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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짱] 데치고 굽고 삶고… 글은 요리다
심훈 교수  |  shimh@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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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5.03.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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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아빠의 도전’이라는 모 방송사의 프로그램이 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이 프로는 한 가족의 가장이 해당 방송사에서 내준 과제를 일주일 안에 해결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를 테면, 크리넥스를 입으로만 불어 1분 동안 공중에 띄우거나, 곡예용 자전거를 이용해 간단한 장애물을 넘는 식의 그런 묘기들 말이다. 카메라가 일주일 동안 근접 촬영을 통해 담아내는 ‘아빠의 도전’은 거의 비슷한 포맷으로 진행된다. 처음에는 쩔쩔매는 아빠의 시도가 가족들의 실패 분석에 따라 업그레이드되면서, 방송사 스튜디오에서의 마지막 시도에 이르기까지. 물론 성공과 실패는 하늘의 뜻이지만.

  필자가 이 프로에서 인상 깊게 시청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아빠의 도전 과제 실패에 대한 가족들의 원인 분석이 그것이다. 나름대로 예리하고 정확해서, 진단을 받아들이는 아빠는 백이면 백 다 괄목성장하는 발전을 보인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글쓰기에 대한 요령을 아무리 잘 설명해줘도 결국 자신의 글쓰기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하는 학생에게는 ‘글짱 프로젝트’ 역시 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검을 쓰는 요령을 밤낮 되뇌어도 수련자 스스로가 자신의 실수를 고쳐 나가지 않는 한 득도에는 별 진전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어떻게 해서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또는 글쓰기에 있어 무엇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어떻게 인지할 수 있을까? 지난 학기의 ‘글짱 프로젝트’가 주로 글을 쓰는 테크닉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번 학기의 화두는 글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에서부터 출발하고자 한다. 사실 순서가 뒤바뀐 감이 없지 않으나, 지난 학기의 것들은 영화에 있어 인트로, 음식에 있어 에피타이저 정도로 생각해 달라는 말로 먼저 이해를 구하고 싶다.

  ■ 신선한 재료·요리 과정·장식의 3박자 설명할 때 비유하기 좋아하는 필자는 수업시간용으로 글쓰기를 무슨 작업에 비교할까 한동안 고민한 적이 있다. 여러 작업들이 물망에 올랐으나, 결국에 가서는 요리가 당첨됐다. 이유는 간단했다. 하나의 요리를 완성시키는 과정이 글쓰기가 이뤄지는 과정과 가장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위 말하는 요리짱이 되는 비결은 무엇일까? 비록 요리사는 아니지만, 감히 논하건대 우선 ‘신선한 재료’가 있어야 하고, ‘요리 과정’이 매끄러워야 하며, 만든 요리를 먹음직스럽게 내놓는 ‘장식’의 3박자가 잘 어우러지면 훌륭하지 않을까? 집에서 혼자 또는 가족과 먹을 경우라면, 재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게다. 라면에서부터 먹다 남은 찬밥, 김치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있는 것만으로도 식사를 해결할 수 있으니까. 엄밀히 말하면, 이는 음식이지 결코 요리는 아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과 경연하는 경우, 공공으로 내야 하는 요리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당연히 평범한 재료로는 끝발이 잘 먹히지 않는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사람에게 보이거나, 평가 받아야 하는 글이라면 재료가 뛰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가, 기자, 수필가, 시인, 시나리오 작가 등 모든 글쟁이들이 마땅한 글감을 찾아 고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때문에 이야기가 잘 되지 않거나, 왠지 힘이 달리는 소재들은 시종일관 글 쓰는 이를 고되게 한다. 소위 말하자면, 안되는 이야기를 이야기로 만들려니 고생만 한다는 얘기다. 때문에 시작이 절반이라는 속담처럼, 글감을 고르는 작업이 절반이라는 말을 먼저 덧붙이고 싶다. 만일 본인의 글에 있어 재료상에 별 문제가 없다면, 다음으로는 요리하는 과정이 대상으로 지목될 수 있다. 물론, 요리하는 방법에는 모르긴 해도 수십, 수백가지가 있을 것이다. 재료를 찌는 것에서부터, 살짝 데치거나, 튀기고 끓이거나 삶는… 굽거나, 삭히고 그을리는 방법도 있으니. 불의 온도와 요리하는 시간 역시 중요함은 말할 나위조차 없다. 그러고 보니 양념조차도 이 과정에서 한 몫 한다. 이전에 열거했던 짧은 글쓰기, 주술 간의 호응, 상세한 묘사 등은 바로 이 과정에 속하는 부분집합들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요리의 장식은 잘된 요리, 좋은 요리를 일류 요리로 탈바꿈시키는 역할을 한다. 고급 요리집에서 장식에 신경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에 가서는 이 같은 노하우가 가격표에 아라비아 숫자 0을 하나 더 붙이는 가격 차이를 만들어낸다. 글에 있어 장식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편집을 들 수 있다. 제목에서부터, 각종 머리말은 물론 소제목과 사진, 도표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각적인 기호들과 그림들이 그 같은 효과를 극대화한다.

  그렇다면, 본인의 글쓰기에서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은 과연 요리로 따져 볼 때 어디에 해당할까? 다음 주부터는 요리짱과 글짱의 3대 요소 가운데, 주로 첫 번째와 두 번째에 관해 많은 시간을 할애해 보고자 한다. 기대해 보시라. 먹는 것에 관한 온갖 이야기로 글에 대한 군침을 돌게 할 터이니. / 심훈(언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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