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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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누나는 추운 겨울날 새벽이면 거실에 앉아 누나를 바라보는 명숙누나를 봤다고 했다. 빨간 털장갑을 낀 채 눈싸움 하자며 손짓하곤 홀연히 사라진다던 누나. 유난히 겨울을 좋아했던 명숙 누나는 14살이 되던 겨울 초입에 첫눈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 ‘걔가 일찍 죽으려고 그리 예뻤던 게야.’ 어머니는 술 한 잔 하시면 그렁대는 목소리로 누이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내 기억 속엔 존재하지 않는, 하지만 눈만 오면 날 업고 어디론가 사라졌다던 누나를 난 종종 기억한다 말한다. 얼굴을 잊을라치면 큰누나의 사진첩에서 빼온 하나뿐인 누나 사진을 보며 난 그녀의 따뜻한 등을 기억하곤 한다.

  눈이 오면 맨발로 뛰어다니고, 어린 남동생에게 눈사람을 만들어준다며 연탄재로 뭉친 눈덩이를 방으로 갖고 들어왔다던 누나. 바보라고 놀리던 동네 꼬마들을 남동생이 크면 때려줄 거라고 믿었던 명숙 누나는 내가 겨우 세 살이던 해에 나를 떠났다. 감기인 줄 만 알았는데 유행성출혈열이라니, 아버지는 진작 병원에 데려오지 못한 당신을 탓하며 숨죽여 울었다. 모자라다는 이유로 딸의 아픔마저 오해한 당신을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등에 업힌 채 철원 와수리 초입의 작은 돌다리를 건너던 명숙누나의 모습을 큰누이는 아직도 어제 일처럼 말하곤 한다. 마치 하늘에서 눈이라도 내리는 듯 잠시 손바닥을 들어 올렸던 그녀의 손이 힘없이 떨구어지던 순간, 딸의 죽음을 직감한 아버지는 오래도록 다리위에 서 있었다고 한다. 링겔을 꽂았던 바늘구멍에서 한줄기의 붉은 피가 그녀의 손끝으로 흘러내려 다리위로 떨어지던 그 밤을 큰누나는 강렬한 색채의 그림마냥 잊지 못하는 것이다.

  겨울이 오고 요즘처럼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난 기억에도 없는 명숙누나를 떠올린다. 누나를 놀리는 동네꼬마들 서넛쯤은 오줌 절이게 할 만큼 믿음직한 남동생이 되었는데 어디에도 그녀는 없고, 윤동주가 죽은 누이를 위해 썼다던 이 시를 보며 나도 하얀 편지봉투에 눈이라도 한가득 담아 보내야 하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 편지는 눈이라도 녹을까 싶어 빠른우편으로 보내게 될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 이현준(소설가, 現 철학과 조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