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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의 인문학] 신의 살과 피부는 금이라고 믿은 고대 이집트인들 신의 자손인 왕은 황금관에 넣고 황금가면 덮어이집트의 최고 유일신은 태양신인 ‘아톤’이며 햇살은 작은 손들 이뤄져 투탕카멘은 존재감 없다가 황금가면 덕에 일약 세계적 왕으로 등극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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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4.01  06:5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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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2년 출토돼 전세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투탕카멘 왕의 황금마스크. 투탕카멘 왕은 이집트 신왕국 18왕조의 12대 파라오로 10세에 즉위해 18세에 사망한 비운의 왕이다. 참고로 이집트 초기 왕조의 역사는 기원전 3150년에 시작됐으며 기원전 2686년에 고왕국을 시작으로 중왕국, 신왕국을 거쳐 말기 왕조까지 약 3000년 가량 지속됐다. 18왕조란 고왕국 시절부터 건립된 왕조에서부터 18번째 등장한 왕조이며 고대 이집트는 총 31개의 왕조가 약 3000년 간 존속해 한 왕조의 평균 지속 기간은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일전에 산출량이 적어 한때 금보다 은이 더 비쌌던 고대 이집트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이번에는 금이 은보다 싸기는 했어도 금을 숭배해온 나라 가운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집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이집트가 금 숭배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에서 미뤄 짐작하듯 지상 최대의 절대 권력을 자랑하던 파라오가 금으로 상징되는 태양의 아들인 까닭에서다.

이집트 상형문자에서의 금은 ‘금색 구슬’을 의미하는데 금은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성스럽고 파괴 불가능한 금속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한 금을 상징하는 신이 이른바 태양의 신 ‘아톤’이다. 아톤은 빛과 햇살을 관장하는 유일신으로서 성별이 없는 가운데 형상마저 없는 무형(無形)의 신이다. 이집트인들은 아톤의 태양에서 쏟아져 나온 햇살 끝에 아주 자그마한 손들이 달려있는 것으로 믿었다. 말하자면, 햇살 하나하나의 끝이 손처럼 부드럽게 피부를 어루만진다고 보았던 것. 따사로운 햇살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상상력이 감탄을 자아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아톤’이 이집트 태양신의 대명사라고는 하지만 명칭은 왕조별로 제각기 달랐다. 예를 들면, 또 다른 태양신인 ‘라’는 이집트 고대 왕국에서 ‘금으로 이뤄진 산’으로 통용되곤 했다. 더불어 파라오는 ‘금의 호루스’로 불렸고. 참고로 ‘호루스’는 태양의 신, ‘라’의 또다른 이름으로 ‘호루스’는 죽은 자와 부활의 신 ‘오시리스’와 창조의 여신이자 대신의 여신이며 오시리스의 여동생이자 부인인 ‘이시스’ 사이에서 태어난 신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집트인들이 신들의 피부와 살이 모두 금으로 돼 있으며 뼈는 은으로 구성돼 있다고 믿었다는 것. 이에 따라 이집트 벽화에 그려진 신들의 피부는 황금을 의미하는 노란색을 띠었으며 파라오들은 피라미드에 묻힐 때 황금 관 안에 안치되어야 비로소 태양의 신 ‘라’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여겨졌다. 같은 맥락에서 왕의 석관 위에 새겨진 그림에서는 출산과 가정의 신 ‘네프티스’가 ‘이시스’와 함께 금을 의미하는 상형문자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물론, 왕의 장례와 함께 온갖 성스러운 제사를 주관하던 이집트의 사제들은 금박의 은 마스크를 썼고. 그래서일까? 왕의 무덤인 피라미드는 신왕국 시대에 ‘금의 집’으로 불리곤 했다.

그런 금에 대한 이집트 숭배의 끝판왕이 바로 투탕카멘 왕의 황금가면이다. 1922년에 발굴돼 세계 고고학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투탕카멘 왕은 10세에 즉위해 불과 18세에 요절한 비운의 청년왕이었다. 기원전 1341년에 출생하고 기원전 1323년에 사망한 그는 이집트의 전통 종교를 거부하고 태양신 ‘아톤’을 유일신으로 추앙했던 아케나톤의 아들이자 사위로 투탕카멘은 그가 왕이 되면서 바꾼 이름이다. 투탕카멘은 미소년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는 고인의 형상을 그대로 본떠 만든다는 황금마스크를 통해 추정하고 있다. 투탕카멘은 당시 왕조에서 그러했듯이 이복 누나들과 두번에 걸친 결혼을 했으며 후사가 없어 재상이자 실력자였던 이가 그의 뒤를 이었다. 하지만 후에는 투캉카멘의 장군이었던 호렘헤브가 즉위했고 다시 그의 친구 람세스가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며 즉위한다. 말하자면 혼돈기에 태어난 가운데 단명한 비운의 왕이 투탕카멘이었던 것이다.

장구한 이집트의 역사에서 투탕카멘 왕은 사실상 존재감이 제로에 가까운 이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이집트 역사에서 존재감이 전혀 없었던 그였기에 세간의 관심과 기록 역시 거의 전무했으며 덕분에 1922년까지 무려 3천년 이상을 땅속에서 도굴되지 않은 채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 유명한 군주들의 무덤은 모조리 도굴됐기 때문이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투탕카멘 왕릉의 발굴에 얽힌 이야기들과 함께 투탕카멘 왕의 황금가면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겠다. 어느덧 4월이 시작됐다. 그럼, 모두들 중간고사 잘 치르고 재회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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