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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은 1386년에 설립된 하이델베르크 대학이고, 라이프찌히 대학(1409년 설립) 등 5백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대학들도 많이 있다. 오늘날 독일에는 대학이 모두 3백15개 있는데, 이 가운데 종합대학은 98개이고, 3년제 전문대학이
1백14개, 미술 및 음악대학이 43개, 행정대학이 26개, 신한대학이 19개, 교육대학이 14개이다. 독일의 대학은 크게 보아 다음 네가지
정도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독일의 대학은 기본적으로 공교육·무상교육 체제이다. 종합대학은 모두 국공립이며, 1도시 1대학 원칙으로 커다란 도시인
경우에도 종합대학은 하나가 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서울에는 국립 세종대학 하나가 있을 뿐이며, 그 대학명칭은 세종대학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있다는 의미에서 서울대학으로 불린다. 부산 동아대학 같은 경우, 그저 부산대학이라고 불린다.
또한, ‘공교육’ 답게 입학금과 등록금이 없다. 학생들이 부담해야 하는 것은 의무적으로 들게 되어있는 ‘의료보험 비용’과
약간의 ‘학생회비’이다. 학생들은 단지 생활비와 용돈만 부담하면 된다. 그 뿐 아니라 독일의 대학생들은 연방교육촉진법에 의거, 3분의1∼4분의1
정도가 생활비 수준의 장학금을 받는다. 이 장학금도 절반은 무상으로 받고, 나머지 절반은 나중에 졸업하여 취직한 후 소득이 생길 때, 장기할부로
상환하게 되어 있다. 물론 가정형편이 좋아 부모가 충분히 학비(생활비)부담을 해 줄 수 있는 중·상위 소득계층 학생들에게는 그러한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 동서독 통일 이후 이러한 혜택을 받는 학생들의 비율은 구동독지역 대학생들의 경우 60%에 달하고, 구서독 지역의 대학생들은
20%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둘째, 대학입학 자격이 기본적으로 인문계 고등학교를 정상적으로 졸업한 학생들이면 대부분에게 주어지며, 가고 싶은 학교를
지원하면 대부분 들어갈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실시되고 있는 ‘수능시험’과 마찬가지로 ‘대학에서 수학할 최소한의 능력’을 입증하는
국가자격시험(아비투어, 대학입학자격시험)을 통과하면 어느 대학이든 입학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다만, 학생들이 몰리고 인력수급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몇몇 전공분야들(의학, 생물학, 법학 등)에 대해서는 전국적으로 입학인원을 제한하고 있으며, 이 경우에도 신청한 순으로 대기자
명단에 들어가 추후에 입학할 수 있다.
셋째, 중세 이래 신학/철학부를 정점으로 하면서 그 산하에 여러 가지 전공영역들이 통합적으로 운영되어 온 점이다. 대학의
교육, 연구가 통합교과적으로 운영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은 전공의 분화가 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 될 수도 있으나, 긍정적으로 보면,
오늘날 우리나라 초·중·등 교육과 대학입시, 그리고 대학에서의 학부제, 복수전공제 등이 지향하고 있는 통합교과제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는 학생들의 대학진학 목적이나 대학에서의 공부방식 등에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 내었다. 특히 학생들이 좋은 일자리에 취직하기 위해
진학하지 않고 그야말로 공부를 하기 위해, 학문을 연마하기 위해 진학하는 풍조를 만들어 냈다.
독일의 교육체제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에 시험을 치러 공부 잘하는 학생은 인문계 중·고등학교로,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실업계
중·고등학교로 진학하도록 우열을 가른다. 실업계는 일종의 취직반으로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곧바로 취업하게 하고, 인문계 출신은
대학(종합대학)으로 진학한다. 그래서 너무 어린 나이에 능력과 적성을 평가받아 진로를 규정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대학진학이 우리나라처럼
취직을 위한 목적 혹은 ‘사람대접을 받기 위해’, 혹은 ‘남들이 가니까 덩달아 하는’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들은 대개 ‘공부하기 위해’ 진학한다. 공부하기 싫거나 취미가 없는 학생들은 취직을 한다. 이런 경향 때문에, 독일의
대학생들은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대개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주제중심으로’, 즉 어떤 특정한 학과소속에 연연하지 않고 공부하는 자세를
갖는다.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졸업논문을 쓰기 위해 대학에 다니는 방식으로 공부하고 대학생활을 하고 있으며, 제도도 그런 식으로 되어 있다.
졸업에 필요한 학점이라든가 필수과목의 수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복수전공을 의무화하고 있다. 강의도 3학년 수준부터는 강의가 아니라 세미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학생들은 대개 학점을 위해 수강하기 보다는, 이 과목 저 과목 자기의 관심, 자신의 논문주제와 상관된 과목들을
찾아다니며 수강한다. 또한 졸업하는데 걸리는 기간, 즉 논문을 작성하는데 걸리는 기간이 우리보다 훨씬 더 길다.
대학을 졸업하면 받는 학위는
‘디플롬’이라 하는데, 우리처럼 특별한 의미가 없는 학사가 아니라, 대학원을 졸업한 석사급의 학위로서 졸업후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자격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독일적 전통은 1945년 제2차세계대전에서 연합국에 의해 패망한 이후, 미국식 제도가 일정부분 도입되면서 미국식
제도나 미국식 독일 대학들, 그리고 미국의 학설을 역수입하는 경향에 의해 어느 정도 수정되었다. 가령, 북서부 지역에
위치한 빌레펠트 대학 같은 경우는 필수과목이나 학점취득 부담 및 시험이 많은 편이며, 전공분야도 세분화, 전문화되어 있어,
‘미국식 독일대학’이라는 평판을 듣는 대학으로 손꼽힌다.
넷째, 대학내의 의사결정 과정 뿐아니라 연방국가 수준의 대학정책 결정과정에 학생대표들이 참여하도록 제도화 되어 있다.
그 한가지 예를 들면, 독일연방의 ‘대학기본법’ 제9조에 의하면, 전국적인 차원에서 대학개혁을 위한 중앙위원회로서 “대학의 학사 및 시험규정
공동위원회”를 결성, 운영하도록 되어있는데, 이 위원회에는 9개 연방주에서 대표가 1명씩 파견되고, 대학에서 9명(정교수 5명, 조교수 2명,
학생 2명), 연방정부에서 1명, 경영자협회에서 1명, 노동조합에서 1명을 파견하게 되어 있다. 대학생대표는 대학총학생협회에서, 경영자대표는
경영자협회에서, 노조대표는 독일노동총연맹에서 파견한다.
▶다음호(275호)에는 영국의 대학편이 이어집니다.
/ 유팔무(사과·사회·교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