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카피가 인기를 끈다던가. 그렇게 어디로든 삶의 무게를 떠나고 싶어하는 요즘, 한 권의 책을 소개하고 싶다. 책에 관해서 라면 누구나 추구하는 경향과 선호 분야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는 만화를 제외 할 경우 소설에 집중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책은 무려 3백52페이지에 달하는 하나의 논문이다.

  이 책은 올해 4월30일에 초판이 발행된 따끈한 책이다. 그러나 내용은 따끈한 정도를 넘어서 이글거리는 열기를 지니고 있으며, 독자로 하여금 활발한 두뇌 마찰을 요구한다. 문학평론가이자 문학박사이자 국민대 문예창작대학원 교수인 김명인 교수가 1990년에 처음 쓴 논문이 8년의 기간동안 보완되고, 한층 깊이 연구되어 출판 된 것이다. 아마도 국문과 전공 교수님들 같으면 흥미를 가지고서 낮 더위 밤 더위 잊으시고 달려들 만한 내용의 책인 듯 하다. 그러나 일반인은 물론이고, 국문과 전공 학부생 정도의 수준만 되더라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냉면이나 먹으러 가자고 도망칠지 모른다. 하지만 제목 『김수영, 근대를 향한 모험』에서 보듯이, 이 책은 모더니즘 시대를 살아간 한 시인의 작품과 정신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다섯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중요한 내용은 김수영이 ‘근대’에 가지는 의의, 김수영의 삶, 시를 통한 김수영 정신의 궤적 정도로 압축 될 수 있다. “이 책은 김수영의 근대성 인식에 관한 연구로서 엄밀한 의미의 총체적 작가론은 아니다. 그것은 김수영의 생애와 문학의 전반을 남김없이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에서 그렇다… 하지만 이 책은 총체적 작가론을 지향한다… 통상의 작가론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러한 연구목차들에 따라 연구 대상을 평면적으로 나열하는 대신, ‘현대성의 인식’이라는 현재적 관심에 의해서 연구 대상에 대한 일정한 원근법을 적용한다는 점이다” ­서론 中­

  김명인 교수가 직접 말한 것처럼 이 논문은 김수영의 정신세계(현대성의 인식)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그를 설명하기 위해서 당시의 시대배경과 교류문인들, 생활 환경, 작품들을 차례로 지나친다. 그렇기 때문에 긴 논문임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며, 영상미가 있다. 해방 직후의 새로운 모더니즘의 등장과, 그것을 접한 연극과 시, 문학의 교류가 어떠했는지 보여주고 있으며, 이렇게 근대 시기를 비추던 렌즈는 김수영의 실제 삶의 행적으로 방향을 바꿔서 유년기부터의 성장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성장과정에 따른 김수영의 정신 세계를 면밀하게 짚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것은 역시, 작품 분석을 통해 김수영의 시 세계를 해석해 나가는 부분이다. 김수영이 스스로 말한 자신의 첫 번째 시와, 실제 발표된 첫 번째 시 등의 작은 논의부터 시작해 점차 깊어지는 이 논의는 김수영이 삶을 마치는 순간까지 얼마만큼 치열하게 시를 써 왔는지를 알려 준다. 이토록 밀접하게 한 인물을 파 들어가면서도, 끝까지 냉정함을 유지하며 필자는 김수영을 비평한다. 그 중에는 “어설픈 아류 모더니스트”라는 말로서 김수영의 초기 정신 세계를 비평한 것도 있으며, “지나치게 정신사적 접근에 의존하여… 인식론주의적 편향을 보인 것이다”라며 자신의 논문을 스스로 비평하기도 한다. 결말에 “김수영 모더니즘은 하나의 태도”라고 명명하는데, 이 말의 의미는 논문을 모두 읽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처럼 이 책은 김명인 교수의 냉정한 시각과 철저한 조사를 통해 이루어진 논문이다. 그러나 그 내용이 김수영의 정신세계 분석에 치중되어 있기 때문에, 김수영 이라는 시인의 확고한 신념과, 개인적 콤플렉스, 혁명의 의지, 자기 반성을 뜨겁게 감지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시를 좋아하는 지성인이라면 읽고서 만족을 느낄 수 있으며, 예술가의 치열한 정신투쟁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개인적 사족을 달자면, 살아있는 동안에는 어디로도 달아날 수가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 김원국(어문·국문·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