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학기는 봄학기와 다른 느낌을 준다고 한다. 봄은 시작, 신록과 어울려 상승의 이미지를, 가을은 마감, 갈빛과 함께 하강의 심상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을 사계로 나누어 봄은 청춘에 담아 두고, 가을은 중장년에 비유되어 그립고 아쉬운 것들에 대해 추억과 무상의 시간으로 두는 것도 같은 맥락이리라. 이에 어느 시인은 가을을 기도하기 좋을 때라 여겼고 또 다른 시인은 가을 낙엽을 허무한 망명 정부의 지폐로 바라보기도 했다. 이는 흐르는 시간 위에 놓인 인간은 그것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변하지 않은 것은 있을까, 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끼리 관계하지 않은 적이 있기는 한가? 올가을은 작년 가을과 같지 않기에 그 시간 위에 놓인 공간과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같을 리 없다.

그리고 시간은 자연, 인간과 함께 역사를 만들어 왔고 만들어 가고 있음을 우리는 학습과 경험으로도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올가을은 수없이 존재해온 시간상의 하나일 뿐이다. 게다가 가을 낙엽도 봄날 꽃을 피우게 하고 여름에 열매를 맺게 했던 잎의 초상들 중 하나로, 겨울에는 생명의 원천으로 변신하며 내년에는 봄 햇살도 부끄러울 신록으로 거듭날 것이기에 허무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생명이기에 계절 환경에 따라 좋은지 싫은지 정서적으로 감응하기 마련이다. 햇살이 과실과 익어가고 물 먹은 바람 대신 청량한 바람이 빗질하는 때를 맞이하면 누구나 좋게 느껴진다. 이러한 때에 회고와 허무에 침몰되는 것은 시간에 굴종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거스르는 감상의 역변이다.

인간은 불연속인 시간을 편의대로 춘추(春秋)로 이등분하였고 이후에 여름과 겨울을, 사계절을, 계절마다 석 달을, 또다시 달마다 두 절기를 추가하여 일 년을 완성했다. 이렇게 인류는 시간을 벗어날 수 없을지언정 그것을 지배하며 진보했다. 그리고 인간은 종교를 통해 관념적 상대성을, 물리학을 통해 우주적 상대성을 이끌어 시간관념을 바꾸면서 그것을 지배하여 왔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시든 풀과 낙엽에 젖어 가을을 상심할 것인가.

내 안에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또 다른 내가 있다고 한다. 하루하루 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그로 인해 성장하며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일신(日新)은 봄이라 더하고 가을이라 덜하지 않는다.

가을도 여름만큼 성장하고 새로워질 수 있다. 생각을 바꾸면 가능하다. 우리가 저무는 시간에 태워진 것이라 아니라 새로운 시간을 골라 탄 것이라면 이번 가을은 내 안에서 자라나는, 찬란히 빛날 별들의 시간이 될 것이다.

개강 초라 몸과 마음이 상류의 물살처럼 분주하겠지만, 가을 하늘이 닿은 교정에 누워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봉의산에 앉은 봉황을 바라보고 새역사를 이어가는 소양강의 도도한 흐름을 떠올렸으면 한다.

/김명준 국어국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