 강조했으며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을 위로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런, 프란체스코 수도승들의 수도복은 화려하고 위화감 드는 색들로 가득 찬 교회와 달리 갈색이었다. 말하자면 검소함과 더불어 자연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는 색으로서 갈색이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대표색이 된 것이다. 그런 까닭에 르네상스 시대를 처음으로 연 이탈리아 화가, 조토의 그림에는 갈색 수도복을 입고 새들에게 설교하는 프란체스코 성인이 지금껏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기호학자이며 미학자, 언어학자인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데뷔작 ‘장미의 이름’에도 주인공인 아드소가 프란체스코 수도회 출신의 현명한 수도사인 윌리엄을 따라 베네딕트회 수도원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을 추적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세계적으로 3000만부 이상이 판매되었으며 영화로도 개봉돼 흥행에서도 대성공을 거둔 바 있는 ‘장미의 이름’에서는 윌리엄 수사 역에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로 유명한 영국 배우 숀 코너리가 나와 갈색 옷을 입은 프란체스코 수도사로서 강렬한 인상을 안겨준다.

한편, 민간으로 시각을 돌리면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북부의 브라우니 요정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브라우니 요정은 갈색 곱슬머리에 갈색 망토 차림으로 집의 다락이나 구멍 같은 곳에 숨어 지내다 밤이 되면 조그만 음식 선물을 받고 집안을 깨끗이 청소해 주는 착한 요정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슬라브의 요정도 브라우니와 비슷한 외양,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수도사와 요정의 옷 색깔로 널리 알려졌던 갈색은 영국군을 통해 처음으로 군복 색깔로 채택되면서 시장을 민에서 군으로 확장하기에 이른다. 영국군은 19세기 동안 대체로 에메랄드 그린이나 프러시안 블루처럼 파랗거나 초록색 계열의 군복을 바탕색으로 사용했다. 전투에서 전우를 찾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적의 기선을 제압하는 데도 한몫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들어, 눈에 잘 띄는 제복색은 비싼 대가를 치르기 시작했다. 식민지에서 커다란 패전을 잇달아 겪은 뒤 영국 육군은 개혁에 착수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가 ‘카키’와 위장 무늬의 도입이었다. 참고로 힌디어인 ‘카키’는 ‘흙빛의’라는 뜻으로 연한 갈색에 속하며 지금껏 군복 색깔의 대명사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그래서일까? 영국의 퇴역 군인이었던 로버트 포웰에 의해 창설된 보이스카우트와 걸스카우트 역시, 초기의 제복색이 갈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색이 의상에서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된 데는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이는 나치 돌격대의 제복 색깔 때문인데 이들은 곧 갈색 셔츠단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나치 돌격대가 갈색으로 제복 색깔을 정한 데에는 나름대로의 역사적인 이유가 있었다. 제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은 천문학적인 빚에 시달렸고 군인의 셔츠 역시, 가장 싼 갈색으로 염색해 채택했다. 이후, 갈색 셔츠는 독일 군대의 상징색이 됐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초 갈색 셔츠 차림의 돌격대가 맡았던 역할에는 반대자들에 의해 주도되는 집회의 방해와 나치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협박도 포함되어 있었다. 비단, 돌격대의 유니폼만 갈색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어린아이들을 세뇌시켜 만든 청소년 돌격대인 유겐트 역시, 갈색 제복을 착용했다. 나치가 갈색당으로 불리기도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나치가 1933년에 권력을 잡자 사람들은 이 사건을 ‘갈색 혁명’이라 불렀으며 뮌헨의 돌격대 본부는 ‘브라운 하우스’로 불렸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군을 떠나 민간에서 활약한 갈색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한림학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인기기사
1
[보도] 한림대 수시모집 경쟁률 5.09대 1로 ‘3년 만의 상승’
2
[보도] 2023학년도 국가장학금 신청, 재학생 1차 필수
3
[보도] 코앞으로 다가온 졸업, ‘유예 신청’ ‘심사료 납부’
4
[보도] 4차 동아리 대표자 회의로 ‘유종의 미’ 거둬
5
[보도] 겨울밤을 수놓은 하나의 목소리, ‘한림합창단 정기공연’
6
[보도] ‘창의적인 아이디어’ 캡스톤 경진대회 실시
7
[기획] 1년 만에 부활한 총학, 4곳서 연장투표도 진행돼…
8
[선거특집] “학우들의 선택에 부응하는 학생회가 되겠다”
9
[선거특집] “내년에는 어느 해보다 빛나는 대학을 만들겠다”-학생회 당선인 한눈에 모아보기 1
10
[선거특집] “내년에는 어느 해보다 빛나는 대학을 만들겠다”-학생회 당선인 한눈에 모아보기 2
신문사소개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4252 강원도 춘천시 한림대학길 1 캠퍼스라이프센터 9-308호 한림학보사
제보 및 문의 : news@hallym.ac.kr / 033-248-287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지혜수(간사)
Copyright © 2005 한림학보. All rights reserved. news@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