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진 / 손택수

그림을 그리기 싫은 날입니다
할아버지는 산으로 향한 창문을 열어놓고
늘어지게 낮잠이 들었습니다
그 사이 조막만한 꼬마 참새가 날아들어
할아버지의 무구한 낮잠처럼 펼쳐진
화폭 위로 날아들어, 발바닥에
색색의 물감을 묻히고 돌아다닙니다
그림은 자고로 요렇게 그리는 거라는 듯
오늘은 내 친히 한 수 가르침을 주고 가겠다는 듯
종알종알 새발자국이 새순처럼 돋아납니다
신이 나서 방바닥과 벽, 천장까지 돋아납니다
하기사 날개 가진 놈에게
화폭 아닌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화폭처럼 비어 있지 않은 것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맹랑한 그 새, 날랜 붓놀림이 참 여간 아닙니다

  사실, 이 시는 어떤 시평보다도, 장욱진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훨씬 이 시의 감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시 자체도 재밌지만, 장욱진의 그림을 보고 난다면, 이 시가 더 재밌어지기 때문이다. 장욱진의 대부분의 그림이 담은 동심의 세계를 표현하듯이, 이 시에서도 화가의 동심을 살려내어, 시인만의 동심으로 옮겨놓았다.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그림속의 참새가 화가로 등장한다. 그 맹랑한 화가, 참새는 할아버지 화가에게 그림을 한 수 가르치겠다고 하늘 땅, 모두 제 화폭인 양, 훨훨 날아다니며 그림을 그린다. 그림은 자고로 요렇게 그리는 거라는 듯.

  동심의 그림, 그리고 그 동심을 다시 동심의 시선으로 우려낸 시. 어쩌면, 화가의 마음을 너무도 잘 읽어낸 훌륭한 미술평이라고 해도 손색없겠다. 모쪼록 이 시를 읽는 동안만이라도, 참새와 놀던 동심의 세계로 빠져보는 건 어쩔지.

/ 이인자 (국문 97년 졸업, 199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현 에듀토피아 중앙교육 홍보팀 근무