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듯 구체적으로 자기 묘사해 일전에 어느 지방 대학의 신문방학과 교수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당시 그 교수는 졸업 논문 수업을 맡고 있었는데, 학생들이 논문을 소화해 내기에 매우 버거워 한다는 사실을 접하곤, 좀 더 신축적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가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언론사 기자 출신이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원할 시에는 탐사 또는 기획 기사 등과 같은 형태의 작품도 졸업 논문의 일환으로 인정해주기로 하고는 열심히 기사 작성법에 대한 조언을 해주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그런데, 졸업 논문 수업에서 애초에 탐사 기사를 써보겠다던 학생이 기말이 다가오면서 갑작스레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 왔단다. 내용인 즉 슨, “선생님이 허락하신다면 졸업 논문으로 대체해 제출키로 했던 기사 대신 신문의 사설과 칼럼을 하루에 5시간 정도씩 꼬박꼬박 손으로 베껴서 기말까지 쓰겠다”는 다소 황당한 내용의 글이었다.

  시간은 촉박하고 취재 역량은 부족한데다 글마저도 잘 안 되는 상황에서 자신의 현실을 깨닫고 남은 시간이나마 자신의 모자란 점을 만회해보고자 나름대로 마련한 고육지책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최근 겪은 이야기로 글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는 토를 달았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글을 다루는 입장에서 혼자만 듣기엔 너무 아까워 당사자를 조르다시피 해서 겨우 그 학생이 보냈다는 이메일을 손에 넣었다. 물론, 해당 학생과 당사자의 신분에 대한 비밀 보장은 철저하게 지킨다는 전제 하엡 다음은 어렵사리 손에 넣은 그 학생의 편지 내용이다. 사적인 내용들과 함께 분량이 만만찮았던 관계로 본지의 칼럼에 맞게 조금 손질했다는 점을 먼저 밝히고자 한다.

   친애하는 XXX 선생님께, 요즘 제가 졸업을 목전에 둔지라, 취업에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해서 내년 상반기 취업을 목표로 영어 실력도 늘이고 자격증도 한 개 정도 딸 요령으로 나름대로의 타임 스케줄을 짜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즌이 시즌인지라 최근의 취업 열기를 좇아 저도 국내 굴지의 H기업 한 군데에 원서를 제출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손에 쥐고 있는 토익 점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데다, 인적 사항을 적는 난에 마땅히 적을 특기 하나 변변하지 않았던 터라 그다지 큰 기대는 걸지 않았습니다.

  주위에서도 ‘지방대는 차별을 많이 받는다던데,” “쓸데 없는 고생을 하는군.” “잘 됐으면 좋겠다”는 각양각색의 반응들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사심없이, 정말 별 생각없이 그냥 한번 내보았던 것에 불과했던 서류 전형이 얼마 전 덜커덕 1차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기도 했지만, 얼떨떨했던 기분도 감출 수 없었습니다. ‘토익 점수는 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해서 서류 전형을 통과했지?’라는 궁금증이 머리 한 켠에서 맴도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으니까요.

  시간을 두고 찬찬히 생각하면서 고민해본 결과, 제가 그 문턱 높다는 1차 서류 전형을 통과한 이유로는 ‘자기 소개서’가 가장 큰 몫을 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H사에서 요구했던 서류는 인적 사항 서류와 희망자에 한한 토익 점수, 그리고 자기 소개서가 다였으니까요. 다시 한번 자기 소개서를 들여다 보니, 나름대로 고심해서 제 자신의 특기와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해 구체적인 그림이 떠오르도록 저를 묘사한 점이 눈에 띄더군요.

  결국, 며칠 전 H기업의 2차 면접에서 탈락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만, 앞서서의 1차 서류 전형 통과는 제게 많은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2차 면접 대기실에서 만났던 수백명의 1차 서류 통과자들 가운데, 지방대생은 그야말로 한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거든요.

  그러나, 자신감과 함께 수많은 후회 역시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 동안, 글쓰기를 소홀히 해왔던 제 자신에 대한 반성과 함께. 돌이켜 보면, 저는 선생님의 여러 글쓰기 과목들을 의도적으로 피해 왔습니다. 성적 관리 차원에서, 또 장학금을 받을 목적으로 수강하기에 편안한 전략 과목들을 좇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지금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제 생각이 얼마나 짧고 근시안적이었는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취업을 앞둔 요즘, 자기 소개서 하나만으로도 글쓰기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깨닫는 시점에서 하나만 알고 둘을 앞서 보지 못했던 제 자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

  해서,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글쓰기, 깊이 있는 글쓰기를 터득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워 선생님께 보고 드리는 바입니다. 부디 아래에 있는 작문 계획을 검토해 봐 주시고, 이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을 요청드리는 바입니다. 바쁘실텐데도 불구하고 제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