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암살로 인해 ‘민족반역자’로 지탄받아 온 안두희는 결국 지난 10월23일, 민족정기회복이라는 대의명분을 내건 어느 한 버스기사의 손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민족반역자’라는 꼬리표를 최후까지 달고 다닌 그는 길고 길었던 비통과 시련의, 한 많았던 인생을 마감했다. 민족정기구현의 사명을 가진 ‘정의봉’으로 말이다. 이 ‘민족반역자’가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될 무렵 우리나라는 전직 국방장관의 뇌물수수와 고위공직자 및 사회 지도층의 비리가 연이어 터지고 있었다. 이런 비리로 인해 현재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사건만 해도 40여건이 넘고, 그에 연루된 사람들만 해도 100여명이 넘는다. 차·도명계좌 알선행위로 금융실명제를 위반한 금융·경제계 비리, 주위환경 보호를 위해 마련된 경관(景觀) 심의의 비리, 교통환경 부담금 부과과정 등을 둘러싼 건설업계의 비리, 민생과 관련된 세무·병무·소방 관련 비리 등 우리를 놀라게 하는 사건들이 연일 신문지상에 쏟아져나오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시민의 진정한 발이 돼야 하는 시내버스가 운행노선을 놓고 뇌물을 주고받는 추태를 부리는 등 어디하나 깨끗한 데가 없을 정도이다. 지난 8월말 구성된 「국가기강확립실무협의회」의 역할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암세포 퍼지듯 사회 각계에 비리가 난무하는 것은 국가공직 사회의 기강이 해이해진데서 야기된 것이라고 본다.

  어느 나라나 그 나라의 ‘기강’은 수뇌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그가 이쪽저쪽의 얘기에 흔들리는 우유부단함과 그 나름대로의 자신 있는 정책들을 시행하지 못하는 모습은 국가기강이 해이해지는 한 요인이다. 현재 YS는 끊이지 않는 부정부패, 끝을 모르는 경제불황,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무장공비 침투까지…. 집권 이후 최고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극도로 혼란한 현 사회의 흐름 속에서 바로 눈앞에 벌어지는 문제들에 급급, 진정 중요한 근본문제를 지나쳐버릴까 불안하다. 지금 맞딱뜨린 극도의 경제위기로 당황한 그가 부르짖는 ‘경제우선정책’은 앞서의 부정부패 척결 없이는 무의미하다.

  ‘정의봉’, 물론 백범 암살의 진상규명 과업이 민족정기를 회복하는 일과 직결돼 있음을 부정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정의구현’을 위한 ‘정의봉’이 우선적으로 사용되어질 곳은 어디일까?

/ 조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