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으로 응급실의 의사가 부족해 환자 이송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전국에서 속출하고 있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안에 반발해 일어난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응급실 진료 제한 사례가 급증했다. 사직자들의 공백을 메꾸던 전문의들도 ‘번아웃(어떤 직무를 맡는 도중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느끼고 직무에서 오는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리는 증상의 통칭)’을 일으키며 응급실의 진료역량 감소로 이어졌다.

지난 2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한 축산시설 신축 공사 현장에서 70대 노동자 A씨가 자재를 운반하던 중 2층 높이의 계단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동료의 신고를 받고 약 10분 만에 현장에 출동한 소방서는 응급처치한 후 이송 가능한 응급실을 찾으려 인근 병원에 문의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계속된 문의 끝에 현장에서 50km 떨어진 대학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었으나 사고현장과 병원의 거리가 멀어 이동 시간에만 30분 정도 소요됐다고 알려졌다. A씨는 신고 접수되고 약 1시간 12분 뒤인 오전 9시 23분쯤 부산 고신대병원에 도착했다.

A씨는 등뼈 골절로 폐가 손상될 수 있어 긴급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해당 병원도 의료진이 부족해 수술이 불가한 상황이었다. 병원 측에서 수술이 가능한 다른 곳을 확인해보던 중 A씨는 사고 4시간여 만인 오후 12시 30분쯤 숨을 거뒀다.

지난 4일에는 충북 청주시에서 사고가 난 70대 오토바이 운전자가 병원 16곳으로부터 이송을 거부당한 끝에 강원도 원주의 상급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는 일이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오토바이 운전자 B씨가 청주시 오창읍의 한 도로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가던 중 옆 차선에서 차선 변경을 하던 46인승 전세 버스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B씨는 하반신에 다발성 골절을 입고 주요 장기가 손상되는 등 큰 부상을 입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는 충북대병원 등 청주권 4개 병원에 이송 가능 여부를 문의했지만 모두 이송이 거부됐다. 이후 사고 약 40분 만에 인근 2차 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기관 내 삽관과 수혈 등 응급 처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전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는 과정에서 또 12곳의 병원으로부터 이송이 거부됐다. 결국 B씨는 사고 4시간 30여 분 만에 약 120㎞ 떨어진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 도착했고, 현재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광주광역시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했다. 광주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5일 오전 7시 40분쯤 조선대학교 체육대학 인근 공원에 대학생 C씨가 쓰러져 있다는 환경미화원의 신고가 접수됐다. C씨는 당시 심정지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C씨는 전날 밤 동아리 해단식을 하며 다른 과 학생들과 음주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범죄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보고 관련 사안을 수사 중이다.

소방당국은 현장에서 C씨가 발견된 100~200m 거리에 있는 조선대학교병원 응급실에 심정지 환자 이송을 문의했지만 수용 불가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C씨는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다행히 조선대병원과 전남대병원은 거리가 가깝다. C씨는 현재 심정지 상태에서는 벗어났으나 위독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계속되는 응급실 대란에 정부도 나서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응급실을 방문해 “업무 강도가 높고 의료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는 필수 의료에 대해선 빠른 시일 내 적절한 보상체계가 마련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고위험·중증 필수 의료 인력들에 대한 지원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보상의 공정성 문제도 해결하겠다”며 의료 개혁 의지를 강조했다. 지난 2월 의료개혁 발표 이후 윤 대통령이 의료기관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9번째다.

지난 6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서울 한국기독교회관 로비에서 긴급 현안 관련 브리핑을 열고 의료 대란 사태를 해결할 여야의정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의료계와 정부뿐만 아니라 여야가 함께 논의 테이블에 앉자는 의미다. 한 대표는 “의대정원 증원에 합리적 대안을 모색하는 협의체를 뜻하는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국민들과 의료현장의 의견도 충분히 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일명 ‘응급실 뺑뺑이’ 사례를 담은 영상을 공개하며 윤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대표는 “국민들 보시라는 게 아니라 용산에서 좀 보라고 보여드린 것”이라며 “특히 복지부 장·차관, 국무총리가 봐야할 영상이다. 뉴스를 안 보는 거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또 추석 연휴 기간 동안 환자 급증할 것을 대비해 당직 병원을 늘리고 진찰료와 처치 수가를 올리는 방안을 대책으로 냈다. 그러나 “현장에서 당장 환자를 볼 의료진이 없는데, 수가 인상이 대책이 되느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