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한국에서 석사를 마치고 1988년 말부터 1997년 초까지 8년이 넘는 기간 동안 프랑스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했다. 초기에는 어학 코스 1년의 기간과 박사 준비과정에 해당하는 2년간의 심화연구과정(D. E. A)을 뽀와띠에(Poitiers)라는 지방의 대학도시에서 이수했으며 이후의 5년여 기간동안 본격적인 박사 과정을 빠리의 소르본느(빠리 4대학) 대학에서 이수했다. 따라서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본 프랑스의 지방 대학과 빠리 대학을 비교하면서 프랑스의 대학 제도의 특성을 생각해 보려 한다.

  프랑스의 오늘날의 초·중등(중고등학교), 고등(대학 이상) 교육의 이념은 프랑스 혁명 때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행정 조직은 나폴레옹 때 정비된 중앙 집권적 피라미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각 교육 과정을 담당하는 관리들은 교육부 장관이 임명하며 같은 방법론과 프로그램을 사용하도록 규제된다. 그러나 1968년 이후의 교육 개혁에서는 고등교육 기관에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일부 사립학교를 제외하고 모든 교육은 무상으로 행해진다. 교육 예산은 국가 예산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으며 교육 재정 적자에도 불구하고 대학까지의 무상교육이 이제까지 커다란 도전을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기억된다. 필자가 다니던 시절 기성회비 명목으로 1년에 약 10만원 정도를 냈었는데 지금은 약간 인상되었다고 한다. 정치가 우파적 성향으로 기울 때면 대학 등록금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곤 하지만 이것은 기본적으로 평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거센 반발에 부딪쳐 한 번도 실현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

  프랑스는 인구 5천9백만의 나라로서 남한보다 약간 많고 남북한을 합친 것보다는 약간 적은 인구이므로 우리와 몇 가지 면에서 비교할 점이 있을 듯하다. 지금의 프랑스의 종합대학(Universite)들은 1968년 이후의 개정된 고등교육법에 의해 이전의 산재하던 단과대학들을 합쳐 대중 교육 기관으로 개혁한 것이다. 그러나 종합대학이라는 것도 우리의 개념과는 다르다. 학비가 무료이니 대학의 멋진 캠퍼스같은 것은 기대하기 어렵고 대부분 도시 중심에서 다른 건물들과 섞여 있는 작은 공간만을 소유하고 있다. 지방에는 이과대학의 경우 외진 곳의 넓은 공간에 지어진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중심가에 있는 문과대학들에는 캠퍼스가 없다. 그리고 하나의 대학이 종종 문과계열이나 이공계로만 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프랑스 전국에 80여개의 종합대학(빠리에는 13개)이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우리 나라와 같은 의미의 종합대학으로 환산하면 그 3분의1 정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가령 빠리의 13개 대학에서 1, 3, 4, 10 대학 등은 문과대학이고 2, 5, 6, 7 대학 등은 이과대학이다. 지방 대학들도 마찬가지로 되어 있다. 종합대학 이외에는 기술학교와 예능계학교 및 전문학교들을 포함하는 다양한 고등교육 기관이 있는데 이러한 과정에 있는 학생 수는 1백70만 정도로 추산된다.

  매년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를 거쳐 종합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수는 20여만명 정도이며, 바칼로레아에 합격하면 프랑스의 어느 대학이든 입학할 자격이 주어진다. 이 시험에서 매년 10만여명 정도가 탈락한다. 이들의 미래는 사실 기술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보다 더 불리해 국가에서는 이들을 위한 다양한 보완책을 강구하고 있다. 바칼로레아를 준비하지 않는 고등학생들은 처음부터 원하는 학교의 특성에 맞는 공부를 한 후 기술학교 등 원하는 학교에 입학한다. 따라서 대학입학을 준비하는 문과와 이과의 고등학교에서 입시경쟁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특정 대학의 입학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서 합격과 불합격만을 가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보다는 훨씬 정도가 약하다고 할 것이다.

  그 외에 프랑스의 특이한 교육 형태로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엘리트 양성학교인 그랑제꼴(Grands ecoles)이다. 순수학문계열의 고등사범학교와 정치학교, 행정학교 및 이공계학교로 세분되어 있는 그랑제꼴들은 빠리에 각각 하나씩 그리고 지방의 주요한 도시에 몇 개가 있는데 이 학교들은 유명한 프랑스의 엘리트들을 배출한 특수 기관으로서 프랑스가 가진 평등한 대학 교육의 이념과는 일면 상반되는 제도라고 할 수 있겠다. 이 학교들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3년을 졸업한 후 이뽀까뉴(Hypokagne)라 불리는 2년간의 입시준비반에서 더 공부를 해야 한다. 이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반수 정도가 합격한다고 들었다. 이들은 극소수의 우수사립고등학교 출신들이 대부분이어서 하층계급으로서는 애초에 접근하기 어려운 코스를 밟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에 입시경쟁이 있다면 그것은 이 소수의 우수한 학생들 사이에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준비반에서의 2년 과정을 인정받아 3년간의 그랑제꼴을 마치면 다른 대학과 달리 석사자격을 받는다. 작고한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엘리트 학교의 존재를 거세게 비판하면서 특권층을 재생산하는 제도라고 못박은 적이 있다.

  이와 같이 평등 교육과 엘리트 교육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프랑스 대학의 특징이다. 물론 비율로 따지자면 일반고등교육기관과 엘리트 학교는 98 대 2 정도로서 후자는 극소수에 해당하나 엘리트들의 사회적 영향력과 그들이 형성되는 과정을 감안할 때 특권층을 재생산하는 제도라는 비판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 좌파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특권을 이용하기보다는 사회의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지금의 조스팽 수상을 비롯해서 좌파의 유명한 정치가들이 5, 60세가 되어도 아파트 한 채 소유하지 못한 경우가 흔하다. 이들은 정치가라기보다는 일종의 소명의식으로 무장한 지식인들같다. 프랑스의 엘리트 학교가 이런 사람들만을 배출한다면 그것은 성공적인 제도일 것이다. 그러나 우파의 경우에는 지금의 시라크 대통령처럼 부패 스캔들에 연루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프랑스의 종합대학들은 엘리트 학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데 그것은 유럽의 많은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입학이 아니라 졸업에 엄격한 제한을 두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프랑스 대학의 1학년 말에 2학년으로 올라가는 학생수는 50%를 넘지 못한다. 2학년 말에는 30% 이하만이 남아 있다. 이런 방식으로 계속 선택과 도태가 계속되면서 3년간(프랑스 대학은 3년제이다)의 대학 생활을 한 번의 유급도 없이 마치는 학생은 매우 소수에 해당하는데 이들은 매년 정규 수업의 까다로운 요구에 힘겨운 노력으로 응한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한두번의 유급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본 바로는 한 학년에 2년을 넘기지는 않는다. 그 정도라면 남아서 계속 공부할 능력이 안된다고 스스로 판단해 일찌감치 다른 길을 찾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대학을 마치면 그 곳 대학의 3학년에 편입 자격을 주는데 이렇게 들어간 후 통과하지 못해 6년을 유급한 한국 학생을 본 적이 있다. 주변의 프랑스 학생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프랑스 대학생들은 결정도 빨리 하고 안될 경우에는 포기도 빠른 것 같다. 아니 죽기살기로 덤벼드는 특별한 인생의 목적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불신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중도에 그만둔다고 해서 그동안 다닌 것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는 대학 졸업보다 바칼로레아(대학입시자격증)를 획득하고 나서 몇 년 더 공부했는가를 평가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Bac(바칼로레아)+1, Bac+2 와 같은 식으로 이력서에 기재한다. 바칼로레아를 가진 것 자체가 커다란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프랑스인들은 이것을 평생을 통해 자랑하고 다닌다. 우리 나라의 경우 대학을 다닌 것 자체보다는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고 세칭 일류대학 출신들이 평생 그 명칭에 특권의식을 갖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문화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소수의 사람들보다 다수의 사람들이 자부심을 갖는 사회가 좀 더 인간적인 것 같기는 하다.

  프랑스는 대학이 전국적으로 평준화된 만큼 바칼로레아만 있으면 어느 대학이든 갈 수 있다. 유능한 교수들도 전국에 퍼져 있기 때문에 석사 이상의 과정에서는 원하는 교수를 택해서 대학을 옮겨 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학생들 사이에서 빠리의 대학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교수자격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그러하다. 빠리에는 대학도 많고 교수진도 풍부해 교수자격시험을 준비하는 커리큘럼이 잘 짜여져 있다. 따라서 지방과 비교해 합격률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또한 그랑제꼴에는 박사 과정이 없기 때문에 거기 출신들이 소르본느 대학을 선호하고, 석사 이상의 경우 특히 외국 학생들이 이 대학의 과거의 명성 때문에 많이 입학하려 한다. 이처럼 많은 수의 학생들이 몰려, 프랑스의 대학은 원칙적으로 모든 학생들이 입학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르본느 대학은 입학 정원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성적과는 관계가 없으며 학부 과정에서는 선착순, 석사 이상에서는 교수의 역량에 맡기고 있다.

  이러한 빠리집중적 경향은 프랑스가 중앙집권적 국가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다. 본래 절대 왕조의 권력이 강했으며, 프랑스 혁명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 이후 프랑스의 행정, 교육, 정치는 빠리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968년의 개혁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으나 아직도 많은 핵심적인 부분에서 빠리가 유리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점이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프랑스의 교육 환경의 차이가 되는 듯 싶다. 프랑스에는 교수자격시험을 비롯해 각종 국가고시가 있는데 대학을 마친 많은 석사 이상의 학생들이 여기에 도전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프랑스 교육제도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대학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 우선 고등학교에서 5, 6년 정도 의무적으로 근무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고등학교 교육의 질을 높이면서 취업난도 해소한다. 또 임시교사들은 그 동안에 박사학위를 준비하거나 더 공부해서 좋은 업적을 내면 대학교수로 임명된다. 대학교수는 처음에 전임강사로 임명돼 약 2백만원에 못미치는 급여를 받는다. 또, 업적을 못내어 승진하지 못하면 평생을 그 자리에 머물러 있게 되며 이것은 승진의 모든 단계에서 적용된다. 여기에도 역시 대학생들처럼 선택과 도태의 원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프랑스 대학의 경쟁력은 바로 이런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대학생들의 생활에 대해 필자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간단히 언급하고 끝내려 한다. 필자가 가진 프랑스 대학생들의 첫 인상은 매우 가난하다는 것이다. 학비가 무료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일로 생각될 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사고방식을 알면 이해가 된다. 프랑스 대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거의가 집에서 독립한다. 집에서 생활비를 대주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한데 그 경우에도 집세 정도만을 보조해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생활비는 자신이 벌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보조를 못받는 경우 집에서 다니면서 안락하게 공부하는 것이 공부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휴학하고 생활비를 벌어 나중에 학교를 다니는 한이 있더라도 집에서 독립하려 한다. 그래서 필자가 아는 많은 대학생들이 매우 가난하고 항상 경제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것을 보았다.

  지방에 있을 때 어느 날인가는 한 친구가 좋은 집을 구했다고 파티를 한다고 해서 가보니 오래된 건물의 햇빛도 잘 안드는 지하의 작고 어두운 원룸이었고 바닥은 삐걱거리는 나무복도로 금방 내려앉을 것 같았다. 가격에 비해 잘 구했다는 뜻이었다. 그런 집은 한국의 가난한 유학생들도 기피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모여든 친구들은 모두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그 집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도와주었다. 나중에 가보니 정말로 귀여운 비둘기집처럼 장식해 놓았다. 가구는 동네에서 버려진 것들을 주워다 쓰면서 오늘 횡재했다는 식으로 즐거워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이니 여학생들은 화장이나 좋은 옷차림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가난한 속에서도 매우 활기차고 즐겁게 생활하며 무엇보다도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독립과 자유를 충분히 만끽하는 듯했다.

▶다음호(274호)에서는 영국의 대학편이 이어집니다.

/ 황수영(서울대 철학연구소 상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