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투」, 「공노대」 등… 11월 중 전국적 총파업 결의

  지난 4월24일 김영삼 대통령이 소위 ‘신노사관계 구상’을 발표하며 ‘참여·협력적 관계’의 노사관계를 주장하고 나섰다. 또한 직속 산하기구로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이하 「노개위」)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노동법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노동자들이 지난 87년 이후 10년간 투쟁속에서 주장해 온 노동법 개정을 정부가 먼저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면 왜 정부는 이제서야 노동법 개정을 제기하고 나섰는가?

  우선 현재 노동법은 80년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국보위 입법회의에서 개악된 것으로, 전두환 전직대통령이 구속된 상황에서는 사실상 원천적으로 부정될 수밖에 없는 법조항이다. 그리고 88년 5만 명의 노동자들이 연세대에서 여의도까지 위력적인 행진을 하며 ‘노동악법 철폐’를 외친 것을 출발로 매년 하반기에 대규모 노동악법 철폐 투쟁을 전개해 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복수노조 금지조항을 부정한 「민주노총」의 건설, 무수한 활동가들의 구속에도 불구하고 거의 무력화 시킨 제3자개입 금지조항, 직권중재와 일방중재 속에서도 계속되는 파업과 이의 대표적인 「공노대」 공동투쟁 등 노동운동의 성장과 함께 노동악법은 사실상 무력화됐다.

  또 하나 OECD 가입이라는 외적 조건이 작용하고 있다. 김영삼 정부가 선진국 진입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선전하기 위해 OECD 가입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고, 이를 위해서는 후진적인 노동법 개정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대선을 앞두고 노사개혁을 임기내 성과로 남기고자 하는 정치적 요구 또한 내재되어 있다. 이렇듯 노동법 개정은 안팎의 압력과 요구로 더 이상의 진행이 불가능한 상태이므로 이를 자본의 주도로 개편해 새로운 질서를 확립할 필요성이 제기됐으며, 그것이 ‘노사관계 개혁’이라는 슬로건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노개위」의 ‘노동법 개정안’이라는 개악안은 기업별 노조를 고착화하고, 노동자의 기본적 생활 기반을 허물어 민주노조의 토대를 무너뜨리려는 자본중심의, 특히 독점재벌 중심의 질서이다.

  그러면 무엇이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가? 노동법 개정안을 둘러싼 쟁점들을 크게 분류해 보면 집단적 노사관계법과 개별적 노사관계법으로 나눌 수 있다. 집단적 노사관계법은 복수노조 금지, 3자개입 금지, 교사·공무원의 노동3권 금지, 정치활동 금지 등 노동자의 단결권과 사회정치적 지위 향상을 부정하는 내용으로 그동안 노동악법 철폐 투쟁의 주된 대상이 되어 왔다. 개별적 노사관계법은 매년 「임단투」를 통해 지속적으로 향상시켜 온 노동조건과 임금인상, 신분보장 등으로 현재 전면도입하려고 하는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변형시간근로제 등이다. 정부가 노동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섰을 때 집단적노사관계법을 개정하고 개별적 노사관계법을 개악하는 식의 바꿔치기가 예상됐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실체는 전면적인 개악과 다름 없었다. 공익대표의 안이라는 포장을 싸서 나온 안은 사용자에게 교섭거부권을 주는가 하면 교사·공무원의 단결권 조차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무엇보다도 개별적 노사관계법의 개악, 그중에서도 정리해고제의 도입은 얼마든지 노동자를 해고시킬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으로 보장해 놓으려는 것이다. 또 노동자들의 생계가 위협받는 시점에서 임금, 노동시간 등의 문제는 끊임없는 양보를 강요당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노동자의 생활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 것임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더욱이 10여년의 투쟁을 통해 성장해 온 노동운동에 기업별 노조체제가 강요되어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기반이 허물어짐으로써 전혀 힘을 쓸 수 없는 상태로 제도화된다면 아무리 정치활동을 보장한들 노동운동이 쇠퇴의 길을 걷게 되리라는 것은 확연한 사실이다.

  이렇기 때문에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불사하는 투쟁을 전개할 것임을 선포했고, 지난 10월2일 노동법 개정의 별다른 진전이 없다면 「노개위」에 불참하겠다고 발표했다. 노동계는 「민주노총」 산하 각 지역과 연맹, 단위노조까지 ‘노동법개정 투쟁본부’를 결성하고 있으며, 교육과 선전을 진행하면서 선진노동자와 열성조합원을 포괄하는 ‘노개투 실천단’ 구성을 통해 일대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공노대」 역시 상반기 공동투쟁으로 상승된 힘을 모아 10월4일 ‘투쟁본부 발대식’을 가졌으며 「민주노총」과 「공노대」는 19일 여의도에서 대규모 집회를 예정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11월10일 10만명의 노동자와 10만명의 빈민, 학생, 시민이 함께하는 전국노동자대회를 성사시키고 이 대회에서 대중적으로 총파업 투쟁을 결의한 후 15일경부터 총력투쟁에 돌입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그리고 전국 순회 문화공연을 통해 대중적 참여를 모아낼 예정이다. 동시에 「한국통신」 노조 하반기 대의원대회를 통해 「민주노총」 가입을 결의할 예정이고, 많은 사회단체들도 노동법 개악에 우려를 표시하며 대책위를 구성하는 등 공동대응에 나서고 있다. 노·자간 또는 노·정간의 대격돌이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96년 하반기 노동법 개정 투쟁을 둘러싼 정세는 그리 좋지만은 않다. 아직 대중적으로 노동법 개악 의도에 대한 인식의 확산이나 노동자 대중의 역량이 미진한 상황이다. 최근 김영삼 정부는 「한총련」에 대한 무단적인 탄압을 자행해 학생운동을 상당히 위축시켜 놓았으며 여기에 무장간첩 사건 또한 사회 분위기를 경색시키고 있다. 이 틈을 타 김영삼 정권은 안기부법, 집시법 개정과 안기부, 기무사 격상 등 군사독재 시절의 악법과 기구를 정비, 강화하고 있고 경제위기설에 전쟁위기까지 조성하며 반개혁적 본질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올해 노동법 개정투쟁은 반개혁적인 세력에 맞서는 유일한 돌파구이기도 하다. 노동자는 「민주노총」 건설과 상반기 「공노대」 투쟁에서 볼 수 있듯이 대중적 저력이 있다. 이제 노동자, 빈민, 학생, 시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 전국민적인 투쟁으로 현 정세를 돌파해야 할 것이다.

/ 임선희(전국노동운동단체연합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