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렌로 2001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에서도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김훈은 현재 「한겨레신문」 사회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사건 현장의 소식을 생생하게 전해주면서 사건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기사를 주로 다룬다. 이 책은 소설가이자 언론인인 김훈이 「한국일보」, 「국민일보」, 「시사저널」 등의 여러 인쇄 매체에 기고해 온 시론을 묶어놓은 것이다.

  총 4부로 이뤄진 이 책의 1부와 2부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2년 초까지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구체적인 정칟사회·문화적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고, 3부와 4부에서는 문화적 소재들을 이용한 글로 김훈 문체의 매력을 한껏 표출하고 있다. 1부에서는 병역문제, 주한미군, 러브호텔, 구조개혁, 남북문제, 국회파행, 이영자 파동 등을 다루고 있고 2부에서는 언론개혁 파동, 정치부패, 신창원 사태, 동강댐 건설문제, 인권, 죽음의 일상화 등을 통해 ‘확증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3부에서는 도시의 일상 공간, 교통문제, 몸 등의 소재를 통해 실존적 삶의 부조화를 말하고 4부에서는 여성과 자연, 늙음, 삶의 현장, 돈의 의미 등을 통해 사람의 몸에 대한 존재감을 성찰하고자 한다.

  이 책의 제목인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는 책 속에 담겨있는 한 시론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시론은 아들의 군 입대를 두고 어떠한 사회적 영향력도 갖고 있지 않은 부모의 고통을 통해 우리사회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높으신 어른 자제들의 병역비리’ 문제를 비판하고 있다. 이 시론에서 군 입대를 앞둔 아들이 병역면제를 위해 자신의 평소 평발 증세를 내보이며 재심을 받고자 하는 모습을 꼬집는다. 이에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안타까워하면서 “병역은 남자로 태어난 국민의 가장 신성하고 가장 도덕적인 의무라고 말한들 이미 더럽혀지고 허물어진 신성 앞에서 그 말이 무슨 씨가 먹힐 것인갚라고 써 내린다. 그리고 글을 마무리하면서 “가서, 대통령보다도 국회의원보다도, 그리고 애국을 말하기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보다도 더 진실한 명장이 되어라”라고 말한다.

  또한 ‘이영자 다이어트 사건’을 소재로 한 시론 「도덕적인 분노에 대해」라는 글에서는 “개그우먼 이영자는 무슨 죽을 죄를 지었길래 저 지경이 되어서 쳐박혀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 여자는 어느 날 갑자기 날씬해진 몸매로 TV에 나와서 ‘운동을 해서 살을 뺐다’고 말했다. 이 알량하게도 정직한 사회에서, 이 대목이 이른바 ‘정직성’ 시비에 걸렸다”며 “나는 이영자에게 쏟아지는 이 사회의 도덕적 분노가 두렵다”고 토로한다. 이러한 시론에서 김훈은 드러내 보이지 않은 듯 하면서도 강하게 우리 사회에 얽혀있는 비리를 꼬집고 있다. 또한 시론 속에서는 김훈의 독특한 문체를 엿볼 수 있기도 하다. 그의 문체는 ‘김훈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특별한 성격을 드러내 보인다. 그의 글은 오랜 기자 생활에서 습득한 직관과 명석한 판단력을 갖추고 있되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기사체의 건조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책에서는 세태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뒤섞은 풍자와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 정치와 문화, 삶과 예술, 자연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또한 자신의 입장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동형동색에 딴지를 걸며 드러난 사건의 다른 이면을 들추고, 거대 개념에 대한 상투적 이해를 의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고는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을 한번쯤 돌아보게 만들어 준다.

/ 김정욱 기자 kjw0304@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