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에서 실시한 ‘불법체류자 자진신고제’에 참여하기 위해 긴 줄을 섰던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연출된 것은 30만 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신고제의 접수를 받은 곳이 서울의 단 네 곳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하루에 1천 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루를 꼬박 기다리다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그들이 긴긴 줄을 서가며 얻고 간 것은 ‘한국에서 1년 간 노동할 수 있는 권리’였다.

  지난 5월26일 끝난 이 신고제는 ‘자진신고제 기간 내에 신고를 한 이주노동자는 불법체류자라는 굴레를 벗을 수 있다’는 명목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추진했던 정부는 26만 여명이 이 기간동안 자진신고제에 참여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이주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정부와 싸우고 있는 시민단체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의 한 관계자는 “이러한 법적 제도는 불법체류라는 굴레를 벗어주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의도는 ‘이주노동자’들의 신상파악을 통해 좀더 효율적으로 이들을 ‘관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추진되고 있는 고용허가제를 위해 이러한 신상파악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다면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추진하는 ‘고용허가제’란 어떠한 것인가?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일할 권리를 쥐어준 법안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인간의 노동에 있어서의 ‘노동3권’을 무시하고 있으며 공장을 옮겨다닐, 선택할 권리조차 포함돼 있지 않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노동권’을 고용주에게 준 것이지 이주노동자에게 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이 이 제도의 문제점은 앞으로 들어오게 되는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며 현재 ‘자진신고제’를 통해 신상파악이 된 이주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은 단 1년뿐이란 사실이다.

  일반인들이 알고 있듯이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은 내국인이 꺼려하는 이른바 3D업종이다. 이미 내국인들은 꺼려하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을 이주노동자가 주로 맡고 있다. 이들은 알려져 있듯 ‘임금체불’, ‘산업재해’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며 고용주뿐만 아니라 ‘한국인 노동자’에게도 폭언과 물리적 폭력에 시달리며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원하는 것은 ‘임금을 인상해 달라’, ‘노동시간을 줄여달라’가 아니다. 단지 이들이 원하고 외치는 것은 ‘일하게 해달라’일 뿐이다.

  경기도에 위치한 ‘마석’은 가구단지로 유명한 곳이며, 이미 1천2백여명의 이주노동자들에게 있어서 삶의 터전이 되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은 곳, 그곳이 바로 마석이다. 하지만 이 곳에는 요즘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감이 팽팽히 돌고 있다. 바로 ‘불법체류자 추방’이라는 명목 하에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돌아다니며 이주노동자들에게 협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와 학생운동진영 일부에서는 이른바 ‘사수대’를 꾸려 공권력의 갑작스런 침탈을 대비하고 있다.

  빽빽하게 들어선 가구점을 뒤로하고 쓰러질 듯한 공장 건물이 곳곳에 눈에 띄었으며 이와 함께 이주노동자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코를 찌르는 악취와 각종 약품 냄새, 초여름 날씨와 더불어 공장 기계열로 인해 찌는 듯한 더위가 한번에 느껴졌지만 제대로 된 선풍기 하나 돌아가고 있지 않았다. ‘안전시설’을 이곳에서 운운하는 것은 일종의 사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나가던 이주노동자들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웃는 얼굴로 반기며 대답을 하다가도 고용주로 보이는 한국인들이 지나가면 기자들을 외면했다. 주위를 서성거리던중 상점에서 반찬거리를 사들고 나오던 한 여성이주노동자를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눴다.

  필리핀에서 온 그녀는 현재 신발공장에 다니고 있었으며 한 달에 60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그녀에게 “하루에 몇 시간 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오전 8시30분에 나갔다가 오후 7시에 일이 끝난다. 하지만 야근 있는 날은 10시까지도 한다”고 답했다. “야근을 하면 돈은 따로 받는갚라는 질문에는 웃으며 “그런 것은 없다”고 말했다.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냐”는 물음에는 “우리 고향에는 일할 곳이 없다. 난 아이 셋을 가진 엄마다”라고 답했다.

  오후 7시, 저녁 무렵이 되어 그 곳에서 하루종일 규찰을 다니던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관계자는 “낮에는 규찰을 다니고 저녁이 되면 선전전을 벌이며 서명을 받으러 다닌다”고 말했다. 이들은 ▲노동비자를 달라 ▲노동 3권을 보장해 달라 등의 요구가 적혀 있는 서명안을 들고 다니며 이주노동자에게 설명했고, 이주노동자들 역시 이에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며 음료수를 전하는 모습, 식사를 초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이 아닌 함께 일하고자 하는 ‘노동자’들 이었다. 이들 앞에서는 ‘자진신고제’, ‘고용허가제’가 ‘불법체류’보다 더 큰 ‘덫’이 될 것이다. 이들에게 놓인 ‘덫’을 없애고 너무나도 당연한 ‘노동자의 노동할 권리’의 보장이 시급하다.

/ 김정욱 기자 kjw0304@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