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를 마감하는 요즘 세계는 근대와 탈근대의 경계에서 방황하고 있는 듯하다. 이에 학술부에서는 우리 시대의 현 좌표를 찾고 미래사회를 준비하기위해 그동안 논의돼 온 근대와 탈근대의 이론을 알아본다.

1 근대와 탈근대란 무엇인가
2 근대와 탈근대의 대립

  모던인가? 포스트 모던인가? 이제는 꽤 익숙해진 대립항이지만 서로의 외침은 메아리 없는 울림으로 전전하는 가운데 각 관점을 고수하는 깃발들이 여기저기에서 펄럭이고 있다. 어떻게 양자를 대화의 장에서 진지하게 만나게 하고 나아가 제 3항을 얻을 수 있을까? 당장은 그 길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먼저 포스트 모던의 문제의식을 분명히 하기 위해 모던, 포스트 모던에 대해 구별하기로 하자. ‘모던(modern 또는 모더니티modernity)’이란 서구의 현대를 주도해 온 사상적 흐름인 계몽주의 전통, 또는 이성중심주의 태도를 가리킨다고 하자. 서구에서 계몽주의는 인간 주체와 이성을 세계의 중심에 둔다. 이것은 합리적 이성에 의해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완전하게 인식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삼고 실천을 통해 이성적인 사회를 건설하고, 역사적 진보를 추구함으로써 자연적 강제와 억압적 사회제도로부터 해방되는 미래를 제시한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예로 프랑스 계몽주의자인 콩도르세의 주장을 살펴보자.

  그는 과학(자연)의 합리성을 모델로 삼아 인간을 해방시키는 길을 신봉한다. 계몽은 관찰, 실험, 검증이란 과학적 도구를 사용하여 자연의 비밀을 풀고, 과학적 지식의 발전을 모형으로 삼아 인간의 이성을 발전시켜 세계를 남김없이 인식하려 한다. 그리고 이런 이성을 가로막는 선입견, 미신, 전통을 거부하고 비이성적인 사회제도를 합리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전통적 세력에 저항해서 투쟁한다. 그래서 이것은 시민적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체제를 추구하고, 과학의 성장과 기술적 진보를 촉진시켜 사회적 불평등을 제거하는 인간 해방과 이성적 문명의 건설을 약속한다.

  그런데 이성 자체에 도전하는 ‘포스트 모던’은 이런 계몽주의, 이성중심주의에 대해 전면적으로 거부한다. 모던이 기초로 삼는 인간 주체, 이성, 역사의 진보 등이 모두 신화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인간 해방을 약속하는 이성이 인간을 도리어 억압한다고 주장한다. 근대성은 인간 해방을 바라는 모든 곳에서 온갖 약속을 해 왔다. 그런데 과학, 기술, 이성의 발전에 의해 추진력을 얻은 근대성은 낙관론적 동학으로 고무된 문명 컴플렉스였다. 근대성은 개인의 해방과 가치들의 전반적인 세속화, 진선미(眞善美)의 구별을 포함한다. 그런데 이것이 만든 개인주의는 자율과 해방뿐만 아니라 원자화와 익명화를 낳았다. 세속화는 종교적 독단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며 동시에 토대의 상실과 불안, 회의, 좀 더 큰 확실성에 대한 향수를 낳는다. 가치들에 대한 구별은 도덕적 자율성, 미적 고양, 자유로운 진리 추구를 낳은 긍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도덕적 퇴폐, 경박한 유미주의, 허무주의를 낳기도 한다. 이것은 이성을 앞세우면서도 우주의 주체인 인간이 그 대상인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는 신화, 산업 성장과 발전과 진보가 무한하게 계속되리라는 신화를 지닌다.

  계몽주의 합리성에 근거를 둔 이론과 실천들은 심오한 진리와 미덕을 지닌다. 자기 비판적 합리성도 그 한 예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자의적 사고와 진보에 관한 맹목적 믿음 같은 근거 없는 신화를 믿고 합리성의 정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거대한 환상을 품으며, 모든 복합성을 단순성의 패러다임으로 해체하여 분할하고, 구분하고, 환원하는 기계론적 사고를 내세운다. 근대성이 낳은 이러한 양면성에 대한 자각과 함께 근대성 자체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지만 이것은 미래에 대한 어떠한 전망도 제시하지 못하는 ‘초라한’ 포스트 모던을 낳는데 그친다.

  모던과 포스트 모던에 관한 철학적 논의의 한 측면을 살펴보자. 하버마스는 프랑크푸르트시의 아도르노 상을 수상하면서 한 연설 ‘모더니티, 그 미완의 기획’에서 포스트 모던을 전면적으로 비판하다. 그는 모더니티가 실패했고 그래서 그것이 불러일으킨 유토피아적 추동력을 억제해야 한다고 믿는 신보수주의자와 포스트 모던을 동일시했다. 그는 푸코와 데리다 등이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의 청년 보수주의자들과 유사하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이 근대철학 전체를 부정하려 한 하이데거와 니체의 후계자라고 지적한다. 그는 모던, 또는 계몽주의의 기획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단지 미완의 기획이라고 지적하면서 비판적 이성을 통한 모던의 완성을 촉구한다. 그가 볼 때 거부해야 할 것은 근대성이 아니라 포스트 모던이라는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이다. 이에 대해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의 조건』에서 이런 모던 철학을 전면적으로 공격한다. 그는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적 이성을 통한 합의 모델을 거부하고, 나아가 모던기획을 추동시켜온 보편주의적 개념틀이나 큰 이야기들이 이제 설득력이 없다고 공박한다.

  모던의 다양한 해방기획은 모두 목적론적이다. 연속성과 진보의 틀로 조직된 이것은 과거와 단절하고 역사의 보편적 주체가 해방을 수행할 기획을 내세운다. 예를 들면 계몽주의의 백과전서파는 보편적 지식을 이끌 계몽을 통해 미신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헤겔의 역사의 변증법은 정신의 실현이나 자유의식의 진보를 가져온다고 내세우고, 맑스주의는 프롤레타리아혁명에 의해 인간을 속박에서 벗어나 평등의 공동체를 건설한다고 선언하고, 민주주의는 민중이 정치적 주체가 되어 스스로를 다스릴 것이라고 주장하며, 자본주의는 시장을 통하여 엄청난 부와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으로 인류를 빈곤에서 해방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큰 이야기들 대신에 어떠한 보편적 기획도 없고, 따라서 해방을 내세우는 지배와 억압이 없는 작은 이야기들의 이질적 공동체를 제시한다.

/ 양운덕(교양 「역사철학」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