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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하루] 헛제삿밥을 먹으며 -이선이
한림학보  |  news@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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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5.10.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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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식당 뒷마당
어스름과 겸상을 받아듭니다
저문 하늘에선 바람이 노을에
물소리 덧입히는 소리 사나웁고요
적막이 씹다 남긴 꽃잎들
낮은 담장 밖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소리에 내 귀는 자꾸 앓습니다
아마도 이 세계 밖으로 흘러가는
저 물소리 때문겠지요
양수에 잠긴 태아처럼 당신은
몸을 웅그리고 앉아 놋수저가 내는 기척을
공손히 어둠 속으로 떠넘기네요
보일 듯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홀로 반듯한 신위처럼 앉음새를 고치며
죽음까지 흘러갈 먼 물소리에
찬밥 한 술 말아 삼킵니다.
이 봄날의 식욕을 견디려
우리는 헛짓하듯
이승을 기웃거리며
여기까지 왔을까요
이렇듯 늦은 저녁을 먹으로 와서는
꽃밥 한 그릇에 배불리고 가는
저 봄바람이어야 하는 걸까요
죽은 자가 진설하는 밥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으면서
생은 또 이렇듯 물처럼 흘러가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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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헛제삿밥은 제사는 지내지 않고 마치 제사를 지낸 뒤 음복하는 음식처럼 차린 밥이다. 시인은 어스름 저녁 무렵, ‘적막이 씹다 남긴 꽃잎들’이 ‘낮은 담장 밖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소리’를 들으며 늦은 저녁을 먹고 있다. ‘죽은 자가 진설하는 밥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으면서’, ‘반듯한 신위처럼 앉음새를 고치며’, ‘죽음까지 흘러갈 먼 물소리에 찬밥 한 술 말아 삼키며’…

  이 시에서는 존재의 있고 없음이 ‘흘러가는 저 물소리’, ‘꽃밥 한 그릇에 배불리고 가는 저 봄바람’같은 식물적 이미지에 의해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통과한다. 살아있으면서 살아있는 것이 아니고, 죽은 자는 또 ‘봄날의 식욕을 견디’고 ‘헛짓하듯 이승을 기웃’거린다. 이 같은 비극적 생의 인식은 그러나 절망이고 단절이 아니라 ‘간이식당’, ‘우르르 몰려가는’, ‘물처럼 흘러가는’ 노정 위에 삶과 죽음이 함께 흘러감으로써 광활한 열림으로 나아가는 영원한 영혼의 순례로 승화된다.

/ 고경희(시인ㆍ국문과 2004년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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