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취업용 자기 소개서를 잘 쓰기 위해서라도 글쓰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해서, 이번 주에는 직장에 들어가고 난 이후에도 글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일성을 연발로 내지르고 한다. 글쓰기가 중요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 글쓰기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경영자와 부하 직원 상호간의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 되지 않고 수직적 의사 소통이 주를 이루던 옛날 이야기다. 당시는 관공서, 기업, 학교를 막론하고 위에서 까라는 대로 까기만 해도 별 탈없이 모든 것이 잘 굴러가던 때였다. 위에서는 일의 저돌적인 추진을 위해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사람들을 원했고, 밑에서는 자리보존을 위해 ‘성실’하게 위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요구되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강산이 대략 두세 번 정도 바뀐 현재의 기업 풍속도는 무서울 정도로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취업 사이트인 ‘잡 코리아’에서 최근 기업 인사 담당자 7백 여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 결과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요구되는 직장인의 그림을 구체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잡 코리아’가 인사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행한 설문 조사는 ‘신입사원의 부족한 업무 능력’이었는데, 대기업, 중소기업을 망라하고 응답자들이 1, 2 순위로 꼽았던 것은 업무의 전문성 (48.2%)과 대인 관계(31.3%)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인사 담당자들의 설문지에 ‘국어 능력’ (5.6%)이 영어 능력 (5.1%)을 제치고 처음으로 3위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보고서를 통해, 상품 기획, 아이디어 입안, 시장 예측, 출장 보고서, 회의 결과 요약 등과 같이 수많은 문서를 정리해야 하는 신입 사원들의 국어 능력이 그다지 신통치 않았기 때문인 듯 하다. 실제로, 인사 담당자 10명중 8명 꼴로 신입 사원의 국어 만족도에 대해 불만족스럽거나 그저 그렇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10명 중 3명은 ‘쓰기나 말하기 등의 표현 능력’ (39.7%)이 시급히 개선돼야 할 것을 지적하고 있었다. 글쓰기와 관련된 서적은 3쇄 (쇄: 대폭적인 수정 없이 오탈자 정도를 챙기는 수준에서 다시 책을 인쇄하는 것. 3쇄라 함은 책에 대한 수요가 많아 처음에 인쇄한 이후, 재차, 삼차 책을 다시 인쇄하는 것을 말함)를 넘기기 힘들다는 출판 시장에서 발간된 지 1년 6개월 만에 9쇄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한국의 이공계는 글쓰기가 두렵다’의 저자 임재춘 역시 직장인 글쓰기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글짱 선교사이다. 과학 기술부 사무관 출신으로 영남대 객원 교수이기도 한 임재춘씨는 미국의 직장인들이 마찬가지의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며, 근무 시간 중 적게는 30%에서부터 많게는 50%에 이르는 업무가 쓰기, 편집, 프리젠테이션 준비 등으로 소모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고 보면, 몇 해 전 미국에서 무려 4000명의 기술자들을 대상으로 대학이 권장해야 할 학과목이 무엇인지를 물은 설문 조사 결과는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해당 분야에서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자타가 공인했던 4000명의 기술자들이 가장 많이 꼽은 첫번째 필수 과목으로 경영학이 등극한 가운데, 2위로 글쓰기가 선택됐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이공계의 전유물이어야 할 컴퓨터, 열 전달, 기기사용 및 측정, 데이터 처리, 시스템 프로그래밍, 경제학, 미분학, 논리학, 경제 분석, 응용 프로그래밍 등과 같은 전공 과목들은 11위에서부터 20위에 머무는 역전 현상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쯤에서 마무리 에피소드 하나 더. 진시황이 “이 책이야말로 내가 기다리던 것이다. 내가 이 사람을 만날 수만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다”고 감탄했던 서적 ‘한비자’의 저자, 한비는 심한 말더듬이였다. 콤플렉스가 심했던 그는 자연히 글로 자신의 사상을 전할 수 밖에 없었고, 문장 하나 하나에 온 힘을 기울였다. 2천년이 지난 현재에도 ‘고전’과 ‘스테디셀러’라는 두 타이틀을 지닌 채 우리 곁에 남아있는 ‘한비자’는 그런 사연 속에 탄생됐다. 그런 점에 비춰본다면, 초, 중, 고교생들이, 대학생들이, 그리고 직장인들이 글쓰기에 매진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긴 셈이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명확하게 전달하고, 또 그 값어치를 제대로 인정 받으려면, 결국 모든 일과가 글쓰기로 귀착되기 때문이다. 부르다 내가 죽을 이름, 너 글쓰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