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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지’로 집권 초기 많은 국민적 호응을 얻었던 정부는 현재 ‘개혁의 본질부터 따져봐야 하지 않는갗라는 의문을 낳을 만큼
정책과 개혁방법에서 혼선을 빚고 있다. 이에 사회부에서는 현 정권의 정책에 대한 평가를 분야별로 나누어 싣는다.
1 경제-금융실명제
2 교육-교육개혁
3 법-사법개혁
교육개혁, 구조적 모순과의 갈등 해소책 필요
통제·질서·자율의 원리 조화시켜야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교육 분야를 강조했고, 이에 따라 새 정부 출범 직후 대통령 직속 자문 기구인 교육개혁위원회가
발족됐다. 이 위원회는 교육전문가와 교사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집단으로서 지난해 5월31일과 올해 2월9일 2회에 걸쳐 그동안 구상해 온
교육개혁안을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방안」이라는 제목 하에 발표했다. 결국 현정부에 의해 주도된 교육개혁은 지난 해의 제1차
발표(5·31)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이렇게 볼 때 실제로 개혁이 추진된지는 이제 겨우 1년 남짓된 셈이다. 더욱이 제안된
교육개혁방안 중 일부는 올해 말 혹은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교육개혁정책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나 판단은 무리라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따라서 이 글은 교육개혁안의 기본적인 노선과 방향을 재음미하고 그 의의와 문제점 몇 가지를 지적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현재 진행 중인 교육개혁 정책의 기본 방향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신교육 체제’의 확립이다.
이를 위해 교육개혁위원회는 학습자 중심 교육, 다양하고 특성화된 교육, 자율과 책무성에 바탕을 둔 교육 운영, 자유와 평등이 조화된 교육,
교육의 정보화 그리고 평가를 통한 질 높은 교육 등 6가지 노선을 제시하고 있다.
이상에서 교육개혁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열린교육사회 혹은 평생학습사회의 건설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과거 각종
규정이나 제도의 경직성 때문에 교육을 갈구하던 많은 사람들이 학교교육에서 소외되던 문제점을 해결한다는 데서, 그리고 교육의 공급자가 교육에
관련된 모든 사항을 결정하던 행태에서 벗어나 교육이 소비자 중심으로 전환된다는 데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교육개혁정책의 의의를 GNP 5%의 교육재정 확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재정 확보는 개혁의 성패를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으로 1998년까지 한시적으로 약속된 GNP 5%의 교육재정이 1999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확보된다면 교육개혁 정책 수행 상의 큰
난관이 제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같은 교육개혁정책에 대해 몇 가지 우려의 시각이 있다. 우선 교육개혁이 자칫 정치적 홍보물로 이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만일 일련의 교육개혁 조치들이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기 위한 것들이라면 그러한 조치들은 교육 문제의 핵심을 놓칠 수도 있다.
또한 장기적인 안목을 전제로 해야하는 교육개혁이 정치성을 띌 경우 그것은 일회적이고 일시적인 사업으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과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개혁이 거론됐으나 지속적으로 진행된 개혁 조치는 거의 전무한 사실에 비추어 개혁의 일과성에 대한 우려는 단순한 기우는 아닌 것
같다.
다음으로 교육개혁의 한계이다. 이는 현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특정한 교육개혁 조치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개혁은 혁명이
아니다. 즉 교육개혁은 기존 체제나 질서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더욱이 학교교육은 사회제도의 일부분이다. 따라서 사회내에 구조적
모순이나 체제의 문제점이 존재하고 있을 때, 교육 혼자의 힘으로 개선이나 향상을 꾀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4년제 정규대학
출신자들과 방송통신대학 졸업생들을 차별하는 사회문화나 풍토속에서 교육의 기회 확대라는 구호는 빛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
셋째로 과거 교육의 관행처럼 되어온 중앙정부의 통제와 자율이라는 새로운 원리와의 갈등과 대립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의 문제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현 교육개혁안은 규제와 통제 중심의 교육운영에서 벗어난 자율과 책무성에 바탕을 둔 교육운영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볼 때 학교나 교사가 어느 정도의 자율권을 가지고 있는가는 매우 의문시 된다. 교육개혁안은 교육의 질적 제고를 위한 각종 평가를 제안하고 있다.
문제는 누가 평가를 하며 누가 최종판단을 하는가 이다. 아무런 규제나 통제도 없는 무질서한 교육, 아무런 평가도 없는 무책임한 교육은 분명
지양돼야 한다. 그러나 과거 규제와 통제의 주체였던 부서가 다시 평가와 판단의 기능을 맡는다면 이것을 과연 자율과 책무성에 입각한 교육운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지가 의심스럽다. 예를 들어 법학전문대학원의 경우 대학원의 설립과 운영에 대한 심사와 평가는 교육부에 설치한
법학교육위원회(가칭)에서 하게 되어 있다. 앞서도 밝혔듯이 정부의 관리 및 감독기능은 반드시 필요하다. 단 그것이 자율이라는 원리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보다 숙고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우려라기 보다는 건의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현재 추진 중인 그리고 앞으로 계획중인 교육개혁사업에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사업들은 현재 열악한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매우 효과적인 방안들이라는 것이 교육개혁위원회의
판단이다. 이 판단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 단 열악한 교육의 질과 함께 열악한 교육의 환경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낙후된 시설, 위험한 건물, 협소한 공간, 비위생적인 환경속에서 이뤄지는 교육이 과연 21세기를 위한 질 높은 교육이 될 수 있을까? 확보된
교육재정의 큰 몫이 오히려 이런 학교환경개선에 우선 쓰여져야 되는 것 아닐까? 현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교육개혁정책은 과거에 비해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교육개혁안이 병든 교육에 대한 만병통치약이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성급한 것이다. 교육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사업인 만큼 그에 대한 진단과 처방에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 이성호(교양교육부 조교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