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부부문제를 다루는 TV 프로그램인 ‘사랑과 전쟁’을 봤다. 여느 다른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상담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 남편의 태도가 아주 재미있었다. 부인이 남편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었는데(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리 어려운 요구도 아니었다.) 남편은 못 들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지기 싫어서라도 그 요구는 못 들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 요구를 들어주면 아내에게 지는 것 같아 싫다는 것이다. 그 요구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고 아내에게 지기 싫은 마음에, 어떻게든 아내를 이겨보려는 마음에 그런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상담이 끝난 후 남편은 어느 명상 센터에서 지도자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서 나타난 것은 한번도 이겨볼 수 없었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이 남편은 그런 생각과 이미지들이 떠오르자 괴로웠는지 자리를 뜨고 담배를 피워댔다. 이 남편은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아버지에게 번번이 의견이 묵살당하고 혼나기만 하였다. 아버지에게 수용을 받아본 경험이 없었다. 그런 아버지를 이겨보려고 많은 시도를 해봤지만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와 의견이 부딪히고 싸우게 되면 양보할 수도 있고 들어줄 수도 있는데 이기고자 하는 마음에 고집을 피우고 화를 내게 됐다.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밑바닥에 남아있었고 그 때문에 다른 사람과 인간관계를 할 때도 이기고 지는 것에 민감해져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부인도 문제가 있었지만 남편의 이런 태도가 부부관계에서도 나타나서 결국 부부가 이혼을 생각하는 단계까지 가게 된 것이다. 이 남편은 아내의 요구를 그 자체로 수용하지 못하고 자신의 문제 때문에 부인의 요구를 거절한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문제 때문에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왜곡하여 받아들이고 나아가서는 마음속으로 미워하고 거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은 자기 자신만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과 사람을 바라본다. 그래서 빨간색 안경을 쓰고 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빨간색으로 본다. 자기 마음속에 사랑이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스럽게 본다. 그러나 미움이 많은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행동이 다 밉게 보인다. 사람이 색안경을 쓰지 않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을 내 자신을 돌아보며, 또는 상담을 하며 뼈저리게 느낀다. 이런 색안경을 끼지 않고 밝은 눈으로 세상과 사람을 보면 그 자체로 있는 그대로 보게 되고 거기에 어떤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지 않고도 사람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런 색안경을 벗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살아온 긴 세월동안 만들어진 것이기에 그것을 깨뜨리고 벗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번 노력해보자.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 그 사람이 새롭게 당신에게 다가올 것이다.

/ 최명식(학생생활상담센터 전임상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